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만에 다시 찾아 100명 진료...안과수술환자와 극적 상봉도
그린닥터스재단(이사장 정근)과 온종합병원(병원장 김동헌) 등은 정근 이사장(안과)·윤선희 원장(안성형·이상 정근안과병원)·박석주 교수(부산백병원·신장내과) 등 의사들과 정복선 이사·주연희 간호부장 등 온종합병원 간호사 24명, 자원봉사자 조희억 목사 등 모두 60명의 봉사단을 꾸려 지난 12월 29일과 30일 이틀간 경남 사천시 동서동 신수도에서 무료 진료활동을 벌였다.
연말연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신수도를 찾은 그린닥터스 봉사단은 선착장 인근 신수어촌계 사무실에 임시진료실을 설치하고, 이틀간 100여 주민들을 무료 진료했다. 외래진료를 받은 대부분의 주민들은 고급 영양제 처방을 받았고, 어깨나 허리, 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어르신들은 물리치료까지 받았다.
신수도는 삼천포신항에서 남쪽으로 약 2㎞ 지점에 있는 섬으로, 해안선 길이는 9.3㎞나 달해 배편으로 트래킹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편이다. 지난 2003년 창선·삼천포대교의 개통으로 사천시 삼천포와 남해군 창선면이 이어지면서 남해섬까지 자동차로 다닐 수 있으나, 신수도는 여전히 배편으로만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낙도다. 현재 120세대가 등록돼 있으나, 거의 1인 가구이며 20곳은 빈집 상태다.
그린닥터스가 이 낙도를 찾은 게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4년 9월 12일과 13일 이틀간 그린닥터스는 대규모 의료봉사단을 꾸려 신수도에서 안과, 정형외과 등 무료 진료봉사를 펼쳤다. 그해 1월 초부터 부산 서면에서 정근안과를 운영하던 정근 그린닥터스 이사장은 신수도의 신수교회 조희억 목사와 함께 PC통신을 통해 신수도 섬 주민들에게 무료 원격진료 봉사도 펼쳤다.
당시 신수도에는 드물게도 무선기지국이 설치돼 육지와 무선통신이 가능했고, 이를 이용해 그린닥터스와 신수도 주민들 간 원격진료가 이뤄진 셈이다. 그린닥터스는 매주 수요일 오후엔 정근안과에서 안과 진료를, 금요일 오후엔 정형외과 전문의가 무선으로 원격 무료 진료했다.
부산의 정근안과 진료실에서 무선 PC통신으로 삼천포 신수교회 사목실에 설치돼 있는 개인용 컴퓨터에 영상 연결해 원격 진료했다. 신수도 현지서 조희억 목사는 원격진료 시 카메라를 환자의 눈에 여러 각도로 초점을 맞춰가면서 부산의 정근 이사장이 정확하게 진단하도록 도왔다.
조희억 목사의 증언과 기록 등에 따르면 2004년 2월 28일 오후 정근 이사장은 안과 진료실에서 3명의 신수도 주민을 화상으로 원격 진료했다. 부산에서 정근 이사장이 화면에 띄운 시력검사표를 신수도의 주민이 보고 검사에 응했다. 조 목사가 “심장 수술 이후에 갑자기 눈이 안 좋아졌다”고 환자를 대신해서 물었고, 정근 이사장은 ‘왼쪽 눈은 시신경 이상 등 망막에 문제가 있어 보이고, 오른쪽 눈은 백내장 약을 넣으면 된다’고 처방했다.
2004년 신수도에서 원격 진료 보조역할을 자임했던 조희억 목사는 이번 의료봉사에도 동참했다. 조 목사는 아직도 당시 PC 앞에서 카메라로 비춰가면서 이뤄지던 원격 진료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고 전했다.
조 목사는 “당시 컴퓨터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서로 얼굴을 보고 했다. PC화면으로 환자의 아픈 부위를 직접 보시면서 진료했다. 정 원장이 컴퓨터 화면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하려고, 신수도에서 카메라 초점을 맞추느라 꽤나 힘들었다. 원격 시 의사의 처방에 따라 교회에 미리 마련해둔 약을 드렸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린닥터스 봉사단은 19년 전 원격진료를 통해 백내장 수술까지 받았던 신수도 주민 너댓 분과 극적으로 상봉했다. 올해 여든둘 최설자 할머니는 “62세 때 원격 진료로 백내장 진단을 받고 수술 이후 지금까지 좋은 시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침침해서 돋보기로도 조개 다듬기가 힘들었으나, 지금은 맨눈으로도 척척해내고 있다”고 전했다.
12월 29일 밤 자신의 집에 왕진 온 정근 이사장을 반갑게 맞이하던 최 할머니는 “당시 원격진료로 백내장 진단을 받고 모두 5명의 주민들이 부산의 정근안과에서 수술 받았는데, 나만 빼고 다들 나이 들어 세상을 등졌다”고 말하자, 곁에서 귀 기울이던 정근 이사장이 눈시울을 붉혔다.
정근 이사장은 또 여든셋 김형자 할머니 집에서는 20년 전에 작성했던 김 할머니의 종이 진료차트를 보면서 눈 건강 상태를 살폈다. 김 할머니는 “눈은 끄떡없는데, 나이 들면서 자주 어지럼증에 시달리고 고혈압약 등 여러 종류의 약에 의지하고 있다”고 세월의 무상함을 얘기하면서도 20년 만에 찾아준 정근 이사장과 그린닥터스 봉사단원들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다
초고속인터넷 시대가 열리기 직전,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본격 원격진료를 시범 실시했던 그린닥터스 정근 이사장은 “당시 우리나라에 초고속인터넷망이 막 깔리기 시작하고 인터넷 등장 등 정보통신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어, 멀지 않아 국민 건강증진을 위해 원격진료가 합법화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남들보다 먼저 PC통신을 이용한 원격진료를 시도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특히 2004년 10월 개성공단 내 응급진료소를 운영하는 대북사업자로 지정된 그린닥터스재단이 신수도에서 쌓은 원격진료 시스템을 개성공단 진료소와 부산 그린닥터스와 대학병원 간에도 도입하려했으나, 북한 측의 3통 정책, 즉 통행·통관·통신 불가방침 탓에 활용하지 못한 건 아직도 아쉬움이 크다고 정근 이사장은 전했다.
정근 이사장은 “이번 의료봉사 때 19년 전에 원격 진료했던 몇몇 주민이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에는 착잡했지만, 다른 분들은 여전히 건강한 모습이어서 20년 뒤에도 다시 건강한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며 갑진년 새해 소망을 털어놨다.
정동욱 부산/경남 기자 ilyo3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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