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기 드라마 <추적자>를 이끄는 두 주인공 강동윤(김상중 분)과 백홍석(손현주 분). 이들과 이름은 물론 바둑 스타일, 전적까지도 닮은 프로 기사가 있어 바둑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
이들 두 프로에게 드라마 <추적자>에 대해 물어봤다. 탄탄한 대본과 출중한 연기력으로 관심을 불러모은 드라마 <추적자>가 비로소 시청률 20%를 넘기며 인기 드라마로 등극했다. <추적자>가 방영 초기 MBC 월화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 밀려 고전을 했던 데 반해 바둑 팬들 사이에선 방영 초기부터 화제를 불러모았다.
요즘 한창 잘나가는 인기 프로기사 두 명과 이 드라마의 두 주연 배우의 이름이 똑같기 때문인데 백홍석과 강동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드라마에서 백홍석(손현주 분)은 억울하게 아내와 딸을 잃은 형사이고, 강동윤(김상중 분)은 대기업 오너의 사위이자 유력 대선 후보다.
생계형 형사인 백홍석은 의리 있고 선한 성격이나 아내와 딸의 죽음 이후 저돌적인 돌파형으로 변해 세상과의 고독한 싸움을 벌인다. 반면 강동윤은 야망이 크고 계산적이며 이성적이다. 과연 바둑 프로기사 백홍석과 강동윤의 실제 바둑 스타일은 어떨까.
바둑 칼럼니스트이자 본지 바둑해설위원인 이광구 씨는 “백홍석 프로의 성격은 참 순박한데 바둑 두는 스타일은 파워풀하다. 바둑 스타일만 보면 상당한 터프가이다. 강동윤 프로는 냉정하고 냉철한 편이다. 매우 이성적이고 계산적으로 바둑을 두는 편”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닮은꼴 스타일은 이미 바둑 팬들 사이에서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드라마 <추적자>를 집필하고 있는 박경수 작가도 바둑 팬으로 알려지면서 그가 이 두 프로기사의 바둑 스타일을 감안해 두 주연 캐릭터의 극중 이름을 정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난무하기도 했다.
SBS 홍보팀 관계자는 “박경수 작가가 바둑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제작사에 문의한 결과 박 작가가 의도적으로 두 프로기사의 이름을 캐릭터 이름으로 따온 것은 아니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두 프로 역시 작가나 제작진에게 자신의 이름을 드라마에 쓴다는 연락을 별도로 받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1986년생으로 강동윤 프로보다 세 살 위인 백홍석 프로는 입단 역시 1년 빠른 2001년이다. 이들은 2005년 함께 4단으로 승단했고, 2006년 제11회 삼성화재배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두 프로의 첫 대결이 벌어진 2007년 이후 강동윤 프로가 더 앞서가기 시작한다. 2007년 9월 제7기 오스람배 대회 결승전에서 강 프로는 백 프로를 꺾고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게다가 강 프로는 그해 7월 제4기 전자랜드배 왕중왕전에서 이창호 프로를 꺾으며 우승을 차지해 한꺼번에 2단이 승단(7단)되기도 했다. 이어 강 프로는 2008년 6월 8단으로 승단하고 그해 12월 9단으로 승단한다. 반면 백 프로는 2008년에야 6단 승단을 이뤄냈다.
2009년에도 강 프로는 이세돌 이창호 프로를 내리 이기며 바둑계 신흥 강호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이창호 프로를 결승에서 꺾은 제22기 후지쓰배 대회를 통해 생애 첫 세계대회 우승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반면 백 프로는 2009년 7단으로 승단하며 차근차근 성장했다.
두 프로는 2010년 다시 한 번 뜨거운 대결을 벌인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바둑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맞붙은 것. 이번에도 백 프로를 따돌리고 대표팀에 발탁된 강 프로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을 꺾고 바둑 남자단체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일궈냈다.
백 프로의 반격은 8단으로 승단한 2011년부터 시작됐다. 백 프로는 제29기 KBS바둑왕전과 제39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에서 연이어 준우승을 차지했다.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준우승을 통해 9단으로 특별 승단하는 기쁨까지 누렸다. 올해 들어 더욱 약진한 백 프로는 지난 5월 제4회 비씨카드배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 8강전에서 한국선수로는 홀로 4강에 진출, 예상을 깨고 분전을 거듭해 끝내 우승을 차지했다.
상대 전적은 7승 4패로 강 프로가 앞서고 있지만 올해 두 차례 맞대결에선 백 프로가 모두 이겼다. 어찌 보면 두 프로 기사의 진정한 대결은 지금부터인 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까지의 전적만 놓고 보면 드라마의 결말도 살짝 엿볼 수 있다. 드라마에서 대선후보 강동윤은 백홍석의 저돌적인 복수전에 간혹 밀리기도 하지만 늘 우위를 유지했고, 서 회장(박근형 분) 유태진(송재호 분) 등 정재계 ‘거목’들을 꺾기도 한다. 그렇지만 청와대 입성 직전 동영상 공개라는 백홍석의 마지막 공격에 휘청거린다.
두 프로의 전적을 보면 백 프로에게 네 번 졌지만 일곱 번 이기며 우위를 유지해온 강 프로는 이창호 이세돌 등 바둑계의 거목들과의 맞대결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그렇다면 이들 두 프로 기사는 드라마 <추적자>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백 프로는 “드라마에 내 이름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다만 자꾸 내 이름이 나오는 게 민망해 꾸준히 보진 못했다”며 “주변 반응도 뜨겁다. 보는 사람마다 ‘네가 주인공이더라’는 얘길 많이 한다. 그런 얘길 들으면 농담 삼아 ‘가난하게 싸우고 있다’고 대답하곤 한다”고 말한다. 반면 강 프로는 “드라마 <추적자>를 즐겨 보지 않아 별다른 소감은 없다”고 답했다.
극중 캐릭터와 두 프로 기사의 바둑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지적에 대해 백 프로는 “내가 봐도 약간 비슷한 것 같기는 하다”고 답했고, 강 프로는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드라마에선 원수 사이로 묘사되고 있지만 현실에서 백·강 프로는 무척 친한 사이라고 한다. “비슷하게 입단해 서로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백 프로는 “프로는 내가 1년 더 먼저 달았는데 성적은 내가 조금 더 안좋다”고 전했다. 강 프로 역시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고 말했다.
백 프로는 자신과 강 프로의 이름이 인기 드라마에 나온 부분이 매우 기분 좋다고 말한다. “당연히 관심을 많이 받으니 좋죠. 이번 드라마를 계기로 프로 바둑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높아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좋은 대국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