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인기몰이 중인 영화 <도둑들>의 캐릭터 포스터. 이 영화에서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소화해낸 전지현도 다작배우가 되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
최근 이어지는 스타들의 다작 선택은 여러 이유가 맞물려 나타난 결과로 풀이된다. 신선한 소재와 독특한 장르로 기획된 다양한 영화들이 등장하며 그 제작 규모에 맞는 흥행 배우의 수요가 많아졌다는 긍정적인 분석이 첫 번째 이유.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원인도 있다. 다양한 콘텐츠의 홍수 속에 연기 공백을 보내면 대중의 기억 속에서 빨리 잊힌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한 탓이다. 톱스타들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만난 30대 후반의 한 남자 배우는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배우를 선택하는 입장에서는 대안이 많은 것 같다”며 “새로운 스타들이 빨리 탄생하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꾸준히 활동하지 않으면 그만큼 대중의 기억에서 빨리 잊힌다는 위기감이 들 때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이유야 어찌됐든 다작을 선택한 배우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인기는 물론 티켓 파워, 연기력을 갖춘 스크린 톱스타들 대부분이 다작을 택하고 있다. 송강호 최민식 황정민 하정우 전지현이 다작 스타의 대표 주자들이다.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촬영을 마치자마자 9월 초부터는 사극 영화 <관상>에 합류한다. 올해 2월 개봉했던 <하울링>까지 합하면 1년 동안 세 편의 영화를 소화하고 있다. “1년에 한 편씩은 한다”는 활동 방침을 갖고 꾸준하게 영화에 출연해왔던 송강호지만 올해는 이례적으로 세 편이 연달아 맞물렸다.
최민식과 황정민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로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은 최민식은 곧바로 새 영화 <신세계> 출연을 결정하고 현재 촬영에 한창이다. <신세계> 촬영을 시작하기 전 최민식은 또 다른 사극 영화 <명량:회오리 바다> 출연까지 결정했다. 송강호와 마찬가지로 올해만 소화하는 영화가 세 편에 달한다. 황정민 역시 최민식과 <신세계> 촬영이 끝나면 곧장 강우석 감독의 새 영화 <전설의 주먹>을 시작한다.
하정우는 다작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배우. 올해 상반기에만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의 전성시대>와 <러브픽션>을 개봉해 연속 흥행에 성공한 하정우는 현재 <베를린>을 촬영하고 있다. 그 틈에 직접 기획한 다큐멘터리 영화 <577 프로젝트>를 촬영해 개봉을 앞뒀고, 동시에 <베를린> 이후 출연할 영화로 <앙드레 김>(가제)을 일찌감치 결정해 놓았다.
<도둑들>로 오랜만에 흥행을 이룬 전지현은 공개적으로 “다작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도둑들> 개봉 준비와 영화 <베를린> 촬영을 병행한 전지현은 “<베를린>이 끝나면 곧바로 새로운 영화를 결정할 생각”이라며 “쉬지 않고 연기하는 다작 배우가 되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당초 <베를린> 촬영을 끝내고 미뤄뒀던 신혼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전지현은 신혼 생활과 더불어 연기활동에 더욱 집중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영화계는 이 같은 톱스타들의 다작 행렬에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 영화 제작자는 “제작비 규모를 떠나 기발하고 신선한 기획영화가 많아지면서 스타들의 선택폭도 넓어졌다”며 “다작 배우들이 비슷한 느낌의 영화를 배제하면서 각 작품마다 연기 변신을 시도하는 건 흥미로운 볼거리”라고 기대했다.
실제로 송강호나 최민식 하정우 등 다작을 택하는 배우들은 출연하는 영화마다 노련하게 변신하며 새로운 개성을 드러낸다. 드라마와 달리 영화에서는 실력이나 자신감이 없다면 어려운 게 ‘다작’이다.
송강호의 올해 출연 영화 세 편을 살펴봐도 그렇다. <하울링>에서는 번번이 승진에서 밀리는 강력계 형사를 연기했다면 <설국열차>에서는 지구 종말 위기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올라 탄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이야기를 주도한다. 이어 <관상>에서는 조선시대 초 명망 높은 관상가 역이다. 누구보다 발 빠르게 연기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전지현 역시 <도둑들>에서는 입만 열면 육두문자를 쏟아내는 섹시한 여자 도둑을 연기했지만 <베를린>에서는 북한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외교관 역이다. 시대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정체성과 사랑을 사이에 두고 갈등하는 묵직한 인물로 연기 변신을 한다.
물론 이 같은 다작 선택으로 쉼 없는 연기 활동을 펼쳐야 하는 배우들 가운데 일부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 볼멘소리를 꺼내기도 한다.
90년대 중반 데뷔한 한 남자 배우는 “요즘처럼 스타가 빨리 나오는 시기도 없었던 것 같다”며 “연기를 할 수 있는 매체가 워낙 다양한 데다 대중의 관심사도 빨리 변하면서 스타가 탄생하고 사라지는 주기가 굉장히 짧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시나리오조차 못 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며 “비중이 많지 않아도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역할이라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잊힐 것 같다’는 불안함도 있지만 배우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흥행 욕심도 다작 행렬의 또 다른 원인이다. 최근 영화계에서 스타 여러 명을 캐스팅해 공동 주연을 맡기는 작품들이 대거 등장한 데 따른 결과. 혼자서도 영화 주연을 거뜬히 맡을 만한 배우들을 한데 모아 관객의 관심을 잡아당긴 작품은 그만큼 흥행 가능성도 높다.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높은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는 <도둑들>이 대표적인 영화다. 김윤석 김혜수 전지현 이정재 김수현 등 쟁쟁한 스타를 기용해 대중의 관심을 모았고 관객을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