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김지연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새벽 4시 30분경에 열린 펜싱 여자 개인 사브르 결승전에서 세계랭킹 2위 러시아의 소피아 벨리카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숨 막히는 승부 따위도 없었다. 빠른 발을 활용해 상대방의 허점을 노린 김지연은 15대 9로 여유롭게 승리했다. 사실 금메달은 김지연 역시 예상하지 못했다. 금메달 확정 직후 방송 인터뷰에서 “결승에서 제가 1등을 했을 때는 ‘미쳤구나’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을 정도다. 정말 제대로 미친(?) 김지연에게 매스컴은 ‘숨은 진주’라는 호칭을 부여했다.
경덕공고를 비롯해 펜싱 명문고로 손꼽히는 학교들이 몇몇 있다. 그런데 김지연의 출신 학교는 부산디자인고다. 부산디자인고 펜싱 여자 사브르 팀은 김지연이 입학하기 한 해 전에 생긴 신생팀이었다. 그렇지만 김지연이 신입생으로 입학하면서 부산디자인고는 펜싱계의 주목을 받는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7년 동안 재송여중 펜싱부 감독을 활동하다 2003년 부산디자인고로 옮겨 펜싱부를 창단한 손영욱 감독을 중심으로 2학년 이미진과 강보미, 그리고 1학년 김지연을 앞세운 부산디자인고 펜싱팀은 막강한 전력으로 각종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2004년 타이베이에서 열린 2004아시아유소년펜싱선수권대회 사브르 개인전에서 부산디자인고 3인방인 이미진(170㎝)은 금, 강보미는 은, 그리고 김지연이 동메달을 휩쓸었다.
그렇다고 우연히 신생 고교팀에 들어가 갑자기 스타로 급부상항 케이스는 아니다. 재송여중 감독 시절부터 김지연을 눈여겨온 부산디자인고 송영욱 감독이 그에게 부산디자인고 입학을 권유한 것.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플뢰레 선수로 활약해온 김지연은 고교 입학 이후 사브르로 종목을 전향했다.
그렇지만 국제무대에서 김지연은 선배들에 밀린 만년 후보에 불과했다. 2011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그랑프리대회에서 동메달을 따기 이전까지는 세계랭킹 포인트가 전혀 없을 정도였다. 2009년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여러 차례 국제대회에 출전했지만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김지연의 재능을 높이 산 이는 바로 대표팀 총감독으로 여자 사브르 전담하고 있는 김용율 감독이었다. 김 감독의 지도의 격려를 받으며 김지연은 2012 프랑스 오를레앙 국제그랑프리에서 3위, 터키 안탈리아 국제월드컵에서 2위에 오르며 조용히 자신만의 금메달 꿈을 키워왔다. 그리고 그 눈부신 성과가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황금빛 메달로 완성됐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