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일까’ ‘그래’ 계획 정황, 피해자 지인에 돈 요구도…투신? 실족? 두 남성 21층 추락 이유는 의문 남아
#비극의 전말
사건이 발생한 건물은 레지던스 호텔로 숙박용 호텔과 주거형 오피스텔이 혼합돼있는 형태다. 1층에 호텔 로비가 있고, 3~6층은 주차장, 7~19층은 오피스텔, 20~21층은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로비에는 프런트 직원 1명만 있었고, 호텔 방문객은 오피스텔 입주민과 구분 없이 같은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있었다.
취재팀은 피의자들이 머물렀던 숙소가 있는 21층에 도착했지만 인기척도 없이 조용했다. 방 내부로 들어갈 수 없어 숙박플랫폼에 게재된 사진과, 블로그에 게시된 해당 호실 숙박 후기글을 확인했다. 방과 연결된 테라스는 약 1.5m 높이의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나무 테이블과 의자 4개가 있었다.
피의자 A 씨와 B 씨는 친구 사이로 4월 8일 해당 호텔에 투숙을 시작했다. A 씨는 2~3년 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된 20대 여성 C 씨에게 “암호화폐로 돈을 많이 벌었으니 같이 놀자”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 고양시에 거주하던 C 씨는 8일 오후 5시쯤 집을 나서 약 1시간 뒤에 호텔에 도착했다.
남성들은 또 다른 피해 여성 D 씨와 텔레그램 구인·구직 채팅방을 통해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들은 “여딜(여자 딜러) 서빙 구함”라는 글을 올렸는데, 과거 홀덤펍에서 일했던 A 씨의 경력을 고려해봤을 때 홀덤펍 관련 구인글로 추정된다. 경기 수원시에 거주하는 D 씨는 이를 보고 A 씨에게 연락해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A 씨는 “8일 오후 10시까지 호텔로 오라”고 했고 D 씨는 호텔로 향했다.
하지만 A 씨가 C 씨와 D 씨에게 했던 말들은 모두 이들을 유인하기 위한 거짓말로 드러났다. A 씨와 B 씨는 특별한 직업이 없는 상태로 암호화폐로 큰 수익을 올리지도 못했다. 또한 딜러나 서빙이 필요한 업종에서 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던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C 씨의 가족은 4월 9일 오후 4시 40분쯤 경찰서에 방문해 C 씨의 실종신고를 접수했고, 경찰은 C 씨의 동선을 확보하기 위해 거주하던 아파트로 향했지만 CC(폐쇄회로)TV 관리자가 없어 다음 날인 10일 오전 7시쯤 CCTV 기록을 확보했다. 택시 탑승 기록 등으로 호텔을 특정한 경찰은 10일 오전 10시쯤 객실을 찾아 C 씨의 행방을 물었고, B 씨는 고개만 내민 채 “안에 없다”고 답했다.
경찰이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1층 로비로 향하던 중 A 씨와 B 씨는 테라스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객실에는 각각 침대와 욕실에 케이블타이로 손과 목이 묶이고, 청테이프로 입이 막힌 여성 시신 2구가 있었다. C 씨와 D 씨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여성들이 “케이블타이에 의해 목 졸림을 당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찰은 CCTV 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피의자들이 사전에 케이블타이와 청테이프 등을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C 씨의 오른팔에는 길이 9cm, 깊이 3cm의 상흔이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과학수사대는 여성이 사망한 뒤 남성들이 시신을 훼손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현장에선 뚜껑이 열린 소주병 여러 개만 발견됐을 뿐, 마약 등의 약물이나 성범죄를 의심할 만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경찰의 초동 대처가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초동 대처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CCTV를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은 C 씨가 거주하던 아파트 자체에 관리 인원이 없었기 때문”이라면서 “CCTV 확인이 어렵다는 것을 인지한 뒤 곧바로 C 씨의 휴대전화 추적에 나섰다. 휴대전화 신호가 끊긴 위치가 어디인지 파악하고, 다음에 택시를 탈 가능성을 고려해 카카오택시 등 플랫폼에 공문 요청도 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호텔에 도착해서도 피의자들이 ‘(C 씨가) 어젯밤에 나갔다’고 하니까 (사실 관계를) 관제실로 가면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 그렇게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금전 노린 계획범행 가능성 높아
피의자 A 씨와 B 씨의 구체적인 범행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경찰은 두 남성의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를 토대로 계획범죄 정황을 발견했다. 피의자들은 범행 전 ‘사람 기절’ ‘백초크(뒤에서 목을 조르는 것) 기절’ ‘자살’ 등의 단어를 검색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여성들이 4월 8일 오후 객실에 들어간 뒤 제압 당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에 A 씨와 B 씨가 서로 메신저를 통해 ‘(여성들을) 죽일까’, ‘그래’ 라는 문답을 주고받은 내용도 추가로 발견해 이들이 계획적으로 여성들을 유인해 살해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경찰은 A 씨와 B 씨가 채무관계로 금전적 어려움을 겪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계좌 추적을 통해 정확한 채무관계를 조사하고 있다. 실제 이들 남성은 D 씨의 휴대전화로 그녀의 지인에게 “오빠, 600만~700만 원 정도 빌려줄 수 있느냐”며 금전을 요구했다. D 씨가 평소 ‘오빠’라고 부르지 않는 점을 이상하게 여긴 지인은 “돈이 없다”며 요구를 거절했다.
김도형 경기북부경찰청장은 4월 18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숨진 남성들의 금전 거래 내역과 주변인 조사를 통해 이들이 부채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다”며 “정확한 액수는 지속해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금전적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피의자가 모두 사망해 명확하지 않고 조사가 더 필요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경찰이 풀어야 할 숙제 중에는 C 씨와 D 씨의 휴대전화 행방도 포함된다. 결정적인 증거가 담겨 있을 가능성이 높아 경찰이 추적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A 씨와 B 씨는 8일 저녁부터 9일까지 여러 차례 외출했는데, 이 시점에 피해자들의 휴대전화를 처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피의자들의 외출 동선을 따라 숨진 여성들의 휴대전화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A 씨와 B 씨가 21층에서 추락한 이유에도 의문이 남는다. 4월 16일 YTN라디오에 출연한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도망가려다가 떨어졌을 수도 있는 거고, 말 그대로 두려워서 자살했을 수도 있는 건데 경찰은 그냥 투신이라고 해버리니까 사건의 전체적인 흐름이 왜곡돼 버린다”면서 A 씨와 B 씨가 고의로 투신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반면 경찰은 남성들의 죽음을 극단적 선택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당황하거나 해서 실수로 떨어질 수는 없다. 테라스 유리 칸막이가 높아서 의지를 갖고 추락해야 떨어질 수 있다. 오히려 피의자 2인은 1.5m 높이의 칸막이를 넘기 위해 옆에 있던 의자나 책상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공범이나 제3의 피해자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공범 존재 여부에 대해 “현장 CCTV를 모두 확인했지만 공범 정황이 없었고, 혹시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는지 계속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또 계좌 내역 등을 추적해 추가적인 피해자가 있는지 여부를 살피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피의자들이 숨진 만큼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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