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블루 정책’ 이후 팀 경쟁력 지속적 하락…KBO 김태형 K리그 신태용은 성공
#레전드에서 ‘5연패 감독’으로
관심이 덜할 수 있는 2부리그에 위치해 있으나 수원은 2024시즌에도 역시 '이슈의 팀'이다. 4월 5경기에서 4승 1무로 신바람을 냈던 이들은 5월 5경기 전패로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염기훈 감독은 5연패를 기록한 경기 이후 자진 사퇴로 팀을 떠났다.
염 감독은 수원 구단 역사에서 손꼽히는 레전드다. 선수 시절이던 2010년 수원에 입단, 군 생활을 제외하면 팀을 떠나지 않고 약 15년간 활약했다. 구단 역사에서 최다출장, 최다득점, 최다도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구단의 영광도 함께했다. 구단의 3회 FA컵 우승에 힘을 보탰다. 염 감독은 팀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이었다. 지난 시즌 K리그1 최종전, 팀의 강등이 확정되자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는 야유가 쏟아졌다. 그럼에도 당시 플레잉코치로 활약하다 감독대행을 맡은 염 감독에게는 '수원의 사나이 염기훈'으로 시작하는 그만의 응원가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불안한 기운이 감지된 것은 2023년 연말부터다. 2부리그에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할 수원 구단이 염기훈 대행을 정식 감독으로 선임한 것이다. 논란이 따르는 선택이었다. 명문 수원으로선 단기간에 승격에 성공해 1부리그로 복귀하는 것이 지상 과제였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에서 '잠시 감독대행을 맡은 것이 경력의 전부인 염 감독이 어울리는 지도자인가'라는 우려가 뒤따랐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염 감독은 4월 호성적으로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시상하는 '이달의 감독상'을 받기도 했으나 이후 찾아온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이어지는 패배에 경기장을 찾은 일부 팬들은 염 감독의 사퇴를 종용했다. 팬들은 가장 사랑하는 인물과 얼굴을 붉혔다.
#연이은 레전드와 결별
수원 구단이 염기훈 감독과 같은 레전드와 헤어진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수원은 1, 2대 사령탑이었던 김호·차범근 감독 이후 구단 출신 인사들을 사령탑 자리에 앉혔다. 이 같은 움직임은 수원 구단의 상징색인 파랑에 빗대 '리얼 블루 정책'로 불렸다.
선수 시절 수원 유니폼을 입고 누구보다 사랑받은 이들이지만 감독 지휘봉을 잡고선 많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리얼 블루 정책의 시행 이후 수원은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지 못했다. 이들은 재임 기간 중 대부분 팬들의 원성을 들어야 했다.
실패가 반복됐으나 유사한 정책은 지속됐다. 3, 4대 사령탑인 윤성효·서정원 감독 재임 시절 우승 경쟁권에 합류하기도 했으나 팀의 경쟁력은 꾸준히 하락했다. 그래도 구단 출신 인사를 감독으로 선임하는 기조에는 변화가 없었다. 박건하·이병근 감독의 실패 사례가 있었으나 구단은 2부리그로 떨어진 시즌, 직전 시즌까지 선수로 활약하던 염기훈 감독을 선임하는 '파격'을 선택했다. 팬들 사이에선 성적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이 엄습했다. 구단 출신 지도자들이 어려움을 겪으며 경기장에서 질타를 받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수원 구단은 이번 사퇴로 또 한 명의 레전드를 잃었다. 염기훈 감독은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며 화려한 은퇴식과 함께 추억을 남길 만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경기 패배 이후 퇴근길에서 불만을 품은 팬들과 대치하는 등 최악의 상황에서 마지막을 맞이했다.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
선수시절 사랑받던 인물이 지도자가 돼 손가락질을 받는 일은 수원만의 사례가 아니다.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는 스포츠계 격언처럼 종목을 막론하고 선수시절과 지도자시절 평가가 엇갈린 인물은 많다.
모두의 존경을 받는 '국보급 투수' 선동열 감독도 지도자로서는 친정팀 KIA 타이거즈에서 평가가 엇갈린다. 선동열 감독은 삼성에서 감독 커리어를 시작, 한국시리즈 우승 2회를 달성했고 국가대표 지도자로서도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KIA 사령탑에 부임해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세 시즌을 넘게 팀을 이끌었으나 KIA는 이 기간 단 한 차례도 가을야구에 나서지 못했다. 선 감독과 KIA의 결말은 중도 퇴진이었다.
한화 이글스 한 팀에서만 활약하며 120승을 올린 투수였던 한용덕 감독도 구단 레전드 출신으로 감독까지 지낸 인물이다. 그는 부임 첫해 팀을 3위로 이끌며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2008년 이후 한화의 유일한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이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부진에 빠졌고 결국 계약기간 3년을 채우지 못하고 팀을 떠나야 했다.
한국 축구 아이콘이었던 최순호 감독도 친정팀 포항에서 지휘봉을 잡은 경험이 있다. 2000년대 초반과 2010년대 후반 두 차례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실업 무대에서 감독을 지냈던 시절과 달리 우승을 달성하지 못했다. 부임 첫해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는 등 실적을 남겼으나 2019년에는 팀이 강등 위기에 몰리자 경질되는 불명예를 겪었다.
농구계 ‘빅네임’ 이상민 감독도 지도자로선 어려움을 겪었다. 자신이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삼성에서 감독직에 올랐으나 재임기간 8시즌간 두 시즌을 제외하면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최하위 성적에 그친 것도 여러 차례다. 그사이 명문 구단 삼성은 ‘만년 약체’ 이미지를 얻었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 지도자들이 친정팀에서 실패만 경험한 것은 아니다. 김태형 감독은 두산에서 포수 마스크를 쓰고 한국시리즈 2회 우승을 경험한 원클럽맨이었다. 2015시즌부터 친정팀 사령탑에 앉은 그는 8시즌 중 7시즌간 한국시리즈에 진출, 3회 우승을 달성하며 선수시절보다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성공을 거뒀다. 또 당대 최고 유격수로 평가받던 류중일 감독도 친정팀 삼성에서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통합우승 4연패를 달성했다.
K리그에서는 한국 축구 공격수 계보를 이어갔던 황선홍·최용수 감독이 각각 자신이 선수로 몸담았던 팀에서 감독으로 리그 우승을 경험한 바 있다. 신태용 감독도 지도자 커리어를 친정팀 성남에서 시작해 부임 첫해 K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고배를 마셨으나 이후 FA컵 우승,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성공시대를 열었다.
감독대행으로 친정팀 지휘봉을 잡은 경험이 있는 이상윤 해설위원은 "구단 출신 감독을 선임하는 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구단으로선 그 인물의 지도력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며 "지도자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쌓아올린 업적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선택이 될 수 있다. 나도 감독대행을 하다 쫓겨났다(웃음). 내가 사랑했던 팀을 한동안은 쳐다보는 것조차 싫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다시 관계가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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