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바둑 부사장 출신인 김종석 대표. |
▲ K-바둑 부사장 출신인 김종석 대표가 차린 바둑식당 ‘오^사이공’ 내부. 식탁과 의자는 대국을 하기 좋게 특별 제작되었다. |
김종석 대표(51)가 기다리고 있었다. 실내는 정갈하고 예쁘다. 음식은 듣던 대로 탁월한 맛이다. 입에 익은 월남쌈이나 쌀국수 같은 것은 물론이고, 이름을 모르는 별미가 부지기수다. 그건 그런데 왜 바둑식당, 기원식당인 것인지?
“주중엔 보통 식당처럼 영업합니다. 그러나 토요일 일요일에는 바둑 동호인들에게 장소를 제공합니다. 바둑판 15조, 30명 정도는 동시대국이 가능합니다. 문을 연 지 이제 한 달쯤밖에 안됐고, 바둑 둘 수 있다고 광고도 아직 제대로 못했는데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벌써 예약 받은 모임이 둘 있습니다…^^. 15일하고 22일. 앞으로는 작은 대회 같은 것도 유치하려고 합니다. 아예 직접 매주 주말대회 같은 걸 개최할까도 생각하고 있고… 그러려면 계시기나 그밖에 바둑대회 진행에 필요한 용품을 더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카페 애틱의 유승엽 사장(45)이 얼마 전까지 실제로 바둑계에서 일했던 바둑인인 것처럼 사이공의 김 사장도 불과 몇 달 전까지는 바둑계 현역이었다. K-바둑(예전에 스카이위성바둑)의 부사장이었다. 전공은 카메라. 부사장이지만, 카메라를 들고 전국 바둑대회장을 누비던 그였는데, 갑자기 안 보여 어쩐 일인가 싶었는데, 이런 걸 준비하고 있었다. 바둑식당은 기발하고, 그 식당의 주인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 직원과 대국하고 있는 김종석 대표. |
“제가 이번에 식당 개업하면서 꼽아보니 스물세 번째 직업이더군요. 회사도 몇 군데 다녀봤고, 당구장도 운영해봤고, 운전하면서 배달도 해봤고… 때밀이도, 요즘은 때밀이라고 하지 않고, 목욕보조원? 세신미화원? 그러나요?…아무튼 그런 것도 해봤고, 야바위꾼들과 어울려 바람잡이도 해봤고… 하하하. 그때 바람잡이 일당이 괜찮았거든요. 80년대 후반이었는데, 5만 원인가였으니 꽤 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카메라는 1990년 초에 배워 시작했으니까 20년이 넘었고 역시 그게 주종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군요. K-바둑에서만도 10년이 넘었네요.”
▲ 주방 입구에는 김 대표가 직접 짠 십자수가 걸려 있다. |
“제가 의외로 꼼꼼한 성격입니다…^^. 원래 취미가 프라모델이었어요. 정식 명칭은 플라스틱 모델이라고 하지요? 플라스틱을 조각으로 비행기 배 같은 걸 조립하는 겁니다. 주로 돛단배, 대형 범선을 만들었는데, 한 10개 되니까 집에 둘 데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일단 포기했는데, 어느 날 동네에 무슨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어 내가 만든 범선이 걸려 있는 거예요…. 입체와 평면의 차이는 있지만, 저거다 싶더군요. 그것도 벌써 10여 년 전입니다.”
그게 십자수였고, 그 길로 십자수에 입문했다. 사이공 주방 입구에 장식으로 걸려있는 십자수들은 그의 작품이다. 그의 꼼꼼함이 발휘된 곳은 또 따로 있었다. 식당 사이공의 탁자와 의자는 바둑 두기에 좋게 되어 있다는 것. 실내 레이아웃을 구상할 때부터 식사와 대국이 모두 불편하지 않게 탁자의 높이와 넓이를 따로 연구해 만들었다는 것.
“바둑방송에서 일했는데, 그 정도는 알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장소 빌리는 비용이요? 없습니다. 무료입니다. 제가 바둑을 좋아해서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고, 또 어차피 바둑들 두다 보면 식사는 여기서 할 거 아닙니까? 그걸 계산에 넣은 건 아닙니다만, 아무튼 식사를 하신다면 그것도 할인입니다. 바둑모임이 예약된 토-일요일에는 입구에 오늘은 모임이 있는 날이어서 일반 손님은 받지 않는다고 써 붙일 겁니다. 모임하는데 다른 손님 있으면 서로 불편하잖아요.”
메뉴를 보니 음식 값도 그런 정도면 무리가 없는 느낌이다. 바둑 동호인들은 비단 모임이 아니더라도 카페나 식당에 갈 거라면, 기왕이면 애틱이나 사이공 같은 곳을 이용하시는 게 어떨지. 이런 데가 잘 되고 살아나야 바둑인들도 즐거울 것 아닌가.
혹시 6번 출구에서 BC카드 쪽으로 가는 길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6번 출구로 나와 바로 되돌아 롯데리아를 끼고 교대 쪽으로 좌회전해 150미터쯤 직진하다가, 국민은행 앞에서 좌회전해 100미터쯤 들어가면 식당이 보인다. 2층이다. 바로 옆에 주차 빌딩이 있는 것도 편리하다.
“왜 K-바둑 그만두고 식당 차렸느냐구요? 아닙니다. 바둑 일도 아직 완전히 떠난 건 아닙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카메라 들고 바둑대회나 행사장에 뛰어갈 겁니다. 바둑실력이요? 한 7~8급? 못 두는 거나 마찬가지지요? 그래도 제 나름으로 재미있고, 바둑계에서 좋은 분들 많이 만났고, 제 실력 정도가 좋습니다. 잘 두어야만 좋은 게 아니거든요…^^”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