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고 살기 바쁜데… 택시기사들은 대선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가 지난번보다 전반적으로 낮다는 의견이다. 임준선 기자 |
택시기사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대선정국과 관련한 서울민심을 탐색할 때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야권의 후보단일화 승부와 대선의 최종승자 예측이었다. 특히 박빙의 승부를 예고하고 있는 후보단일화 전쟁은 역대 선거 가운데 가장 흥미진진한 이슈였기 때문에 기자도 그 결과가 상당히 궁금했다.
하지만 결과는 다소 의외였다. 접촉해본 대부분의 기사들은 승객들이 단일화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또 한편으로는 서울시민들이 단일화보다는 단일화 이후의 본선 결과를 더 주목하고 있고 궁금해 하더라는 것이다. 서울시민들이 단일화에 대한 이슈보다 단일화 이후 박근혜 후보와의 대결에 집중하는 것은 반 MB 정서와 맞물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광화문에서 만난 택시기사는 “넥타이 맨 화이트칼라들이 지금 정부를 되게 싫어하더라”며 “태웠던 직장인들 중 열에 여덟은 정치 뉴스 나오면 대통령 욕하기 바쁘다”고 말했다. 그는 뒤이어 “그 사람들은 대선 주자로 안철수 이야기를 많이 하던데 제일 큰 이유는 현 정부가 싫어서였다”고 덧붙였다.
이런 ‘반 MB정서’가 곧 ‘반 박근혜 정서’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택시기사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어차피 같은 당 출신이니 비슷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많았다는 게 기사들의 공통적인 전언이었다. 이는 박 후보 측이 그간의 행보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했지만 완전히 성공했다고 볼 수 없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승객들이 현 정권에 대한 반발심에서 야권 후보 지지를 드러낸 만큼 어떤 후보로 단일화가 되는지는 크게 개의치 않는 모양새였다. 그래서 단일화보다는 본선에 더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대선의 최종 승자에 대해서도 반MB→반박 정서가 상당 부분 작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더 강경하게 나갈 것”이라며 “지금은 아버지의 과오를 두고 잘못했다는 말도 하지만 막상 대통령 되면 아버지를 우상화할 것 같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런가 하면 “여자가 대통령 되면 전쟁이 날 것”이라는 다소 과격한 주장도 눈에 띄었다. 40대 후반층부터는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이 많았다고 하지만, 박 후보를 반대하는 야권 지지층은 반박 대선주자라면 누가 나오더라도 찍겠다는 입장을 대체로 보였다. 굳이 그들이 단일화에 신경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편 기사들은 택시에서는 문재인 후보보다 안철수 후보에 대한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입을 모았다. 지지든 우려든 문 후보보다 입에 오르내리는 빈도가 훨씬 높았다는 이야기다.
안철수 후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고 단일화에 있어 안 후보에게 반드시 득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야기는 많지만 기대 반, 걱정 반 ‘애증이 교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젊은 야권 지지자 가운데 안 후보의 지지층이 문 후보 쪽보다 더 젊다는 사실도 이유가 된다. 적극적인 참여 여부가 불투명한 연령층으로 구성돼서다. 대학로에서 젊은 층을 주로 태우는 한 택시기사는 “대학생 승객들이 이번 대선은 꼭 안 후보가 되면 좋겠다기에 투표할 거냐”고 물으니 “그건 아직 모르겠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했다. 안 후보가 좋긴 하지만 지지자들이 호감을 넘어 행동으로 옮길지가 단일화 과정의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전체 승객 대상으로는 야권 지지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50대 이상 승객들이 보이는 박근혜 후보에 대한 소위 ‘콘크리트 지지율’ 역시 견고했다.
“70대 이상은 100% 박근혜가 돼야 한다고 하네요. 박정희 대통령이 불쌍한 양공주들 허가해 줬다며(60년대의 기지촌 술집 면세 사업) 울먹이는 할머니도 있었어요.”
이처럼 박정희 시대를 겪은 연령층에서는 압도적으로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다. 이유로는 박 후보가 어릴 때부터 정치 경험이 있다는 점, 아버지를 닮아 청렴하고 일을 잘할 것이라는 점 등이 꼽혔다.
연령대가 낮으면 야당, 높으면 여당지지 비율이 높다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지만 요즘은 지난 대선보다 더욱 연령별로 지지가 갈렸다는 게 택시기사들이 받은 느낌이었다. 이번 대선이 가장 극명한 세대별 투표성향을 보여줄 것이라는 정치전문가들의 예상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택시기사들은 전반적으로 지난 대선보다 조용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지난 대선 때 손님과 다투다가 경찰서까지 갔다는 택시기사는 “이번 대선에는 일절 선거 관련 이야기를 안 하려고 마음먹었다”면서 “다행히 요새는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은데 후보 등록이 끝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역에서 길게 줄을 선 택시행렬의 한 기사는 “‘먹고 살기 바쁜데 무슨 투표냐’라고 말하는 승객들이 가장 많았다”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우중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