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에 취임한 김시진 감독이 선수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
11월 5일 롯데는 제15대 사령탑으로 김시진 전 넥센 감독을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3년 계약에 계약금 3억 원, 연봉 3억 원 등 총 12억 원에 달하는 매머드 계약이었다. 롯데는 보도자료를 통해 ‘프로야구 감독으로서의 오랜 경험과 선수육성능력 등을 높이 평가했다’는 말로 김 감독 선임 배경을 밝혔다.
김 감독은 2007년 현대의 마지막 감독을 맡은 뒤 2009년 히어로즈 2대 감독으로 취임해 올 시즌 9월까지 넥센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현대 투수코치 시절부터 정민태, 김수경, 임선동, 조용준, 손승락 등 뛰어난 투수들을 조련해 지도력도 인정받아왔다. 오랜 감독 경험과 선수육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야구인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김시진이 롯데가 바라던 감독상이냐에 관해선 논란이 많다. 그도 그럴 게 롯데는 우승에 목마른 팀이다. 1992년 이후 20년 동안 한 번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올 시즌 내내 전임 양승호 감독에게 ‘한국시리즈 진출이 아니면 사퇴’를 요구했던 것도 기나긴 우승 갈증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김 감독은 롯데엔 어울리지 않는 사령탑이라는 게 야구계의 중평이다. 감독으로서 포스트 시즌 진출 경험이 전무한 데다 올 시즌 넥센에서 경질된 것도 포스트 시즌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모 야구인은 “5년 연속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롯데가 감독 경력 5년 동안 한 번도 가을야구를 경험하지 못한 김 감독을 영입한 건 그래서 더 의문”이라며 “전임 감독에겐 우승을 강요하던 롯데가 신임 감독에겐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롯데는 김 감독 취임 이후 우승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 그저 ‘잘해야 한다’,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덕담만 늘어놓고 있다.
수석코치를 포함한 코칭스태프 구성에서도 롯데는 전임 양 감독 때완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지난해 양 감독이 롯데 사령탑에 취임했을 때 롯데는 코칭스태프 구성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 구단이 사실상 수석코치와 투수코치를 지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양 감독이 “가슴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내 사람이 코칭스태프에 없다”고 털어놓을 정도였다. 올 시즌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수석코치가 내정됐지만, 양 감독의 의사와는 무관했다. 여기다 그 수석은 양 감독의 선배라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결국 양 감독은 박정태 2군 감독을 1군 타격코치로 부르며 부족한 2%를 채우려 했다. 당시 주변에선 박 코치를 말렸다. “이대호가 일본으로 떠나고, 주축 타자들의 노쇠화로 팀 타율이 떨어질 게 자명해 자칫 그간 쌓아온 명성에 흠집이 생길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팀 내 정치를 철저히 외면하던 박 코치는 양 감독이 내민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올 시즌 최상의 조합을 이뤄 팀을 5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로 이끌었다. 하지만, 양 감독이 경질되자 박 코치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퇴 수순을 밟고 말았다.
신임 김 감독은 이와 반대다. 김 감독은 코칭스태프를 철저히 자기 사람으로 채웠다. 권영호 수석코치, 박흥식 타격코치, 정민태 투수코치가 주인공들이었다. 야구계에선 권 수석 발탁을 두고 말이 많았다. ‘오랫동안 영남대 감독을 맡으며 프로와 떨어져 있던 그가 감독과 절친하다는 이유만으로 난데없이 프로 수석을 맡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여기다 권 수석은 영남대 시절 별 성과를 내지 못했던 지도자였다. 무엇보다 롯데와는 인연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박 코치 발탁은 더 말이 많았다. 박 코치는 10월 중순 넥센 염경엽 감독 취임식 때 1군 타격코치로 연단에 섰던 이다. 당시 박 코치는 “염 감독을 도와 넥센을 강팀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일본 가고시마 넥센 마무리 캠프에서 선수들을 지도할 때만 해도 그가 팀을 바꿀 것으로 상상한 이는 없었다. 하지만, 상상도 못한 일이 현실화됐다. 박 코치가 김 감독의 부름을 받고 롯데로 떠난 것이다.
야구계는 “세상에 한 달 사이에 감독 취임식에 다른 유니폼을 입고 2번 참가하는 코치가 어디 있느냐”고 박 코치를 비난하며 “아무리 박 코치가 탐나도 다른 팀 마무리 캠프에서 뛰는 현직 코치를 영입하는 건 비상식적인 행태”라며 롯데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롯데는 “수석, 타격코치는 감독이 결정한 사안이다. 감독이 원하는 사람을 구단에서 뿌리칠 이유는 없지 않느냐”며 코칭스태프 구성에 개입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11월 15일 신생구단 NC는 기존 8개 구단의 보호선수 20인 외 1명을 지명해 발표했다. 이 가운데 NC는 롯데 선수로는 좌완 불펜 이승호를 지명했다. 롯데가 보호선수 명단 20명에서 이승호를 제외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1시즌이 끝나고 4년간 계약금 6억 원, 연봉 3억 5000만 원, 옵션 4억 원 등 총액 24억 원에 롯데에 입단한 이승호의 명단 제외는 충격이었다.
롯데는 “팀에 투수들과 유망주가 많아 부득이 이승호를 보호명단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롯데 내부 핵심 관계자는 “이승호의 몸 상태가 썩 좋지 못하고, 그의 대안으로 좌완 이명우와 강영식이 있어 차라리 진명호, 이재곤, 김수완 등 선발 유망주를 지키는 게 낫다는 것이 김 감독의 생각이었다”며 “구단에서도 이와 관련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야구계는 김 감독의 선택을 다소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모 구단의 투수코치는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올 시즌 롯데는 불펜야구로 재미를 봤다. 이승호 같은 좌완 특급 불펜은 많지 않다. 몸이 좋지 않다지만, NC가 지명한 걸 보면 그렇게 나쁜 것 같지도 않다. 차라리 고만고만한 선발 유망주가 많다면 그 가운데 한 명을 내주고 베테랑 이승호를 잡는 게 유리하지 않았을까 싶다.”
일부 야구인사는 “이승호를 일찌감치 FA 실패작으로 규정한 프런트가 실패 책임에서 벗어나려 그를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한 것 같다”며 “롯데 프랜차이즈 출신을 우대하는 구단 고위층의 입김도 어느 정도 반영됐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야구계에선 구단 고위층과 김 감독의 소통이 역대 어느 감독보다 잘 된다는 평이 줄을 잇고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