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훈.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
6월24일 잠실구장. 롯데-LG전을 보려고 관중석을 가득 채운 양 팀 팬들은 한 투수의 눈부신 호투에 넋이 나갔다. 이날 롯데 선수 이용훈은 8회 1사까지 퍼펙트게임을 펼쳤다. 잠실구장에 있던 양 팀 팬들은 승패를 떠나 대기록에 도전하는 이용훈에게 박수를 보냈다. 기자석에서도 “이러다 프로야구 사상 첫 퍼펙트게임이 달성되는 게 아니냐”며 이용훈의 투구에 집중했다.
그러나 대기록 달성은 이번에도 무산됐다. 8회 1사에 터진 LG 최동수의 유격수 강습안타로 퍼펙트게임이 깨진 것이다. 하지만, 이날 호투로 이용훈은 프로야구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36세의 오른손투수 이용훈은 지난해까지 그리 유명한 선수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이용훈은 2000년 프로에 데뷔하고서 한 번도 10승을 기록하지 못했다. 2010, 2011년엔 2년 연속 무승에 그쳤다. 게다가 2009년 이후 그의 평균자책은 늘 6점대 이상이었다. 지난해는 무려 11.25였다.
가뜩이나 2006년 어깨수술 이후 내림세를 탔기에 주변에선 은근히 은퇴를 권유했었다. 이용훈도 한때 은퇴를 생각했다. 올 시즌 전이었다. 이용훈은 올해도 부진하면 미련 없이 유니폼을 벗을 심산이었다. 항상 자신을 응원하는 아내와 아들이 눈에 밟혔지만, 언제까지 1, 2군을 오가는 평범한 선수로 살 순 없었다.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한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야구판을 떠나야 했다. 절벽 끝에 선 이용훈.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절벽에 서보니 이용훈은 야구의 깊이를 알 수 있었다. 그랬다.
절벽에 서야 비로소 산의 높이를 알 수 있듯 현역생활의 마지막에 몰린 이용훈은 그제야 왜 야구를 잘해야 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그때부터 이용훈은 철저하게 몸을 만들었고, 모든 생활을 야구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피나는 노력이 꽃을 피운 걸까.
6월 29일 기준 이용훈은 16경기에 등판해 67⅓이닝을 던져 7승2패 평균자책 2.41을 기록 중이다. 다승은 공동 4위, 평균자책은 3위다. 2000년 프로 데뷔 이후 최고 성적이다.
이용훈은 “언젠가 한번은 기회가 오리란 마음으로 13년을 기다렸다”며 “2군에 있는 투수들도 좌절하기보단 나처럼 기회가 올 때를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정수성.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
고교시절 빠른 발과 넓은 수비범위로 가능성을 인정받은 정수성은 그러나 프로 입단 때는 가장 저평가된 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현대는 2차 12번 90순위로 그를 지명했다. 대개 10순위 이하 선수들이 5년 이상 프로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10% 이하임을 고려하면 정수성의 미래는 어둡기만 했다. 특히나 정수성의 형은 정수근이었다. 프로야구 최고의 1번 타자였던 형에 가려 정수성은 그저 ‘정수근의 동생’ 정도로만 알려졌다. 하지만, 정수성은 저평가와 냉대 속에서도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억척같은 그에게도 위기는 찾아왔다. 지난 시즌이었다. 2010년 A형 간염으로 8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던 정수성은 2011년을 재기의 해로 삼았다. 그러나 경기 중 오른허벅지 근육이 4군데나 찢어지며 깊은 절망에 빠졌다. 정수성은 미련 없이 유니폼을 벗으려 했다.
그때 그의 손을 잡아준 이가 넥센 박흥식 타격코치였다. 박 코치는 “이대로 은퇴하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며 “내가 도울 테니 마지막 불꽃을 태워보자”고 정수성을 설득했다. 정수성은 그날 이후 죽기살기로 운동에 전념했다. 넥센 김시진 감독이 “저러다 다치는 게 아니냐”고 걱정할 만큼 그라운드에서 뒹굴었다. 결국, 그는 올 시즌 넥센 돌풍의 주역이 됐다. 6월 24일 삼성전은 정수성에겐 잊을 수 없는 경기다.
이날 경기 전까지 넥센은 3연패를 기록했다. 자칫 하위권으로 추락할 수 있었다. 가뜩이나 이날 넥센은 삼성에 연장 10회 초까지 4 대 5로 뒤지고 있었다. 하지만, 연장 10회 말 1사 1, 3루에서 끝내기 2루타가 나오며 대역전에 성공했다. 역전 2루타를 친 이는 다름 아닌 정수성이었다.
김 감독은 “정수성 없는 외야진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며 “정수성이 수비와 주루에서도 만점활약을 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 류택현. 사진제공=LG 트윈스 |
▲ 류택현이 지난 4월 13일 역대 투수 최다 출장 기록을 세웠다. 사진제공=LG 트윈스 |
그러나 2010시즌이 끝나고서 팔꿈치 수술을 받으며 LG에서 방출됐다. 당시 LG는 류택현에게 코치직을 제안했다. 하지만, 류택현이 선택한 건 수술이었다. 류택현은 자비를 들여 수술받고서 혼자 재활했다.
야구계는 그런 류택현을 보고 “재활에 성공한다손 쳐도 어느 팀에서 불혹이 넘은 투수를 받겠느냐”고 재기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류택현은 주변의 우려와 곱지 않은 시선에도 1년간 몸을 만들었다. 그리고 친정팀 LG 문을 다시 두들겼다.
당시 김기태 감독은 류택현을 보고 두 번 놀랐다. 한번은 류택현이 다시 공을 던진다는 말에 놀랐고, 이어 생각보다 구위가 뛰어나 놀랐다. 김 감독은 류택현에게 플레잉코치를 제안했고, 류택현은 올 시즌 아들뻘되는 임찬규(20)와 함께 뛰고 있다.
류택현은 말한다. “세상에 이뤄지지 않은 꿈은 없다”고. “그저 그 꿈이 언제 이뤄지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