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나연이 7월 9일 US여자오픈에서 챔피언에 오른 뒤 우승컵에 입을 맞추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런던 올림픽이 한창이던 8월초 <일요신문>으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박인비의 부친 박건규 씨였다. 처음에는 박인비가 7월 29일 끝난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4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것에 대한 인사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가벼운 ‘항의’가 주목적이었다. 7월 17일자(1053호) ‘젊은 엄마가 말하는 US오픈 우승 최나연 성장스토리’ 기사에서 박인비에 관한 잘못된 내용이 있다는 것이었다.
▲ 박인비 |
살짝 웃음이 나왔다. 물론 정확한 지적이다.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이것에 대해서는 잘 아는 사람의 설명이니 말이다. 웃음이 나온 것은 ‘이렇게 작은 부분까지 서로들 신경을 쓰고 있구나’라는 점 때문이다. 세계 최고인 한국 골퍼들은 이 정도로 라이벌 의식이 강하다.
1998년 박세리가 미국에 건너가 세계를 제패하니, 이어 김미현-장정-한희원 등이 뒤를 따라 미국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 전통은 ‘세리키즈’ 세대까지도 계속돼 한국 선수 중 누가 치고 나가면 반드시 후속타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미LPGA에서는 코리안 시스터스의 연속 우승이 유난히 많다. 3연속 우승은 다수 있었고, 2006년과 2010년에 이미 4연속 우승이 나온 바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여자골프는 한 가지 부족한 게 있다. 바로 미LPGA ‘올해의 선수’ 상이다. 상금왕은 2009년 신지애(24·미래에셋)와 2010년 최나연이 차지한 바 있고, 최저타상인 베어 트로피(vare trophy)는 2003년 박세리, 2004년 박지은, 2010년 최나연이 각각 수상한 바 있다.
하지만 포인트로 최고의 선수를 가리는 ‘올해의 선수’는 아직 배출하지 못했다. 박세리, 박지은은 당대 최고의 선수였던 아니카 소렌스탐(은퇴)에게 뒤졌고, 그 이후에는 로레나 오초아(은퇴)와 청야니(대만)에게 맨 앞자리를 내줬다. 햇수로 15년째인 미LPGA 도전사에서 한국선수가 ‘올해의 선수’상을 차지하지 못한 것은 이상할 정도였다.
▲ 유소연 |
올해의 선수는 대회마다 1위 30점, 2위 12점, 3위 9점 등 10위까지 포인트를 부여해 그 합으로 최종 선정자를 가린다(메이저대회는 2배). 미LPGA는 8월 17일 개막한 세이프웨이클래식을 포함해 아직 12개 대회가 남아 있다. 메이저대회도 런던 올림픽으로 인해 일정이 뒤로 밀린 브리티시여자오픈이 9월에 열린다. 상승세를 탄 한국선수들이 충분히 역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올해의 선수상을 차지하는 선수는 상금왕과 최저타상, 다승왕까지 추가로 노려볼 만하다. 이미 신인왕은 유소연이 경쟁자들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일찌감치 예약을 해 놓은 상태다.
에비앙마스터스 우승을 포함해 최근 6개 대회 연속 톱10 행진을 구가하고 있는 박인비는 “퍼팅 감각이 최고이고, 고질적인 티샷 불안도 없어졌다. 남은 대회에서 최대한 우승컵을 더 모아 올해의 선수 및 상금왕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박인비는 에비앙 마스터스 시상식에서 대회 전통대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스카이다이버가 건네준 태극기로 몸을 감싸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리고 “마침 런던올림픽이 열리고 있어서 태극기를 보니 마치 금메달을 딴 것 같았다. 4년 뒤 올림픽 무대에 꼭 서고 싶다”고 말했다. 유소연은 우승소감에서 소속사가 같은 손연재(18·리듬체조)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손)연재가 내게 ‘후프와 볼 연기를 마치고 중간 순위 3위까지 올라가니 메달에 욕심을 내면서 곤봉에서 실수를 저질렀다’고 했다. 이 얘기를 듣고 나도 우승에 욕심을 부리지 말고 경기에만 집중하도록 노력했다.” 최나연은 아예 런던으로 날아가 절친 김연경(배구)을 응원하며 일찌감치 올림픽 현장학습을 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골프는 남녀 각 2개 종목(단체·개인)씩 열릴 예정이다. 여자의 경우 개인전이야 변수가 좀 있다고 해도, 단체는 한국의 우승확률이 가장 높다. 거의 여자 양궁 수준으로 봐도 무방하다.
한국은 앞서 언급한 최나연 박인비 유소연 유선영 외에도 올림픽 금메달 후보가 아주 많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한국에 이어 일본 프로 대회에서도 역대 18홀 최저타 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김효주(17·대원외고), 일본에서 상금왕 3연패에 도전하고 있는 안선주, 미LPGA 올해의 선수 랭킹에서 11, 12위에 올라 있는 양희영, 서희경 등 일일이 언급하기 힘들 정도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