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와 현대건설이 추진한 ‘힐스테이트’ 브랜드 선포식 때의 모습. | ||
KT와 현대건설이 추진한 ‘서울 숲 힐스테이트’ 아파트 사업과 관련해 한나라당 김태환 의원이 지난 9일 특혜 의혹을 제기한 이후 사업 추진 내막을 둘러싼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숲 힐스테이트는 KT와 현대건설이 성동구 서울숲 인근에 조성하는 445가구 규모의 아파트로, 지난해 11월 분양에서 75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던 아파트.
이 아파트에 관해 김태환 의원이 제기한 의혹은 이렇다. 아파트 부지로 예정된 땅 안에 토지를 갖고 있던 경찰청과 개발사업 허가권을 가진 성동구청 일부 직원이 반대 의사를 밝혔음에도 2005년 9월 갑자기 성동구청이 사업계획을 승인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이 과정에서 인허가와 관련한 특혜 의혹이 있다고 주장한다. 김 의원에 따르면 당시 KT 측은 아파트 출입로로 예정된 경찰청 소유의 경찰기마대 부지를 확보해야 했으나 경찰청의 반대로 도로를 사들이지 못해 사업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일이 꼬이자 KT 등은 2005년 7월 감사원에 경찰기마대 부지에 대한 민원을 제기했고 감사원에서는 “부지 확보 후 사업승인을 내주라”는 의견을 냈지만 성동구청이 이를 지키지 않고 그냥 사업계획을 승인했다는 것이다. 당사자인 성동구와 현대건설, 경찰청 등은 김 의원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일제히 “외압은 없었다”며 펄쩍 뛰는 모습이다. KT 역시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손사래를 치며 물러나 앉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세간의 관심은 의혹의 중심인물로 떠오른 모 건설업체 회장 K 씨에게 쏠리고 있다. K 씨는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일련의 인허가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인물.
전남 출신인 K 씨는 1997년 KT의 부동산 관리를 하던 사업부분이 떨어져 나가 설립된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었다. 이 회사는 KT의 전화국이나 고객센터의 리모델링 공사 등을 담당하는 등 건설업이 주업. 그는 이 회사의 최대 주주이며 KT는 19%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
원래 K 씨는 KT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 인물이었다. 고졸 학력인 그는 당초 주로 상하수도 사업 등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소규모 관급공사를 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이 회사 대표를 맡고 있던 지난 97년에는 서울시 산하 수도사업소 등이 발주한 각종 관급공사를 담합입찰을 통해 낙찰받고 이를 묵인해 달라며 관리 감독 공무원들에게 돈을 건넨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적이 있다.
이 일로 인해 어려움을 겪던 그는 이듬해 한국통신(현 KT)이 본격적인 민영화에 나서자 기회를 잡게 된다. 당시 KT는 주력사업과 무관한 각종 사업부들을 별도 법인을 설립해 분사시키는 방법으로 정리해 나갔다. 이때 설립된 회사 중 하나가 바로 이번 힐스테이트 의혹 사건에 연루된 K 사다. K 사는 원래 KT의 부동산 관리를 담당하던 사업부분이 떨어져 나가서 설립된 회사로, 주로 KT전화국이나 고객센터의 리모델링 공사 등을 담당하고 있는 건설업체다. 이 회사는 KT에서 분사한 뒤 건물 청소 및 관리 부문을 다시 분리 독립시켰다.
K 씨는 이 과정에서 복잡한 수순을 거쳐 두회사를 모두 인수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그는 먼저 본업인 건설업과 관련있는 K 사를 인수했다. 그리고 S 사를 설립해 대표를 맡았다. K 사에서 분리된 청소용역회사는 지분 72%를 인수한 제3의 회사로 넘어갔는데 지난 2001년 이 회사가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렇게 되자 K 씨는 미리 설립해둔 S 사를 동원, 이 회사도 인수하게 된다.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돌아오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KT가 분사시킨 K 사를 통째로 손에 넣고 덤으로 청소용역회사와 자신이 설립한 S 사도 거느리게 된 셈이다. 그는 지난해 KT의 다른 자회사 사장을 지낸 H 씨를 자신 소유 회사의 사장으로 영입하는 등 KT와 한번 맺게된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여의도 KT전화국 사옥 안에 K 씨의 회장 사무실이 있을 정도다. 또 KT는 현재도 K 사 지분 19% 정도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K 씨 주변 인물들에 따르면 그는 평소 “각종 사업이 많아서 현대건설은 나한테 꼼짝 못한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K 씨의 이런 ‘자신감’ 넘치는 언행의 배경은 지난 2005년 11월에 있었던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중동 순방길에 그가 경제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다는데서 일부나마 단초가 드러나고 있다. 당시 그는 쟁쟁한 대기업 CEO들이 주류였던 경제대표단 명단에 이지송 전 현대건설 사장과 함께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2005년 11월 27일자 국정브리핑은 K씨가 대표단에 포함된 이유와 관련해 “ITC(정보·커뮤니케이션기술)는 총리가 중동 국가의 자금력과 우리의 기술력이 결합해 ‘원윈’할 수 있는 분야”라는 설명을 내놓았었다.
그는 이번에 문제가 된 힐스테이트 외에도 또 다른 대형 건설사가 짓게 될 인천의 한 아파트 사업에도 관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음 달 분양될 예정인 1000세대 규모의 이 아파트는 역시 KT가 시행사이며 시공은 대기업인 D 사가 맡았다. 그런데 이 지역은 당초 녹지로 보존해달라는 주민들의 민원과 난개발 우려 등으로 인천시가 사업허가를 내주지 않아 나대지로 방치돼 왔던 곳이다. 그러나 지난 2005년 3월 KT가 이 땅에 아파트를 짓게 해달라고 신청하자 갑자기 인천시의 방침이 변경돼 결국 사업이 진행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이 사업허가 과정에도 역시 K 씨가 개입했었을 것이라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인천시에 개발계획 승인을 요청하는 서류를 접수시킨 인물이 KT 직원이 아니라 K 씨 소유인 K 사 직원이었다. 인천시 관계자조차 “KT에서는 사람이 거의 안오고 K 사 쪽 인사가 왔었다. 일반적인 구조는 아니다”라고 털어놓을 정도다.
K 사는 지난해 9월 아파트 개발 사업 최종 승인이 난 직후 KT와 정식으로 시행대행 계획을 맺었다. 사업 시행대행 수수료는 무려 1223억 원. 건설업계 관계자는 “1000세대 아파트 단지 사업 시행 대행 수수료가 1200억 원이 넘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큰 규모”라고 놀라움을 표했다.
민원과 지분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재개발 지구도 아닌 나대지로 방치됐던 땅에 아파트를 짓는 이 공사에 K 사가 어떤 큰 역할을 했기에 1223억 원을 수수료로 받아가는지 그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