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장’ 없었다면 강해질 수 없었을 것…‘넘버원’ 신진서와 격차 좁히는 게 목표”
#순수 일본인으로는 27년 만의 세계대회 우승
이치리키 9단의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은 2005년 제9회 LG배에서 우승한 대만계 장쉬 9단 이후 19년 5개월 만이다. 순수 일본인으로 범위를 좁히면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이 1997년 후지쯔배에서 우승한 이래 무려 27년 만이다. 일본 바둑계가 들썩들썩한 것은 당연했다. 다음날 이치리키 9단이 귀국하자 NHK와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등이 일본기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을 찾아 집중 보도했다.
기자회견 첫 머리에 이치리키 9단은 응씨배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정상에 오른 소감을 밝혔다. 그는 “우승을 차지해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이상한 기분이 든다.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어제 대국 후 열린 시상식에서 무거운 트로피를 안았을 때나 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고서야 조금씩 우승의 실감이 났다”고 말했다.
이치리키 9단은 준결승에서 중국의 커제에게 2-1로 역전승한 이후 큰 자신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그는 “오랫동안 일본은 우승에서 멀어져 왔고 이번 응씨배에서 주위의 기대가 큰 것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면서 “중압감과 부담을 너무 강하게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중국의 강자와 싸우는 것을 순수하게 즐기려고 했던 것이 결승전에서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우승 순간에 대한 감상을 묻는 질문에 이치리키 9단은 “처음에는 흐름이 좋았지만 중반 들어서는 많이 힘들었고, 마지막에 겨우 역전해서 좋아졌지만 전체적으로는 끝까지 맥을 못 춘 느낌이었다”며 “승리를 의식했을 때는 손이 떨렸던 장면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상대가 돌을 던졌을 때 ‘마침내 길었던 5번승부가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응씨배 대비 명인전 리그서 시간 배분 연습"
자타공인 세계랭킹 1위 신진서 9단을 의식한 내용도 있었다. 세계 정상에 오른 소감을 묻는 질문에 대해 이치리키 9단은 “아직도 한국과 중국에는 강한 기사들이 즐비하고, 특히 넘버원이라 불리는 신진서 9단에게는 아직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그는 이어 “응씨배 우승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도 부단히 노력해서 조금이라도 신진서 9단과의 차이를 좁혀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3시간 30분의 응씨배 제한시간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 같다는 속내를 밝히기도 했다. 이치리키 9단은 “지금까지 셰커에게는 세계대회에서 만나 한 번도 이기지 못했지만(두 기사 간의 상대전적은 응씨배 전까지 셰커가 4승으로 앞서 있었다) 응씨배는 익숙한 시간 설정이었기 때문에 우승할 자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3시간 30분의 제한시간은 일본 명인전 리그(제한시간 5시간)와 비슷하다. 그래서 7월에 있었던 명인전 리그는 응씨배를 대비해 최대한 시간 배분을 하며 임했다”고 밝혔다.
이치리키 료가 집안이 경영하는 센다이 가호쿠신보(河北新報)의 상무이사로 재직하며 바둑을 함께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일본에서도 잘 알려진 일. 때문에 프로야구의 오타니 쇼헤이처럼 이도류(二刀流, 두 가지를 겸직한다는 의미)로 가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있었다.
이에 대해 이치리키는 “물론 둘 다 해내는 것은 어려운 부분도 있고 주위에 걱정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전례가 없던 일에 도전하는 것에 보람도 느끼고 있다”면서 “10년 전에도 ‘대학을 가면서 타이틀을 딴 기사는 없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병행해도 큰 문제가 없었던 만큼 전례 없던 일들을 좋은 의미에서 뒤집어 가고 싶다”고 양쪽 다 포기할 수 없음을 내비쳤다.
한국식 공부, 그리고 스승 홍맑은샘 4단과 홍도장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이치리키 9단은 “홍도장이 한국 도장 방식을 일본에 퍼뜨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도장에서 공부한 4년간의 시간이 지금 제 자신의 기초가 되었기에 홍도장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강해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일본 현지에서도 이치리키 9단이 대다수 일본 기사처럼 모양을 중시하기보다는 수읽기로 무장한 강력한 전투력을 앞세운 기풍으로 세계 무대에서 통했다는 목소리가 높아 향후 바둑에 관한 한 ‘한국식’ 교육법이 각광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홍맑은샘 4단은 이치리키 료가 일본으로 돌아오던 날 직접 공항으로 나가 제자의 금의환향을 축하했다. 홍맑은샘은 일요신문 전화 인터뷰에서 “20년 전 같은 꿈을 안고 일본으로 건너왔는데 그것이 이루어져 기쁘고, 제 공부 방법과 삶의 방법이 료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료도 (자신의 우승으로) 세계 1위의 꿈이 달성되고 홍도장의 꿈도 달성되어 너무 기쁘다고 말해줬다”며 감격해 했다.
유경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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