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SK그룹이 지주회사제를 선택한 배경으로 다수의 재계 인사들은 ‘지주회사제의 최대 수혜자가 최태원 회장’이 될 것이란 점을 꼽는다. 분가설이 나돌던 최 회장의 사촌 최신원-최창원 형제 또한 이번 지주회사제 전환의 수혜를 받을 것으로 평가받는다. 지배구조의 투명성 확보라는 취지로 이뤄지는 지주회사제 전환이 과연 최태원-최신원-최창원 총수일가에게 얼마나 큰 이익을 안겨주게 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태원 회장의 SK그룹은 지난해 LG그룹을 제치고 재계 서열 3위에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지만 총수일가의 지배력이 약하다는 고민거리를 늘 갖고 있었다. 최태원 회장의 SK(주) 지분은 0.97%에 불과하다. 이는 소버린자산운용 같은 외국계 투기자본의 침공을 부르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지주회사제 전환을 통해 최 회장은 그룹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SK(주) 지분율 0.97%에 불과한 최 회장이 지주회사인 SK홀딩스를 지배할 수 있는 방편으로 현재 SK(주) 최대주주인 SK C&C(16.11%)가 활용될 전망이다. 최 회장은 SK C&C 지분 44.5%를 확보해 최대주주로 군림하고 있다. 즉, 최태원 회장→SK C&C→SK홀딩스→나머지 계열사들 식의 지배구조가 확립돼 최 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물론 최 회장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주회사 지분을 갖고 그룹 전체를 지배하게 되는 지주회사제에 대한 비판론이 제기될 수 있다. 따라서 최 회장은 최근 SK케미칼 지분 매각 등을 통해 현금 보유고를 늘려나가고 있다. SK홀딩스가 지주회사 요건을 갖춰나가는 동안 최 회장 역시 SK홀딩스 지분을 늘리려 할 것으로 보이지만 SK C&C에 대한 의존도를 얼마나 낮출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한편 최 회장이 자신의 워커힐 지분 전량(40.69%, 325만 주)을 SK네트웍스 측에 기부한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SK 측이 밝히는 워커힐 지분 40.69%의 지분 가치는 1200억 원이다. 이로써 최 회장 측은 지난 2003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태 당시 약속한 ‘SK글로벌 정상화 자금 1000억 원 사재 출연’ 약속을 지키게 됐다. 최 회장은 2003년 사건 당시 구속수감되는 굴곡을 겪었으며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고 현재 대법원에 최 회장 재판이 계류 중이다. SK의 지주회사제 전환 발표 이후 시민단체들이 이에 대한 환영의사를 나타낸 점과 지지부진하던 최 회장 측의 사재 출연 약속이 이행된 점은 대법원 재판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발표한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사실상 SK홀딩스-SK네트웍스-워커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완성돼 워커힐 지분 증여는 사실상 ‘위치 변경’에 불과했다. 물론 최 회장이 이를 ‘매각’이라는 방식을 통해 개인 자금을 확보 못한 것이 SK 측의 발표를 미루게 했던 것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 SK는 작년 LG 그룹을 제치고 재계 서열 3위에 올랐다. SK 최태원·LG 구본무·삼성 이건희 회장의 모습(왼쪽부터). | ||
동생 회사의 계열분리를 먼저 바라보게 됐지만 최신원 회장의 표정은 어둡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의 지주회사화 발표 당일 최신원 회장은 뉴욕에 머물고 있었다. 이미 오너 간에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대한 충분한 합의가 이뤄진 것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이번 지주회사제 개편을 통해 최대 수혜를 받은 회사 중 하나로 SKC가 꼽히고 있다. SKC의 현금 보유고 무게가 급격히 늘어나게 된 것이다.
SKC는 상장사인 SK증권(12.26%)과 비상장사인 텔레시스(77.13%) SKC미디어(100%) SK모바일에너지(11.66%) 인포섹(20.63%) 워커힐(7.50%) SK해운(10.16%)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관심을 끄는 것은 SK증권과 SK해운 지분이다. 지주회사와 그 자회사는 금융계열사를 자회사 혹은 손자회사로 가질 수 없기 때문에 SKC는 SK증권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보유 주식 수(3973만 3451주)와 4월 12일 SK증권 종가 1380원 기준으로 환산하면 548억 원 가량이다. SK증권은 SK 지주회사제 전환의 기대감과 M&A 가능성 등의 요인으로 주가 상승이 기대돼 SKC의 SK증권 지분 매각 이익은 548억 원을 상회할 전망이다.
한편 SK해운이 SK홀딩스의 직접 지배를 받는 자회사가 될 것이기 때문에 SKC는 SK해운 지분(10.16%)도 매각해야 한다. 매입 주체는 지주회사인 SK홀딩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 SKC가 지난해 말 공시를 통해 공개한 SK해운 지분 장부가액은 568억 원이다. SKC는 SK증권과 SK해운 지분 매각을 통해 1116억 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SKC는 SK 측의 지주회사제 전환 발표 이전에 SK케미칼 지분 전량(70만 주)을 팔아 260억 원을 확보했으며 지난해 SKC 자사주 매각을 통해 43억 원의 현금을 챙겼다.
최창원 부회장의 SK케미칼은 이번 지주회사제 개편안에 포함되지 않아 사실상 계열분리를 공식화시킨 셈이다. 최태원 SK 회장은 6.84%에 이르던 SK케미칼 지분율을 지난 1년 사이 5.84%까지 줄여 계열분리 준비를 해온 것으로 보인다. 지주회사제 전환 발표 전인 지난 4월 5일 SKC는 SK케미칼 지분 전량을 매각했고 이는 SK케미칼의 계열분리와 소그룹화 기대감을 높여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SKC 주가는 4월 4일 4만 4400원에서 다음날인 5일 SK케미칼 지분 매각 발표와 함께 4만 8000원으로 뛰더니 4월 12일 4만 9400원으로 치솟았다. 결국 최신원 SKC 회장의 SK케미칼 지분 매각이 동생인 최창원 부회장의 SK케미칼의 지분 가치를 높여준 셈이다. 이번 SK 지주회사 전환 발표와 그동안의 지분 변동을 통해 SK케미칼은 SK건설 등의 자회사를 거느린 소그룹화의 기틀을 닦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SK그룹은 SK홀딩스라는 새 지주회사에 최신원-최태원-최재원 등 최창원 부회장을 제외한 SK 오너 3인방이 동승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재계에서는 그간 최신원-최창원 형제가 최태원 회장 친동생인 최재원 SK E&S 부회장에 비해 분가가 빠를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중 최창원 부회장 몫만 분리가 가시화됐을 뿐이다. 이제 재계의 관심은 SK홀딩스의 주주 명부에서 최신원-최태원-최재원 등 3명의 사촌 오너 지분이 어떤 식으로 분배될지, 개인 지분이 특히 취약한 최신원 회장 몫은 얼마나 될지에 쏠리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