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연 회장(사진)이 구속된 지 1개월, 한화그룹은 충격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분위기다. 연합뉴스 |
‘이라크 신도시 수주, 김승연 회장 역할.’
한화그룹이 전한 보도자료의 내용 중엔 이런 제목이 포함되어 있다. 한화그룹이 그동안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Bismayah New City Project)에 얼마나 큰 공을 들였는지, 또 프로젝트가 성사되기까지 김승연 회장의 역할이 어느 정도였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화는 이라크 건설 사업을 위해 100명이 넘는 대규모 TF팀을 구성하는 등 그룹 차원에서 사활을 걸다시피 했다.
한화 측은 “이라크는 준 전쟁지역이어서 애초에 사업 대상 지역으로 삼기에 어려움이 클 것이라는 반대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김승연 회장은 이라크 국가 재건 사업이 반드시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위험요소는 본인이 처리할 테니 신경 쓰지 말라며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 회장이 과거 태평양건설 해외담당 임원으로 근무하며 중동 건설 사업 현장을 직접 지휘했던 경험이 이번 사업 결정을 내리는 데 근원이 되었다고 했다.
▲ 한화그룹 장교동 본사. |
이미 현지에 파견할 인원은 물론 협력업체까지 선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던 한화에서는 프로젝트 무산 위기에서 그 어느 때보다 위기감이 높아졌었다는 것. 한화 관계자는 “선수금 중 상당부분이 현지 고용인원을 위한 자금으로 쓰일 계획이었던 만큼 전체 사업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라크 측은 8월 16일 김승연 회장이 구속된 이후 우리 정부에 사업 지속 여부에 대한 공문을 요청하는 등 국내 분위기를 예의 주시했다. 국토해양부 역시 “사업 차질은 없을 것”이라는 요지의 공문을 보내며 사태 수습에 힘을 모았다.
지난 9월 13일에 7월 말까지 받기로 했던 선수금 10%, 약 7억 7500만 달러가 입금되며 큰 고비를 넘긴 상황이다. 한화그룹 측은 “김승연 회장의 구속 이후 이라크 측 분위기가 전과는 달라 걱정이 많았던 게 사실”이라며 “선수금이 입금되었다는 것은 이라크 측의 사업의지가 확실하다는 의미 아니겠느냐. 앞으로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본다”고 확신했다. 김승연 회장의 구속 당일 하락했던 한화그룹 관련주는 이후 이라크 사업 선수금 입금 소식 등으로 최근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한숨 돌렸지만 한화 내부 분위기는 여전하다. 한화그룹의 한 직원은 “김승연 회장이 가진 무게감과 존재감이 큰 만큼 회사 분위기가 전보다 다소 침체되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한화 계열사의 한 임원도 “이라크 사업의 경우 김승연 회장을 대신해 김현중 한화건설 부회장이 총괄하고 있지만, 굵직굵직한 사안의 경우 회장의 최종 결정이 있어야 하는데 걱정스럽다”며 “신규사업이나 규모가 큰 사업은 당분간 추진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옥중에 있는 김승연 회장 본인이 받은 충격이 가장 컸다는 점이 한화그룹 전체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구속은 경제민주화 논의가 한창인 대선 정국에서 어느 정도 예견되는 분위기였지만, 정작 재계에서는 현실화되리라곤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김 회장은 한동안 가족 면회도 거부했을 만큼 큰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화 관계자는 “처음에는 변호인 외에는 당분간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며 가족과의 면회도 거부하셨다”며 “얼마 전부터 가족들과는 만나고 있지만, 임원들 및 회사 관계자들은 아직까지도 면회를 오지 말라고 해서 아무도 구속 이후에 뵙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심한 충격을 받은 것은 실형 선고에 대해 설마 하던 분위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재벌 총수가 구속된 일은 지난 1990년 이후 경제비리로 기소된 대기업 오너들 중 거의 처음 있는 일. 각각 횡령과 탈세 및 분식회계 등 혐의로 기소됐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건희 삼성 회장과 박용성 전 두산 회장 모두 1심에서부터 집행유예를 선고받거나,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더라도 2심에서 ‘경제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진 바 있다.
이 때문에 한화 내에서도 김 회장의 실형 선고에 충분한 대비를 하지 못했던 상황.
김 회장은 변호인 및 측근들 중 아무도 ‘실형 선고’에 대해 귀띔하지 않은 것에 격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회사 임원들과의 면회를 거부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올 만큼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후문이다.
오는 10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항소심을 앞두고 한화는 대규모 변호인단을 준비하고 있다. 1995년 노태우 전두환 비자금 사건을 맡았고, 2009년 ‘박연차 게이트’ 당시 검찰에서 수사를 지휘했던 홍만표 변호사와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의 노영보 변호사 등이 변호인단에 포함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화 측은 “기존 변호인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보강하는 차원”이라며 “1심을 맡았던 민병훈 변호사도 계속 항소심을 맡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