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에 3개월 동안만 함께하는 손혁·한희원 부부는 주말부부를 더없이 부러워한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극과 극일 때가 있다. 남성과 여성이 그렇다. 흔히 남성을 ‘화성인’, 여성을 ‘금성인’이라 부르는 것도 양자의 차이가 극명하기 때문이다. 야구와 골프도 비슷하다. 야구는 9명이 뛰는 단체 종목인데 반해 골프는 혼자서 18홀을 도는 개인 종목이다. 하지만, 여기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가 된 이들이 있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의 야구해설가 손혁(39)과 미국여자골프(LPGA)투어에서 활약 중인 한희원(34) 부부다. 스타 커플의 ‘결별’과 ‘파경’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는 스포츠계에서 손혁-한희원 부부는 한국과 미국에서 떨어져 살면서도 10년째 신혼 재미를 맛보고 있다. <일요신문>이 스포츠 스타 커플의 롤 모델로 불리는 손혁-한희원 부부를 만났다. 두 부부가 함께 인터뷰에 응한 건 참으로 오랜만이라고 한다.
서울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만난 손혁-한희원 부부는 “주말 부부가 부럽다”고 했다. 그래도 주말이면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기 때문이란다. 남편 손혁은 활짝 웃으며 “12월부터 2월까지 겨울만 함께 지내고, 나머지 9개월은 떨어져 산다”며 “주말 부부도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라고 했다.
두 부부가 떨어져 산 건 오래 전부터다. 아내 한희원은 수줍은 표정으로 “우리 부부는 결혼 전부터 떨어져 살았다”며 “연애 때부터 지금까지 13년 이상을 떨어져 산 것 같다”고 말했다. 스포츠계에서 잉꼬부부로 소문난 두 부부가 ‘동계 부부’가 된 건 각자의 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손혁은 1996년부터 한국에서 프로야구 야구선수로 뛰었다. 은퇴 뒤엔 야구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반면 한희원은 2000년부터 LPGA투어에 진출해 여전히 현역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두 부부는 “우리는 각자의 일을 존중한다”며 “그랬기 때문에 결혼 10년 차 때까지 변함없는 사랑을 유지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박동희(박) : 한희원 프로는 언제 귀국한 겁니까?”
한희원(한) : LPGA 투어 다 끝나고 귀국했으니 11월 중순일 거예요.
박 : 11월 중순이면 올 시즌 내내 미국에서 활동한 셈이군요.
한 : 그렇죠. 중간 중간 한국에 들어오기도 했는데, 대부분 미국에서 생활한 것 같아요.
박 : 손혁 위원은 한국에서 야구해설가로 활동 중인데요. 그럼 부부가 시즌 중엔 떨어져 산다는 이야기군요.
손혁(손) : 시즌 때는 어쩔 수 없어요. 그래도 예전엔 와이프가 절 보고 싶어 했는데, 요즘엔 아들 (손)대일이를 더 보고 싶어 해서 큰 일이에요(웃음).
박 : 보통 떨어져 있을 땐 어떻게 안부를 나눌지 궁금합니다.
한 : 연애 때부터 주로 전화 통화나 이메일을 주고 받았어요. 오빠(남편을 지칭)의 말대로 요즘은 대일이의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가 정말 많아요. 가끔씩 ‘다 그만두고 대일이 보러 한국에 갈까’하기도 하죠(웃음).
손혁은 공주고-고려대에서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다. 공주고 재학 시절엔 동기생 박찬호보다 더 후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고려대 재학 때도 국가대표에 뽑히면서 성공가도를 달렸다. 한희원 역시 고교 시절 ‘천재 골퍼’로 유명세를 탔다. 1988년 개일초등 4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이후 서문여고 시절 국가대표 에이스를 지내면서 국내외 각종 대회에서 50여 차례 정상에 올랐다. 두 스포츠 천재가 만난 건 한희원의 아버지 한영관 한국리틀야구연맹 회장의 주선 때문이었다.
손혁의 고려대 야구부 선배이기도 한 한 회장은 1995년 고려대 야구부의 동계 극기훈련에 고2 한희원을 보내며 당시 대학 4학년 졸업반이었던 손혁에게 딸을 부탁했다. 그때 처음으로 만난 두 사람은 당시엔 별 감정이 없는 ‘오빠, 동생’사이였다. 그러다 손혁이 2000년 LG에서 해태로 트레이드됐을 때 이를 거부하며 미국으로 떠나고, 마침 한희원이 미 LPGA투어에 도전하면서 조금씩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다. 손혁은 “어려울 때 만나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면서 급속도로 가깝게 됐다”고 회상했다.
▲ 2003년 12월 20일 거행된 결혼식. |
박 : 2003년 12월 결혼에 성공했습니다. 여전히 두 분은 현역선수로 뛰고 있었는데요,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난관이 많았을 것 같아요.
한 : 지금도 오빠와 시댁 분들께 고맙고, 죄송해요. 전 결혼할 때 계속 미국에서 현역으로 뛰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어요. 오빠와 시아버지, 시어머니께서 제 뜻을 존중해주셨죠. 덕분에 지금까지 현역으로 뛸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손 : 전 2004년 은퇴했을 때 너무 아쉬운 게 많았어요. 속으로 ‘우리 와이프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운동을 오래할 수 있게 도와주자’고 마음먹었죠. 그래서 결혼할 때도 와이프 생각을 존중했고, 현역 은퇴 뒤엔 미국에 가서 와이프를 내조했어요. 돌아보면 미국에서 와이프와 LPGA투어를 돌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 같아요.
한 : 아이 낳고 참 미안할 때가 많았어요. 사실 미국은 이유식도 우리처럼 만들어 먹이지 않고 사 먹여요. 우리처럼 따뜻한 물에 매일 목욕시키는 일도 거의 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가 않잖아요. 한 번은 줄리 잉스터에게 물었더니 “나도 과거엔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전국으로 투어를 다녔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LPGA투어가 국제화되면서 과거처럼 아이들을 동반할 수 없게 됐다”고 했어요. 개인 케어도 미국 국내 투어만 해당하지, 미국 외 다른 나라에 가면 제공이 되지 않거든요. 결국 친정엄마가 대일이를 혼자 보셨는데 너무 힘들어하셔서 한국으로 아이와 함께 들어가셨어요. 그래도 아이 아빠가 한국에 있으니 아이한텐 다행이었죠.
손 : 솔직히 남편과 헤어지는 것보다 아이와 떨어지는 게 더 힘들었을 거예요. 자기 배 아파 낳은 자식이고, 한창 크는 걸 볼 때잖아요. 와이프 입장에서 생각하면 참 마음이 아플 겁니다. 그래서 아이가 아플 때 혹시 와이프가 걱정하지 않을까 싶어 아예 연락을 안 해요.
▲ 2004년 10월 27일 제주 나인브릿지 대회에서 손혁이 한희원의 퍼팅을 살피고 있다. |
12월 2일 부산 베이사이드 GC에서 열린 여자골프 한일전에서 한희원은 한국 대표팀 주장을 맡았다. 한희원은 경기 내내 후배들을 독려했고, 성적이 나쁜 골퍼의 등을 두들기며 격려했다. 22세에 미국 무대에 도전하고 이제 34세가 된 베테랑 한희원은 자신의 임무를 ‘그런 것’이라고 표현했다.
박 :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과 함께 미국 진출 1세대 골퍼로 불리고 있습니다. 2001년 미 LPGA투어 신인왕에 올랐으니 미국에서만 12년을 보낸 셈인데요. 후배 골퍼들을 바라보는 감회가 남다를 듯합니다. 격세지감을 느낄 수도 있겠고요.
한 : 젊은 후배들이 우승할 때 보면 참 대견하고, 기뻐요. 하지만, 한편으론 언론의 시선이 불편할 때도 있어요. 1세대 골퍼들이 못하면 ‘왜 우승하지 못하느냐’고 다그치곤 하는데요. 전 그건 아니라고 봐요. (박)세리 언니가 LPGA투어에서 우승했던 1990년대 말과 지금은 골프 환경이 하늘과 땅 차이예요. 신지애, 최나연처럼 훌륭한 후배도 있지만, 박세리 같은 골퍼는 정말 나오기 힘들거든요. 무엇보다 LPGA투어 우승이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쳐서 탄생하는 것인지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우승 못했다고 비난하시기 전에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한국 여자 골퍼들이 활약하는 걸 지켜봐주시면 좋겠어요.
손 : 와이프가 몇 년을 더 현역으로 뛸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전 박세리 골퍼가 가야 할 길이 있고, 한희원 골퍼가 가야 할 길이 있다고 봐요. 박세리 골퍼처럼 많은 우승을 거두며 독보적인 길을 걷는 골퍼가 있는 반면 와이프처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으면서 현역으로 뛰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골퍼도 있다고 봐요. 전 와이프가 우승보단 후배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는 모범 선수, 모범 엄마가 되길 더 바랍니다.
박 : 마지막으로 하나만 여쭤보겠습니다. 두 분이 언제나 ‘풀타임 부부’가 될 수 있을까요.
한 : 모르겠어요. 내년이 될 수도 있고, 10년 후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솔직히 전 우승을 목표로 뛰진 않아요. 그저 제가 만족할 만한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동안만이라도 그린을 걷고 싶어요. 물론 이젠 대일이와 남편 생각을 안 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손 : 전 2, 3년 정도까지만 뛰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결정은 와이프 몫이라고 봐요. 사실 저도 운동한 사람이지만, 선수는 경기장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나요. 비록 와이프가 예전처럼 성적이 나지 않아 자존심 상할 순 있겠지만, 엄마 골퍼로서 계속 뛰길 바라는 분들도 많은 게 사실이거든요. 제 바람은 하나예요. 저처럼 과거 현역시절을 돌아보며 ‘더 열심히 할걸’ 후회하는 대신 와이프는 ‘정말 후회 없이 선수 생활을 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은퇴하는 거예요. 우리 와이프라면 꼭 그 꿈을 이루리라 봐요(웃음).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