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 협상에 의혹 증폭, 적격성 논란도 여전…산은·하림 “현재는 공개할 수 있는 내용 없어”
#하림의 적격성 여부 논란
2023년 7월 HMM의 지분 매각 공고 및 예비입찰 당시 독일의 글로벌 선사 하팍로이드, 하림, 동원, LX가 참여했다. 입찰적격후보 선정 시 하팍로이드가 탈락했고 본입찰에는 하림과 동원만이 참여해 같은 해 12월 하림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런데 지금까지 하림의 적격성 여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HMM의 인수자금은 6조 4000억 원가량으로 추정되고 있다. HMM의 인수 주체인 팬오션의 3분기 말 연결기준 현금성 자산은 약 5700억 원에 불과하다. 하림은 현재 양재 물류센터 개발 추진을 위한 6조 8000억 원 규모의 사업비도 조달해야 한다. 산은이 팬오션의 유상증자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향후 팬오션이 3조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재무적투자자가 2조 원 규모의 인수금융을 일으켜 HMM을 인수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유상증자와 관련해 하림이 팬오션의 주주들에게 리스크를 전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상증자 결정이 발표가 나기 전까지 팬오션의 시가총액은 2조 원 수준이었다. 시총의 1.5배 수준인 3조 원의 유증을 거치게 되면 소액주주들의 지분은 크게 희석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유상증자 발표가 나자 팬오션 주가는 20%가량 폭락했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은 “오너들은 폭락한 주식을 매집해 지분을 늘릴 수 있어 유리하지만 대주주를 제외한 모든 주주들은 피해를 입는다”라며 “인수금융을 일으킨 후에 갚아야 하는 연간 이자만 최대 25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영업이익을 다 털어넣어야 하는데 주주들에게 배당은 어떻게 줄 것이며 원금은 어느 세월에 갚겠다는 건가”라고 지적했다.
무리한 인수 추진 때문에 하림그룹 전체의 재무 상태가 악화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하림은 자신들의 자본 조달 역량을 한계까지 끌어다 쓰고 있다. 그런데 거시경제의 악화로 유동성 위기가 생기거나 할 경우 대응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특히 해운업황 악화가 예고돼 있는데 HMM을 잘못 가져왔다가 손실을 보게 되면 그룹 전체가 금호그룹처럼 공중분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HMM 노조 "유보금은 경쟁력 위해 투자돼야"
당초 하림이 인수 목적으로 내세운 팬오션과 HMM의 시너지 효과가 마땅찮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HMM은 2022년 중장기 사업전략과 관련한 비전 선포식 당시 5년 내 벌크선대를 55척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는데 이 경우 팬오션과 사업이 중복된다. 서로 시너지를 내는 것이 아니라 양사가 한정된 시장을 두고 경쟁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 인수 목적은 HMM이 보유하고 있는 10조 원 이상의 유보금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홍기훈 교수는 “문제는 인수가 마무리된 후 하림이 HMM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으로 인수자금을 갚는다고 해도 산은이 제동을 걸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제동을 걸었다가 하림이 재정 위기를 겪게 되면 산은 입장에서도 부담이 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HMM은 글로벌 점유율 8위의 글로벌 선사로 현재 78만 3732TEU의 선복량을 운용하고 있다. 점유율 9위인 양밍이 70만 8591TEU로 뒤를 바짝 따라붙고 있고 7위인 에버그린 라인은 164만 5185TEU로 한참 앞서 있다. 점유율을 확대하려면 컨테이너선을 늘려야 하는데 차입금을 제외하면 통상 2만 4000TEU급 선박 한 척에 1500억 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보금 10조 원을 보유하고도 점유율 확대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HMM 노조 관계자는 “해운산업 경쟁력 확대를 위해 투자되어야 할 돈을 하림이 인수자금 갚는 데 쓰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 하림이 구체적인 자금 조달 계획과 상환 계획을 전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림 측은 유보금을 HMM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최우선적으로 사용하겠다며 수습에 나섰다.
#산은 직원들도 사면초가?
산은은 매각예정가도 인수조건에 대해서도 별다른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협상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나온다. HMM소액주주 연대 관계자는 “국민의 세금을 투입해 회생시킨 기업인데 산은이 직접 매각 예정가를 공개하지도 않고 비공개로 협상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게 불만스럽다”고 말했다.
구교훈 회장은 “산은이 협상 조건을 투명하게 공개했어야 사리에 맞는다. 계약 조건을 미리 밝히고 하림이 수용할지 여부를 따진 후 결렬되면 차점자에게로 넘어가야 하는데 거꾸로 하림이 먼저 조건을 제시하고 산은이 고민하다가 맞춰주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다”며 “산은의 인수 조건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산은은 어떻게든 이번에 매각을 성사시키려는 기조가 강하다. 팔아서 잘못됐을 때는 산은이 책임질 필요가 없지만 적정가를 부른 기업에 안 팔았을 때는 향후 산은 직원들이 감사를 받아야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산은 직원들도 사면초가다. 정부가 나서서 공식적으로 의사결정 과정을 보호해줘야 하는데 그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산업은행 관계자는 “매각 관련 진행 상황이나 정보들은 별도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기존에도 M&A 절차 등을 진행할 때 공개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하림 관계자 역시 “현재 세부적인 조건에 대한 협상이 진행 중이다. 현재는 확정적으로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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