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4회 농심배 2차전에서 중국의 왕시(왼쪽)와 우리나라의 김지석이 대국하고 있다. |
탄샤오는 현재 중국 3관왕이며 최근에는 자국내 서열 5위로 되어 있지만, 체감으로는 랭킹 1위인 청년. 농심배에서는 작년 13회 때도 4연승을 기록하며 중국의 우승을 견인했다. 이다 아쓰시는 1990년대 출생 일본 기사 중에서는 기재가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는 기대주. 세계대회에서 빈한한 성적에 시달리는 일본이 비장의 카드로 출전시킨 청년인데,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이호범은 기세를 타고 11월 26일 시작된 2차전 첫 판에서 연승의 의지를 불태웠으나 예상 밖으로 일본의 2012년 신인왕 후지타 아키히코 3단(21)의 태클에 걸려 국제무대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한 한 달 전의 추억에 만족하며 내려갔다.
후지타의 1승은 본인은 물론 일본 바둑계로서도 단비와 같은 1승이어서 이번에는 후지타의 연승 여부에 촉각이 쏠렸다. 관례를 깨고 과감히 젊은 피로 선수단을 구성한 일본의 전략이 성공할지 모르겠다, 일본이 마침내 살아나는 것 아니냐 하면서 일본 못지않게 한국과 중국이 오히려 더 반가워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후지타가 중국의 중견 왕시 9단(28)에게 간단히 쓰러지면서 일본의 실험은 일단 단발로 끝났고, 대신 중국 왕시가 탄샤오에 이어 3연승으로 날았다. 한국 김지석 8단(23), 지난번에 재일교포 송광복 9단(48)의 제자라고 소개했던 일본의 안자이 노부아키 6단(27)을 제쳤다.
엊그제 2012 한국리그 결산에서 MVP를 수상한 김지석이니 왕시에게는 어떻게든 이길 줄 알았는데, 이기기는커녕 김지석답지 않게, 좀 무기력했고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결혼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서 마음이 떠있는 탓인지…. 안자이는 송광복의 제자라는 점에서 관심이 가는 기사. 먼저 송광복에게 마음이 끌리는 까닭이다.
중국이 4명을 남겨둔 가운데 한국은 최철한 9단과 박정환 9단 두 사람, 일본은 무라카와 다이스케 7단(22)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지난 11월 30일 최철한이 왕시의 4연승을 저지한 데 이어 12월 1일 일본의 마지막 주자 무라카와 다이스케 7단까지 꺾는 바람에 1일 현재 중국 세 명, 한국 두 명의 선수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3차전은 2월중 개최된다. 무라카와는 근래 1~2년 사이 세계대회에서 일본 선수로는 거의 유일하게 본선에 올라가곤 하는 기사였다. 최철한은 최근 이세돌에게 1승5패를 당한 전력이 있어 그것 때문에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연승으로 그런 걱정을 씻어주었다. 삼성화재배 준결승 3번기에서는 2패로 주저앉았고, 올레배 결승5번기에서 1승3패로 타이틀을 놓쳤다. 소개하는 기보는 2012 올레배 결승5번기 제4국. 이세돌이 흑이다.
<장면> 백1로 잇고 흑2쪽을 막았다. 그러자 백3, 5로 흑을 추궁하고 나섰다. 물살이 갑자기 격해졌다. 승부처다. 백은 흑2로 보고 참을 수가 없었던 것. <1도> 흑1로 연결하는 것이 보통이고, 그러면 백2로 넘어가 백이 괜찮아 보이는 국면이다. 백2에 흑A는 백B로 안 된다.
<2도>가 실전진행. 흑1로 막아설 수밖에 없는데, 백2, 4, 6이 일견 멋지다. 흑은 이제 A로 따내 좌우를 연결하는 것이 급해 보인다. 그렇다면 아래쪽 중앙 흑돌은 잡혀 버린 것 아닌가. 백이 승기를 잡은 것 같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이세돌이 최철한의 의표를 찔렀다.
<3도> 흑A가 아닌 흑1이 검토실이 예상하지 못한, 이세돌이 왜 이세돌인가를 보여준 회심의 일타. 백2는 흑B를 예방한 것. 여기를 끊기면 백이 거꾸로 걸린다. 그건 그런데 흑3! 이 한 수로 상변 백 대마는 갇혔고, 그걸로 그대로 함몰이었다.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참사다.
<장면> 백5로 젖힌 것이 결과적으로 무리였다는 얘기다. <4도>처럼 백1 정도를 하나 활용하고 3으로 정비하는 것이 무난했고 이랬으면 아직 긴 승부였다는 것.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