▲ 의도적 파울은 상대의 선수생명을 건 위험한 도박이다. 사진은 수원과 서울의 경기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제공=FC서울 |
# 사라진 동료애
프로축구 K리그의 FC서울 최용수 감독은 “축구에서 페어플레이 정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했다. 이유가 분명했다. 직접적인 피해를 서울이 입었고, 스쿼드를 꾸려야 하는 벤치가 어려움을 겪은 탓. 핵심 미드필더 고명진이 갈비뼈 2대가 금이 가는 큰 부상을 입었다. 진단 결과 전치 2개월이 나왔다. 6월 20일 홈구장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A컵 16강전을 앞두고 치른 포항 스틸러스와의 K리그 원정 경기(0-1 서울 패배)에서 나온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고명진은 포항 신형민의 무릎에 가격당했다.
최 감독은 “경기 전, 인터뷰 때만 해도 서로 ‘페어플레이’를 하자고 약속했는데, 결국 나쁜 결과가 나왔다. 패배보다 더 아쉽다”고 씁쓸해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앞서 수원 삼성 용병 스테보가 도마에 오른 적이 있었다. 올해 4월 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과 서울 간의 맞대결 때 서울 고요한이 스테보에게 발을 밟혀 전치 2주 부상을 입었다. 스테보는 이후 4월 28일 치러진 성남 일화전에서도 상대 브라질 용병 에벨찡요의 발을 밟아 전치 6주 부상을 입혔다.
수원도 피해자의 자리를 피해갈 수 없었다. K리그 16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 때 수비수 보스나가 볼을 경합하다 사타구니를 채였다. 보스나의 상태를 놓고 마지막까지 수원 코칭스태프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FA컵 16강에서는 킥오프 5분도 채 안 돼 주포 라돈치치가 오른 무릎 인대를 크게 다쳤다. 60% 인대 손상으로 전치 4개월 진단을 받았다. 서울 수비수 김진규의 허슬 플레이로 인한 피해였다. 수원 관계자는 “큰일 났다. 최악의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라이벌전 2-0 완승은 훌륭한 결과였지만 피해 역시 막심해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특히 수원이 K리그에서 상대적으로 파울이 많다는 점을 들어 ‘페어플레이’를 외친 서울이 낸 생채기라 양팀 간에는 묘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국가대표팀 최강희호와 올림픽 홍명보호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핵심 중앙 수비수 홍정호의 부상도 거친 플레이에 의한 상처였다. 4월 29일 제주 유나이티드의 홍정호는 경남FC전에서 상대 수비수의 거친 태클에 부상을 당했다. 왼쪽 무릎 후방 십자인대 부상이었다. 수술이 필요했고, 올 시즌은 더 이상 뛸 수 없게 됐다.
# 혹독한 경기일정
올 시즌은 유난히 타이트하다. 일각에서는 살인 스케줄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승격-강등제 시행에 앞서 준비 중인 K리그 스플릿 시스템의 영향이 컸다. 비록 컵 대회를 시행하지 않더라도 고작 몇 경기만 줄었을 뿐이다.
홈 앤드 어웨이 정규리그 풀 리그를 펼치면 30경기, 여기에 1~8위와 9~16위 팀이 나눠져 역시 홈 앤드 어웨이 형태로 풀 리그를 치르는 14경기를 더하면 팀당 44라운드를 치러야 한다는 결론이 선다.
이뿐 아니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와 국내 FA컵까지 치러야 한다. 물론 챔피언스리그의 경우는 8강 진출 팀들이 가려져 울산 현대만이 토너먼트 무대에 올랐고, FA컵 또한 8개 팀으로 좁혀졌으나 여전히 혹독한 일정임은 틀림이 없다. 장거리 원정은 선수들의 피로를 더욱 가중시킨다. 유독 서아시아와 중동 팀들의 강세가 눈에 들어온다.
대표팀 일정도 빼놓을 수 없다. 불편한 사실은 2014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중반 라운드까지 소화하는 올해 유독 많은 원정 스케줄이 잡혔다는 점이다. 총 4차례 경기들 가운데 이미 홈경기는 치렀고, 당장 9월과 10월 각각 우즈베키스탄과 이란으로 원정을 떠나야 한다. 현지 환경 적응은 번외 문제일 뿐이다.
혹독한 일정으로 인한 대표적인 피해자가 바로 울산의 베테랑 수비수 곽태휘다. 6월 17일 경남전을 앞두고 슛 연습을 하다가 왼쪽 골반 부위에 통증을 호소했다. 걱정했던 인대 문제가 아닌, 골반 부위의 근육 파열로 전치 2주가량의 비교적 가벼운 부상이었으나 울산 김호곤 감독의 가슴은 철렁할 수밖에 없었다. 적당한 휴식을 취했더라면 이 정도 부상은 충분히 막을 수도 있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최근 K리그에 부상 소식이 잦자 ‘동업자 정신을 갖자’는 자정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제공=FC서울 |
물론 부상의 원인이 앞서 거론된 두 가지 사안만은 아니다. 날씨와 환경에서 비롯된 부상도 있다. 더운 여름을 맞이하며 선수들 간 컨디션에도 차이가 나온다.
하지만 모든 부상은 결국 한 가지로 귀결된다. 소속 팀과 각급 국가대표팀의 전력 약화다. 중요한 국내외 대회를 앞두고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인한 이탈은 모두에게 뼈아픈 결과를 가져온다.
부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일도 쉽지 않다. 수원 캡틴 곽희주만 해도 남들이 보기에는 (몸 상태가) 괜찮지만 정작 본인은 ‘완쾌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구단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정강이 골절상을 입었다가 최근 회복한 이청용(볼턴 원더러스)을 놓고 지도자들이 “한번 큰 부상을 당하면 정신적인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입을 모으는 것도 그래서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말처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의 차이를 빚을 수 있다.
한 축구인은 “축구 선수들은 일반인보다 부상을 당할 확률이 높지만 그라운드에서 서로 동업자 정신을 갖는다면 그래도 빈도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이다”면서 “가끔 선수들과 얘기하다 보면 일부 몰지각한 선수는 아예 대놓고 타깃(목표물)을 정해놓고 일부러 거칠게 몰아치는 경우도 있는데 한번 범한 사고를 자신이 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나중에 사고를 치고 후회하는 척 마음에 없는 사과를 하는 것보다 미리 하지 말아야 한다. 인과응보라는 옛 말을 새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