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만수 SK 감독의 ‘헐크 액션’이 새삼 논란이 되고 있다. 상대팀에 대한 배려 부족이란 비판이 있는가 하면 선수들과 호흡하려는 자세라는 시각도 있다. 연합뉴스 |
▲ 김기태 LG 감독. 사진제공=LG 트윈스 |
9월 1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SK와 LG의 경기에서 묘한 장면이 연출됐다. LG가 0 대 3으로 뒤진 9회 말 2사 2루에서 박용택의 대타로 고졸 신인 신동훈이 나온 까닭이다. 이날 안타가 있던 중심타자 박용택을 뺀 것도 의문이었지만, 대타로 나온 신동훈이 투수였다는 건 더 큰 의문이었다.
결국 신동훈은 타석에서 가만히 서 있다가 삼진으로 물러났고, 경기는 0 대 3 LG 패배로 끝났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LG 김기태 감독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려 했으나, 김 감독은 이미 구장을 빠져나간 뒤였다. 여기다 김 감독의 휴대전화 전원도 꺼져 있어 기자들의 궁금증은 증폭됐다.
기자들은 “김 감독이 SK의 투수교체에 불만을 품고, 고의로 경기를 포기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게 아니면 타석에 투수를 올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가 지나고 김 감독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결론은 ‘기자들의 추측이 거의 맞았다’는 것.
김 감독은 “SK가 장난치는 것 같았다. 사람을 죽였다가 살리고, 또 다시 죽이는 꼴이었다. LG와 LG 팬들을 기만했고,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며 SK 이만수 감독의 투수교체에 분노했다. 그러나 정작 이 감독은 김 감독의 논리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었다. 이 감독은 “전반기 박희수가 자주 등판한 바람에 부상으로 한 달 정도 쉰 적이 있다. 정우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박희수에게 휴식을 제공하려 바꾼 것이고, 이재영이 2루타를 맞는 장면을 보고 위험하다고 느껴 불가피하게 정우람을 등판시킨 것뿐”이라며 “같은 상황이라면 LG는 가만있었겠는가. 봉중근을 올리지 않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야구인 대부분이 이 감독의 발언을 지지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도 김 감독의 발언에 납득이 가지 않았는지 하루 뒤 상벌위원회를 열고 김 감독에게 ‘스포츠 정신을 훼손했다’며 벌금 500만 원과 엄중경고의 제재를 부과했다.
# 김 감독의 납득할 수 없는 논리들
KBO의 징계소식이 알려지자 LG 구단은 “KBO에서 객관적으로 보고 판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KBO가 내린 징계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여기서 김 감독 사태는 일단락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김 감독이 오랫동안 SK의 비매너를 참다가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란 소문이 퍼지며 다시 논란이 재연됐다.
실제로 김 감독은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다가 “어제 일만 갖고 경기 포기를 하진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LG 모 코치는 “김 감독이 이 감독의 과도한 어필을 늘 불편하게 지켜본 게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대표적인 경기가 지난 6월 12일 잠실전이었다.
당시 LG는 9회말 2사까지 5대 8로 뒤지고 있었다. 하지만 주자가 1, 2루에 있어 홈런 한방이면 동점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타자가 한방을 갖춘 오지환이라 기대가 컸다. 하지만, 오지환은 정우람의 초구에 손등을 맞고 쓰러졌다. 이때 이 감독이 벤치에서 나와 “몸에 맞은 게 아니라 배트에 맞은 것”이라고 어필했다.
LG 모 코치는 “당시 김 감독이 ‘다친 선수를 옆에 두고 어떻게 저런 항의를 할 수 있느냐’는 표정을 지었다”며 “이때부터 김 감독이 이 감독에게 서운한 감정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LG 선수들 역시 “SK가 과거부터 비매너 플레이를 하고 야구계의 불문율을 깨왔다”며 격앙된 분위기다. 자,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과연 SK의 투수교체와 이 감독의 어필이 비매너이자 야구의 불문율을 깬 행위냐는 것이다.
일단 9회 투수교체는 야구인 대부분이 ‘비매너’라고 평하는 것 자체가 ‘비매너’란 반응이다. 이 감독의 어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심판은 “김 감독이 야구규칙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몸에 맞는 공과 관련한 어필은 볼 데드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만약 이 감독이 느리게 나오다 인플레이 상황이 된다면 그 항의는 아무리 정당해도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 몸에 맞는 공 상황이 이미 종료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되레 느리게 나오는 걸 싫어하는 상대팀 감독이 대부분이다. 이 감독이 항의하러 나온 상황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 감독은 공이 오지환의 손등에 맞지 않아 멀쩡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어필하러 나온 것이었다. 그런 이 감독 보고 ‘아픈 선수를 보고도 어필하러 나왔다’고 비난하는 건 상대방이 수긍하기 힘든 소리다.”
▲ 김성근 전 SK 감독.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사실 SK를 제외한 7개 팀은 SK를 ‘비매너 팀’으로 보는 경향이 짙다. 모 선수는 이를 ‘SK의 원죄’라고 칭했다. SK의 비매너 논란은 전임 김성근 감독 시절부터 제기됐다.
김 전 감독 재직 시절 SK의 비매너 논란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 시작은 2007년 SK와 현대전부터였다. 당시 SK는 9 대 1로 앞선 7회말 2사부터 김경태, 김원형, 이영욱이 1타자만 상대하도록 했다. 한발 나아가 14 대 3으로 앞선 9회말 2사에서 김 전 감독은 윤길현을 가득염으로 교체하기까지 했다. 가뜩이나 SK의 잦은 투수교체에 마음이 상했던 현대를 비롯한 다른 팀들은 SK를 ‘비매너 팀’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빈볼을 수시로 던졌다.
그 해 10월 한국시리즈에서도 SK는 비매너 논란에 휩싸였다.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두산 주자 이종욱과 SK 2루수 정근우 간의 충돌이 원인이었다. 당시 정근우는 포수의 송구를 놓친 후에 3루로 달리려는 이종욱의 다리를 잡아 의도적으로 주루를 방해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여기다 정근우는 시즌 내내 2루로 달려오는 주자 앞에서 베이스를 다리로 가로막는 포구자세를 취해 주자의 부상 원인이 됐다는 원성을 들었다. 실제로 그 해 시즌 초 이종욱은 도루 도중 정근우와 부딪쳐 허벅지를 꿰매는 부상을 당했다.
정근우는 “의욕이 지나친 감이 있었다”며 “문제가 된 플레이를 수정하겠다”고 했지만, 일부 야구팬의 분노는 진정될 줄 몰랐다.
2009년엔 ‘사인 훔치기’ 논란으로 SK가 다른 팀들의 공적이 됐다. KIA가 한국시리즈 1차전에 앞서 “SK가 사인을 훔친다”고 불만을 터트린 게 도화선이었다. SK는 “말도 되지 않는다”며 적극 부인했으나, SK를 제외한 팀들은 KIA 손을 들어줬다.
이밖에도 SK가 ‘비매너 야구’로 몰린 사례는 부지기수다. 하지만 SK라고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비매너 논란이 있을 때마다 김 전 감독은 “야구는 결국 승리가 목적”이라며 “잦은 투수교체는 우리 팀 사정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답답해했다. 일부 야구인도 “만약 SK가 약팀이었다고 해도 ‘비매너’ 운운했겠느냐”며 “SK가 너무 잘하니까 뭐라도 꼬투리를 잡아 곤경에 처하게 하려는 얕은 수”라고 다른 팀을 비판했다.
# 헐크 세리머니가 불편하다?
지난해 시즌 중반 김 전 감독이 경질되면서 이만수 수석코치는 감독대행으로 승격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자 정식 감독에 취임했다. 이 감독은 기자들과 만날 때면 “메이저리그처럼 정정당당하게 싸워야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고, SK는 ‘비매너’ 논란에서 점점 자유로운 팀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비매너 논란이 재연됐다. 이번엔 SK 선수들이 아니라 이 감독이 장본인이었다.
이 감독은 자기 팀 투수가 삼진을 잡거나 타자가 홈런을 치면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흔들곤 했다. 과거 현역시절부터 희로애락을 여과 없이 드러냈던 이 감독이라, 그리 색다를 게 없는 제스처였다.
하지만 일부 야구인은 “이제 이 감독도 50대 중반의 선참 감독이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좋아하면 상대팀 선수들과 지도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겠느냐”며 자중을 요청했다. 언론에서도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며 이 감독 특유의 세리머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 감독은 “어째서 세리머니가 문제가 되느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감독은 “비매너와 불문율을 깨는 행위를 엄격하게 따지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감독 특유의 세리머니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선수들과 같은 눈높이로 호흡하려는 태도가 그리 잘못이냐”고 항변했다.
결국 이 감독은 주변의 조언에도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감독의 화려한 세리머니 역시 관중에겐 소중한 볼거리가 된다”는 이 감독의 생각은 나름 의미가 있었다. SK에서도 이 감독에게 별다른 조언을 하지 않았다.
모 야구인은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타격코치를 했던 LG 김 감독의 눈에 미국식 세리머니에 능한 이 감독이 비매너로 비췄을 수 있다”며 “어쩌면 두 감독의 스타일 차이가 불필요한 논란의 배경이 됐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재미난 건 일본 프로야구에서 상대 팀 감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9회 2사에 경기를 포기한 감독은 없다는 것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