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10월 17일 대전구장을 찾았다. 김응용 한화 신임 감독은 선수들의 마무리 훈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김 감독은 “한화가 강팀이 되려면 손봐야 할 게 많다”며 “무엇보다 마운드 강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류현진 미국 진출 문제와 외국인 투수 영입은 구단이 결정할 몫”이라고 못을 박았다. 원체 불개입 의지가 확고하다보니 김 감독은 류현진과 따로 면담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찬호는 아니다. 김 감독은 “15일 감독 취임식 때 박찬호와 따로 이야기를 나눴다”며 “그 자리에서 ‘현역으로 계속 뛰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찬호는 확답을 유보한 채 “생각해보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감독은 박찬호가 현역 연장 시 마무리로 쓰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박찬호가 경기 초반까진 구위가 좋은데 나이 때문인지 5회만 넘으면 구위가 떨어진다. 선발 대신 마무리로 쓴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정확한 분석일지 모른다. 올 시즌 박찬호는 피안타율은 2할8푼6리, 피출루율은 3할6푼7리나 됐다. 결코 좋은 성적이 아니었다. 그러나 1이닝을 던졌을 때 박찬호는 피안타율 2할1푼7리, 피출루율 3할2푼을 기록했다. 1구부터 15구 사이를 투구했을 때도 피안타율 2할3푼2리, 피출루율 3할3리로 낮았다.
이는 올 시즌 33세이브를 기록한 넥센 손승락보다 양호한 기록이다. 손승락은 1이닝 투구 시 피안타율 2할5푼7리, 피출루율 3할5리, 1구에서 15구까지 던질 땐 피안타율 2할7푼7리, 피출루율 3할1푼8리를 기록했다.
기록만 따지면 김 감독의 박찬호 마무리 기용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합리성 이면에 존재하는 특수성을 살필 필요가 있다. 한대화 전 한화 감독은 시즌 전 박찬호의 마무리 기용을 고민했다. 하지만, 박찬호가 “불펜에서 충분히 몸을 풀고 등판해야 안심이 된다”고 말하자 곧바로 고민을 접었다.
만약 박찬호가 마무리를 맡는다면 한화는 외국인 투수 2명을 선발요원으로 뽑을 수 있다. 몇 년간 한화는 뒷문 불안으로 외국인 투수 1명을 마무리용으로 뽑았다. 문제는 정작 박찬호가 내년 시즌 거취를 결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화 관계자는 “박찬호가 김 감독과 면담하고서, 라커룸을 정리했다”며 “매우 이례적인 행동이었다”고 귀띔했다. 박찬호의 라커룸 정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수 대부분은 마무리 캠프, 스프링 캠프를 앞두고 라커룸에 비치된 자기 물건을 정리한다. 그 외의 경우는 트레이드나 군 입대 그리고 은퇴뿐이다.
한화 모 선수는 “정규 시즌 막바지부터 (박)찬호 선배가 야구인생을 정리하려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감독이 바뀌면서 (은퇴로) 마음을 굳힌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선수는 “선수단 사이에서 ‘한용덕 감독대행이 감독으로 승격할 시 찬호 형이 1년 더 뛰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많았다”며 “하지만, 김 감독님이 부임하시면서 ‘새로운 사령탑에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박찬호는 시즌이 끝날 무렵부터 야구계 멘토들을 만나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조언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야구인은 “속마음은 더 뛰고 싶을지 몰라도 구단과 후배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상당히 강했다”며 “은퇴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찬호의 고민은 ‘보호선수 외 1명’ 규정에 있다. 한국시리즈가 끝나면 기존 8개 구단은 ‘보호선수 20명 외 1명씩’을 신생구단 NC에 넘겨야 한다. 군 제대선수, FA선수, 외국인 선수 등을 제외한 20명을 선정하는 게 만만찮다. 자칫 유망주를 넘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화 관계자는 “박찬호가 1년 더 뛰겠다고 하면 구단은 박찬호를 보호선수로 묶는다는 게 원칙”이라며 “하지만, 내년 시즌 포함 2, 3년을 준비해야 하는 현장 입장에선 난감한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뭘까.
“야수 9명과 핵심백업요원 1명, 선발투수 5명과 불펜요원 5명을 더하면 20명이다. 만약 박찬호를 보호선수에 포함하면 유망주가 빠져야 한다. 박찬호가 2, 3년 더 뛰면 모를까 길어야 한 시즌이다. 한 시즌을 위해 팀의 미래자원을 내놓는다는 건 분명 악재다. 그렇다고 박찬호를 빼자니 그것도 고민이다. 이미 구단에서 ‘박찬호가 현역 지속을 결심한다면 우리 팀에서 계속 뛰길 바란다’고 공표했기 때문이다. 현장의 고민이 구단보다 심할 거다.”
김 감독은 “박찬호는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한 대스타다. 나보다 위대한 선수다. 그런 선수에게 내가 무슨 조언을 들려주겠나. 만약 계속 뛰겠다고 결정하면 보호선수 20명 안에 묶을 것이다. 구단도 그렇게 말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차분히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찬호는 후배들에게 인기가 좋다. 덕망도 쌓았다. 그런 박찬호이기에 거취 결정 시 자신보단 후배와 팀을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박찬호의 결정을 한화 후배들은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고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