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이터/뉴시스 |
2011~2012시즌 강등권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QPR은 새 시즌 대대적인 개편을 천명했다. 박지성의 영입은 구단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결정이었다. ‘에어아시아’라는 메인 스폰서를 기반으로 한 아시아 마케팅에도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다. 박지성은 동남아와 중국 등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자선경기를 통해 좋은 이미지를 쌓은 부분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박지성에게 러브콜을 던지는 과정에서 QPR의 마크 휴즈 감독은 자신의 스승인 맨유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게 조언을 구했고, 지난달 중순에는 구단 고위층과 함께 극비리에 내한해선 박지성을 직접 만나 최고 대우를 약속했다. 이적료는 500만 파운드(약 89억 원) 선으로 알려졌으나 세부 조항은 훨씬 선수에 유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지성은 맨유에 2005년 여름 입단했을 때 이적료 400만 파운드로 가치가 결정됐고, 지난 시즌까지 7년간 133경기에서 19골을 넣었다. 맨유 역시 박지성의 활약 속에 프리미어리그 4차례 우승,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차례 우승을 일궜다.
QPR이 한국 축구 팬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거론된 시점은 6월 초부터다. 기성용(셀틱) 영입을 희망하고 있다는 내용의 외신 보도들이 나오면서 QPR이 한국 선수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 QPR은 잠시 시야에서 사라졌다. QPR은 7월 초부터 조심스럽게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급기야 7월 5일 QPR이 한국 선수를 영입한다는 깜짝 소식이 불거졌다. 역시 이름이 오르내렸던 기성용이 화두가 됐다. 대부분 언론들이 거의 기성용에게 초점을 맞췄다. 기성용이 아니라면 이미 해외 진출을 희망하고 있는 김보경(세레소 아사카)이 유력하지 않느냐는 관측도 나왔다. 일부는 아예 아스널에서 헤매고 있는 박주영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런데 의문이 있었다. QPR은 단순히 한국 선수를 영입한다는 뜻만 내놓은 게 아니었다. 해당 선수가 구단의 공식 인터뷰에 참석한다는 사실도 함께 공표했다. 사실상의 미디어데이 행사였다. 후보로 거론된 선수 전원이 2012 런던올림픽을 준비 중인 홍명보호의 일원이기에 의구심이 증폭됐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들이 자신의 거취 문제로 훈련을 포기하고 현지로 먼저 출국한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박지성의 이름은 6일 늦은 밤부터 나왔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주로 외국 SNS를 통해 박지성이 QPR과 연결됐다는 얘기가 불거졌다. 여기에 공신력은 없는 해외의 한 인터넷 스포츠 매체가 박지성의 QPR행을 처음 보도했다. 뒤를 이어 영국 공영방송인 BBC스포츠와 미국의 유력 스포츠 매체 ESPN 사커넷이 연이어 확정 보도를 내놓았다. 특히 BBC스포츠는 아예 이적료와 계약기간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현지 타블로이드 대중지인 <더선>의 경우, 주급까지 표기했다. ‘아시아 최고 선수’라는 대접에서였다. 동시간대에 맨유의 여름 프리시즌 투어를 홍보하는 구단의 공식 포스터에 박지성의 그림이 사라져 더 이상 맨유에서 박지성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는 간접적인 상황이 노출됐다.
유럽 축구 이적시장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들은 “이미 일찌감치 QPR과 박지성의 계약은 마무리됐다. 맨유, 선수 측과의 협의에 따라 발표 시점만 남겨놓고 있었을 뿐이다. 3주 전쯤 휴즈 감독이 박지성을 영입하기로 마음을 굳혔고, 막판 교섭이 이뤄졌다. 최근 휴즈 감독은 확정됐다는 선수 측 의견을 전해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최고의 명문 클럽인 맨유에서 크게 익숙지 않은 QPR로의 이적은 분명 일말의 아쉬움도 남기지만 선수와 구단 모두에게 윈윈(Win-Win) 결정이 될 공산이 높다. 이미 박지성이 뛸 자리는 맨유에서는 거의 없다. 특히 측면 포지션은 포화상태다. 발렌시아, 긱스, 나니, 애쉴리 영 등 자원이 넘쳐난다. 여기에 일본 대표팀 최고 스타인 가가와 신지의 가세는 가뜩이나 어려운 박지성의 위치를 어렵게 했다. 이적료 1400만 파운드(약 250억 원)를 주고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에서 영입한 가가와 신지를 벤치에 그냥 묵혀두기는 어려운 게 맨유가 처한 현실이다.
물론 2013년 여름까지 맨유와 계약이 돼 있던 박지성은 자신의 트레이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계약상의 옵션 조항에 따라 다음 시즌 맨유 잔류를 택할 수도 있었다. 더욱이 시즌 전체 스케줄 40%가량을 소화한다면 자동적으로 기간이 1년 연장될 가능성도 있었다. 다만 녹록지 않은 현실이 박지성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현실에 안주하며 많은 돈을 받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항상 ‘도전’과 ‘자존심’을 강조했던 박지성이었다. 결코 쉽지 않았지만 박지성은 결국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물론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명성과 자존심을 건 승부처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