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암벽 여제’ ‘스파이더 걸’ ‘클라이밍계의 김연아’ 등 김자인(24·노스페이스)을 수식하는 타이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김자인은 이색 스포츠를 하는 여자 선수에 불과했다. 그러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스포츠클라이밍(인공암벽)이란 종목이 대중들에게 관심을 끌면서 김자인은 어느새 스포츠클라이밍에서 ‘여제’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성장했고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섰다. 지난 10월 11일 발표한 IFSC(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 여자 리드 부문 세계랭킹 1위에다 10월 21일 목포국제스포츠클라이밍센터에서 열린 월드컵 7차대회 리드 부문에서도 슬로베니아의 마르코비치와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암벽 여제’란 타이틀을 가장 좋아한다는 ‘암벽녀’ 김자인을 만났다.
키가 작을 거란(153㎝) 예상은 했지만 실제 만나보니 생각보다 더 왜소해 보였다. 언뜻 봐서도 이런 작은 체구로 암벽을 등반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기자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김자인은 “몸은 작아보여도 옷 속에 숨겨진 근육들이 많아요”라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엄마는 스포츠클라이밍 심판이시고, 아버지는 고양시산악연맹 부회장이시다. 두 분이 산악회에서 만나 결혼하셨고 오빠들이나 내 이름도 산과 관련된 이름으로 지어주셨다(김자인의 ‘자’는 ‘자일’을, ‘인’은 ‘인수봉’의 인을 뜻한다). 두 명의 오빠들도 모두 클라이머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산을 좋아하는 부모님 영향에다 오빠들도 선수로 활약 중이라 자연스레 클라이밍을 접했다.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하다가 선수로 나선 배경에는 오빠들 영향이 컸다. 오빠들이 국제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데 그런 오빠들이 정말 부러웠다. 한마디로 비행기 많이 타려고 클라이밍 선수로 나선 셈인데 지금은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게 너무 힘들다(웃음).
―키가 153㎝인데, 체격이 좋은 유럽 선수들을 상대로 시합을 벌이는 게 어렵지 않나.
▲만약 내가 키가 더 컸더라면 악착같이 훈련에 매달리지 못했을 것 같다. 신체적인 불리함을 극복하고자 다른 선수들에 비해 두세 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훈련했다. 지금 키에서 10㎝ 정도 더 크면 가장 이상적인 여성 클라이머의 신장이 되지만, 10㎝ 더 크지 않아서 지금의 김자인이 있다고 생각하면 신장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 없다.
―클라이밍을 해서 그런지 악력이 일반 남성보다도 더 세다고 들었다.
▲그런 소문 때문인지 사람들이 날 보면 악수부터 해보자고 한다. 지난해 교생실습(고려대 체육교육과 졸업, 동대학원 1학년 휴학 중)을 나갔는데 많은 학생들이 나와의 팔씨름 대결을 원했다. 그들을 다 상대하다가 부상을 당했다. 그래서 지금은 팔씨름은 절대 안 한다(웃음). 등반할 때 작은 홀더를 잡아야 하는 탓에 손가락 끝의 힘이 좋은 편이다. 그런데 클라이밍의 특성상 손가락 관절염이나 어깨 부상을 달고 사는 편이다. 지금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도 뼈가 튀어나왔다. 힘을 줄 때마다 통증이 심해 치료를 받아야 한다. 겉모양만 멀쩡할 뿐 손도 발도 모양새가 다 기형적이다.
―손은 그렇다치고, 발이 왜 기형적인 모양인가?
▲클라이밍할 때는 자신의 발사이즈보다 20㎜ 정도 작은 신발을 신는다. 원래 내 발사이즈가 230㎜ 정도인데 암벽화는 205㎜를 신는다. 그렇다보니 발가락이 모두 굽어 있다. 뼈들도 툭툭 튀어나와 있고. 여자는 손, 발이 예뻐야 한다고 하는데 난 둘 다 완전 빵점이다.
―김자인의 클라이밍 인생에 희로애락이 있었다면 언제, 무슨 일 때문이었나.
▲가장 기뻤을 때가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준우승을 했을 때다. 그 성적이 그때까지 최고의 성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대회 결승전에 올라가 처음으로 완등을 기록했다. 가장 힘들었던 일은 아무래도 부상을 당했을 때였다. 2008년 어깨 부상으로 3개월가량 훈련을 못했다. 손가락이 골절되면 다른 한 손으로 훈련을 할 수 있지만 어깨를 다치면 훈련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쉬고 있는 게 고역처럼 느껴졌다. 재활 훈련도 만만치 않았다. 그때 절감했다. 부상을 당하지 않고 클라이밍을 하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좋다. 잦은 국제대회 출전으로 몸은 힘들어도 큰 부상 없이 암벽을 오르내리는 일이 짜릿한 만족감을 선사한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