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세돌 9단의 대국 모습. |
▲ 제24회 TV바둑 아시아 선수권전에 출전한 일본의 하네 나오키 9단(왼쪽)과 우리나라의 백홍석·박정환 9단. |
박정환 9단은 8월 14일, 서울 김포공항 근처 메이필드호텔에서 벌어진 ‘제24회 TV바둑 아시아 선수권전’ 1회전에서 일본 바둑명문가 출신 하네 나오키 9단에게 백을 들고 154수 만에 불계승을 거두었다. 수수가 말해주듯 격렬한 단명국이었다. 박 9단은 바둑돌이 불과 20여 개밖에 놓이지 않은 초반에, 상상하기 어려운 괴력으로 단 일합에 하네 9단을 쓰러뜨렸다.
<2도>는 얌전한 청년 박정환이 돌변해 무지막지한 힘으로 상대를 덮어 누르는 장면. 흑1은 온건 타당한 삭감이었는데, 그걸 다짜고짜 백2로 씌워 간 것.
<3도>는 <1도>에서 이어지는 수순이다. 흑1로 받을 수밖에 없고, 백2, 4에 흑5의 파호도 절대인데, <4도> 백1, 3으로 흑2, 4를 강요한 후 5로 끊고, 흑6일 때 백7로 따라붙는 것이 준비된 수였다. 그런가? <5도> 흑1, 3에서 5, 7이면? 우하귀 쪽 흑말은 완생이고, 그렇다면 하변 백말은 사는 길이 없는 것 같은데?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6도> 백1로 이쪽을 젖혀 흑2를 응수시킨 후 백3으로 내려서는 수가 있었다. 흑4로 치중하는 수가 있어 여전히 백말이 자체로 사는 수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백5, 7, 9 다음 11로 단수치며 들어가는 수!
<7도> 흑1 따내고 백2로 계속 몰 때 흑은 4의 곳에 두어 살 수가 없다. 살면 백도 의 곳을 되따내 살아가니까. 바둑은 물론 끝이다. 흑3으로 에 잇자 백4로 치중. 백도 미생이지만 흑도 미생이니 이제는 수상전.
결론은 저 왼쪽 1선의 패. 그리고 흑은 좌하귀 백말을 잡고 백은 우하귀 흑을 잡아 바꿔치기가 이루어졌다. 멀쩡하던 좌하귀 백말이 통째로 들어간 것은 컸다. 평소라면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잡혀 있던 하변 백말이 살아간 것, 그것도 그냥 살아간 것이 아니라 우하귀 흑말을 잡고 살아간 것, 그게 더 컸다.
잠깐 <6도>로 돌아가 백1로 귀에서 젖힐 때 흑2로 내려설 것이 아니라 흑A로 따내는 것은 어떨까. 그건 이하 백11까지는 똑같고, <6도> 백11, 곧 <8도> 백1 때 흑2로 두 눈이 생기는 것 같지만, 백3 몰고 흑4 이은 다음 백5로 들어가 패. 흑2로 3의 곳에 이어도 백5로 몰아 역시 패. 이래도 패, 저래도 패인데, 어쨌든 흑은 패가 나면 안 되는 것.
관전석에서는 “<1도> 백2, 4는, ‘2로 짚고 4로 날아오르는’ 것 같다”고들 했다. 일주일 전에 보았던, 도마의 신 양학선 선수의 모습이 연상되었던 것인지. 관전석에서는 또 “이후 백의 수순은 한 발 한 발이 진종오 김장미의 탄환, 기보배의 화살 같다”고 말했다.
<9도>는 <2도>에 이어지는 수순. 흑1로 나가자 백은 2쪽을 막아버렸다. 이게 기상천외한 후진이었다. 흑3으로 머리를 내밀면? 봉쇄하는 수단이 있나? 있었다. 백4, 6으로 건드려 놓고 8로 씌운 수가 그것. 처음에는 억지 같고 무리 같았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10도> 흑1, 3, 5에 백2, 4에서 6으로 꽁꽁 틀어막는 수, 이게 통했고 흑은 잡혔다. <9도> 백4, 6은 그냥 건드린 게 아니라 치밀한 사전공작이었다. 이후의 변화를 일일이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