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연은 방송사들마다 경쟁적으로 개별 인터뷰를 담아내려 하는 등 미디어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
‘코리아하우스’에 가장 먼저 나타난 메달리스트는 유도 66㎏급의 조준호(24·한국마사회)였다. 조준호의 등장이 관심을 모았던 이유는 동메달 획득도 이유였지만 그보다 준결승전에서 심판 전원의 만장일치로 승리를 거머쥐었다가 심판위원장의 한마디에 판정이 거꾸로 뒤집어진 오심 판정 때문이었다.
기자회견에는 조준호와 문원배 대한유도회 심판위원장이 함께 참석했다. 대표팀 감독이나 코치가 아닌 문 심판위원장이 함께 기자회견에 나온 이유는 명백했다. 전날 벌어진 심판 판정 번복에 대해 설명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문 심판위원장은 조준호의 판정승을 판정패로 번복한 심판위원장의 판단이 정확하다고 밝히면서 “심판 3명이 전체적인 흐름만 보고 파란색 기를 잘못 든 것”이라고 ‘친절하게’ 풀어냈다. 또한 문 심판위원장은 “유효 10개를 따도 절반 하나를 따라갈 수 없으며 조준호는 우세하게 경기를 이끌었지만 페널티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면 유효에 상당하는 큰 포인트에 점수를 주게 돼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이후 박용성 대한체육회 회장이 조준호의 판정 번복은 “오심을 제대로 잡은 것”이라고 두둔하면서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기 시작했다. 국제유도연맹 회장을 역임했던 박 회장은 조준호 문제뿐만 아니라 펜싱 신아람 사태에 대해서도 뒷북 행정, 꼼수 언행을 보이는 바람에 어느 나라 체육회장이냐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조준호 이후 유력 금메달 후보였던 유도 왕기춘과 펜싱 남현희가 잇달아 메달 획득에 실패하면서 코리아하우스가 잠시 휴식기를 가졌지만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펜싱 남자 개인 플뢰레에서 최병철이 동메달을 획득하고 유도 81㎏급에서 김재범이 부상 투혼을 발휘하며 감격적인 금메달을 목에 거는 바람에 두 선수가 한자리에서 기자회견을 가질 수 있었다.
미디어의 모든 관심은 김재범이었다. 특히 김재범이 금메달을 획득하자 인터넷에선 김재범이 여자친구로 추정되는 여성과 함께 찍은 사진이 큰 화제를 모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는 당연히 그 여성과 김재범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김재범은 이에 대해 “믿고 맡기겠다”는 아리송한 대답을 내놓았다. 무슨 뜻이냐는 거듭된 질문에도 “(질문한 기자한테) 정말 나쁘다”며 웃음으로 마무리했다.
기자회견 이후 김재범과 따로 얘기를 나누던 중에 다시 그 질문을 던졌더니 김재범은 “기자님이 저한테 그런 질문을 하실 줄 몰랐다”며 원망 어린 눈길을 보냈다. 곤혹스러웠다는 의미다. 인터넷에선 그 여성의 정체에 대해 걸그룹의 한 멤버라고 밝혔고, 지목된 그 멤버는 자신의 SNS를 통해 “재범 오빠랑은 친하지만 여자친구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답답한 메달 행진에 가속도를 붙인 선수는 펜싱 정진선, 김지연, 사격 김장미, 그리고 유도 송대남이었다. 동메달을 받은 정진선을 제외하곤 모두 금메달을 획득하며 미디어의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낸 선수들 중에서도 최고 인기 스타는 김지연이었다. 여자 펜싱에서 첫 금메달이 나왔다는 사실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출중한 외모가 실력과 함께 시너지 작용을 하며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를 정도로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냈다.
똑같은 금메달을 획득했는데도 불구하고 사격 김장미는 소감을 말하는 것으로 정리가 된 반면 김지연은 공식 기자회견 이후에도 방송사들마다 경쟁적으로 개별 인터뷰를 담아내려 해 코리아하우스에 일대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지연은 외국 관광객들한테도 인기가 높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 올림픽 공식 차량을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관광객들이 다가가 함께 사진을 찍자고 요청하는 일이 잇따랐다.
선수들이 일군 메달에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 있듯이 금메달리스트라고 해서 관심과 인기의 정도가 비슷할 수 없다는 걸 김지연을 통해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메달을 획득하고도 경기가 남은 선수들은 코리아하우스를 찾는 시기를 모든 경기가 끝난 이후로 미뤘다. 그래서 제일 먼저 금메달을 획득한 사격의 진종오와 은메달을 두 개나 확보한 박태환은 50m권총과 자유형 1500m가 끝난 후 기자들과의 편한 만남을 갖겠다며 양해를 구해왔다.
한편 한국의 메달리스트들은 인터뷰 때마다 그동안 자신을 후원해준 업체의 이름을 열거하며 기자들에게 “꼭, 반드시 기사화해 달라”는 특별한 부탁을 전해왔다. 그중에서도 김재범은 소속팀은 물론이고 드링크업체, 치킨집 이름까지 줄줄이 거론하며 스폰서들에 대한 감사를 드러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펜싱 최병철이 큰일 나게 생겼다며 자신의 소속팀인 화성시청에 감사의 인사를 전해 기자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코리아하우스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나온 선수들은 이구동성으로 다시 선수촌으로 들어가는 게 싫다고 말했다. 이미 경기를 모두 마쳤고 마음의 부담을 훨훨 날려 보냈기 때문에 일상으로 돌아가 런던 시내를 마음껏 활보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한테는 런던에서도, 또 귀국해서도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각종 인터뷰와 방송 출연이 줄지어 있다. ‘힘들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메달리스트가 이렇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어차피 반짝 관심이고 반짝 인기니까. 선수들도 그걸 잘 알기 때문에 이 순간을 즐기려고 해요.”
8월 4일 현재, 한국은 금9개, 은2개, 동5개로 종합 3위에 올라있다.
런던=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