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여자배구의 '거포' 김연경은 자신을 자유계약선수(FA)가 아닌 흥국생명 소속 선수로 규정한 국제배구연맹(FIVB)의 판단에 대해 강하게 불만을 표시했다. 사진은 지난 8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 때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뛰고 싶어요. 그런데 뛸 수가 없네요. 전 분명 코트 안에 있어야 하는데 코트 밖에 앉아 있어야 했어요. 그게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전화 연결이 된 김연경(24)은 카타르 도하에 있었다. 2012 클럽 월드챔피언십에 출전하는 페네르바체 팀 소속으로 도하를 찾았지만 국제이적동의서(ITC) 미발급으로 경기에 나가지 못한 채 벤치만 달구고 돌아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동료 선수들 눈치가 많이 보여요. 연습을 해도 뛸 수가 없으니 괜히 민폐만 끼치는 것 같고… 솔직히 연습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겨요. 가급적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기가 쉽지 않네요.”
최근 국제배구연맹(FIVB)은 해외 이적을 둘러싼 흥국생명과 김연경의 갈등에 대해 구단의 손을 들어줬다. 김연경과 흥국생명이 합의했다는 합의서를 바탕으로 ‘김연경의 현 소속 구단은 흥국생명이다’라는 결론을 내린 것. 이로써 김연경은 자유계약이 아닌 임대 신분으로 페네르바체와 다시 계약해야 하는 것은 물론 2년 임대 후 흥국생명으로 복귀해 두 시즌을 더 채워야 FA가 된다.
“이미 알려진 대로 흥국생명과 작성한 합의서는 제가 사인을 하긴 했지만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약속했고, 그걸 FIVB에 보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어요. 배구협회와 흥국생명에서 직접 약속한 사실이기 때문에 그걸 철썩같이 믿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느낌입니다.”
김연경은 합의서에 사인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그 사인을 하지 않는다면 터키로 출국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외부에 유출하지 않는 걸 조건으로 해서 사인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래는 사인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자리가 공식 기자회견 자리였고, 제가 그 사인을 하지 않으면 평탄하게 마무리 될 수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만약 배구협회와 흥국생명 측에서 (공개하지 않기로) 약속을 하지 않았더라면 전 그 합의서에 사인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 합의서를 FIVB에 보내서 자신의 신분이 자유계약이 아닌 임대 선수로 결정난 데 대해 김연경은 분통을 참지 못했다.
김연경은 대한배구협회의 태도에 대해서도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협회는 구단을 위해서만 존재하나 봐요. 말로는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도 구단 입장을 대변해주는 듯한 느낌이 드니까요. 협회는 선수를 위해서도 힘이 돼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흥국생명 소속으로, 그리고 대표팀 선수 신분으로도 몸을 아끼지 않고 뛰었습니다. 그런 저를 대한배구협회가 아닌 터키배구협회와 페네르바체에서 더 많이 챙겨주고 신경써주고 있습니다. 이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거 아닌가요?”
김연경은 누구보다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한테 죄송하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제 이름이 이런 일로 자꾸 언론에 오르내리니까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어요. 아버지가 한 번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너무 힘들게 살지 말고 쉽게 사는 방법을 택했으면 좋겠다’라고요. 즉 타협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미였어요. 저도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가도 가도 그 끝이 닿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 솔직히 포기하고 싶기도 했어요. 타협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이미 많이 와 버렸어요. 이렇게 달려왔는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죠. 끝을 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10월 18일 오후에 잠시 귀국하는 김연경은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이미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할 뜻을 밝혔다. 잘못된 합의서를 통해 FIVB의 결정이 내려진 만큼 그 잘못된 결정을 바로 잡겠다는 뜻이 확고하다.
“전 반드시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배구선수, 아니 운동선수들의 권리를 조금이라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종목에 비해 배구는 선수들의 권리나 권한이 많이 축소돼 있어요. 선수 생활하면서 늘 안타까웠던 부분입니다. 억울하고 화나고 그만두고 싶어도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는 믿음을 저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