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은 일부에서 제기된 ‘총선 동원론’에 대해 “나가는 일은 절대 없 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 ||
직접적인 계기는 청와대가 오는 8월 말까지 내년 17대 총선 출마희망자들에 대한 ‘일괄정리’ 방침을 밝히면서부터다. 청와대 일부 참모들이 내년 총선 출마의사를 공공연히 내비쳤고, 이 과정에서 잡음이 적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그러나 민주당 신주류 내에서 “이 기회에 청와대 시스템을 전면재정비해야 하며 국정혼선 논란에 직·간접적 책임이 있는 인사들을 털고 가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청와대 개편설’은 여권 내 각 그룹간 힘 겨루기의 소재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에서 청와대 내 세 축인 ▲문희상 비서실장 그룹 ▲문재인 민정수석을 정점으로 한 부산인맥 ▲이광재 국정상황실장 중심의 386 핵심측근들이 각기 신주류 내 각 세력과 연계해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분석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
여권 핵심부는 청와대 개편을 두고 여러 얘기가 나오자 공식적으론 “참여정부 출범 때 만든 청와대 조직이나 기구를 근본적으로 개편할 뜻은 없다”(문희상 비서실장)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청와대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권 내 역학관계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란 전망이 사그러들지 않고 있어 권력투쟁설의 배경과 향배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청와대를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은 외형상 지금의 조직과 인적 구성으로는 청와대가 국정 컨트롤 타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우선 시스템상으로는 청와대 정책실과 정무수석실이 주요 개편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김대중 정권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민주당 이강래 의원은 “참여정부가 출범하기 이전에 마련된 기존 프로그램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정책실 체제로는 현안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가 없다. 비전도 좋고 장기적인 계획도 중요하지만 현안을 제대로 풀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전 정권에서처럼 부처 담당 수석비서관체제를 부활시켜 부처간 갈등 조정과 통합 등 국정 컨트롤 타워로서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무라인의 문제와 관련, “지금처럼 청와대와 여당·국회 관계가 심각했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며 “청와대 정무수석은 법적으로 정치활동을 못하도록 되어 있는 만큼 정무장관직을 부활해 여야를 두루 두루 껴안으면서 정치현안을 풀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여야 모두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는 유인태 정무수석 중심의 현 청와대 정무라인으로는 기대할 것이 없으니 아예 여당 중진을 정무장관으로 임명해 청와대와 여야 간 연결통로로 삼자는 주장이다.
▲ 386참모그룹들은 ‘청와대 개편설’에 ‘불순한 의도’가 있다 고 반박한다. 사진은 지난 4월 정만호 비서관(왼쪽)과 얘 기하는 이광재 국정상황 실장. | ||
그는 나아가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조선왕조의 안정을 위해 개국공신을 내친 태종 이방원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말로 측근들에 대한 결단을 요구하기도.
흥미로운 것은 현 청와대 참모진에 대한 교체 주장이 부산인맥의 좌장격인 문재인 민정수석과 386참모그룹의 핵인 이광재 국정상황실장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점. 신주류의 한 의원은 “현재 청와대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국정 주요 현안을 경험이 일천한 문 수석과 이 실장 두 사람이 좌지우지 한다는 점이다. 한동안은 문 수석이 ‘왕(王)수석’으로 불리며 종횡무진하다가 언론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고 잠잠해지는가 했더니, 얼마 전부터는 정보라인을 장악한 이 실장이 문 수석을 대체해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일등공신이라고 하지만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 지금처럼 소관 분야 가릴 것 없이 관여하려 든다면 노 대통령이 아무리 ‘참여정부의 1인자는 시스템’이라고 강조해도 부적절한 ‘인치(人治)’논란이 계속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요즘 들어 청와대와 민주당 주변에선 이 실장의 독주와 관련해 갖가지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이 실장이 최근 자신에게 집중포화를 퍼부었던 일부 언론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정보를 선별적으로 흘린다”는 주장에서부터 “민주당 내 대구·경북 출신 실세 인사와 이 실장이 힘을 합쳐 부산인맥을 견제하고 있다” “이 실장이 국정상황실로 들어오는 안보 관련 정보를 노 대통령에게 별도로 보고해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등의 확인 안된 루머들이 나돌고 있다.
이와 관련, 민주당내 노 대통령의 한 핵심측근은 “이 실장을 둘러싼 여러 얘기를 요즘 자주 듣고 있다”면서 “측근들 사이에서도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실장의 행보와 관련해 우려 섞인 시각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신주류 내에서는 문 수석과 이 실장에게 과도한 힘이 쏠리고, 양자간 갈등설이 끊이지 않는 점을 들어 ‘총선 총동원령’을 내세워 이 기회에 두 사람을 청와대에서 방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문 수석의 경우 386참모그룹들로부터 일찌감치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의 지역구인 부산 북-강서갑에 출마시켜 부산 총선의 구도를 뚜렷하게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던 터다.
▲ 이강래(왼쪽) 조순형 의원은 최근 현재의 청와대 운영 시스템과 아마추어리즘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개편을 주장했다. | ||
그러나 신주류 일각의 이 같은 공세에 대해 당사자인 문 수석과 이 실장은 불쾌감을 표시하며 ‘총선 불출마’ 의사를 밝힘으로써 맞대응하고 나섰다. 문 수석은 “노 대통령으로부터 민정수석 자리를 제의받으면서부터 최근까지 ‘정치는 안한다’는 뜻을 여러 차례 전달했다”고 말했고, 이 실장도 “총선에 나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특히 청와대 386그룹 내에서는 신주류측의 공세와 관련해 ‘불순한 의도’를 거론하며 청와대와 민주당 내 특정 인사들을 배후로 거명하는 등 격앙된 분위기다. 한 386측근은 “신주류 온건파 중진 2~3명이 청와대 고위 인사와의 교감을 토대로 청와대 개편설을 흘리고 있는 것으로 안다. 명분은 총선 출마와 경험 부족을 내세우지만 속내는 그들의 구미에 맞는 인사들을 노 대통령 주변에 배치하려는 것이다. 대부분의 386참모들이 때가 되면 청와대 생활을 접을 생각을 하고 있지만 지금처럼 등 떠밀려 쫓겨나듯 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관심의 대상은 ‘청와대 개편론’ 주장에 대해 키(Key)를 쥐고 있는 노 대통령의 의중이다. 이제까지 드러난 바로는 노 대통령은 “누가 하라고 해서 조직개편을 하는 게 아니라, 내 뜻대로 하겠다”며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개편론이 핵심 측근인 문 수석과 이 실장에 집중되고 있는데 대해 “순수하지 못한 세력들의 음모”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은 편. 그러나 한편에서는 청와대 개편을 요구하는 여론이 계속 확산될 경우 노 대통령이 생각을 달리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