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8대 대선이 박빙이었던 만큼 문재인 후보 지지자의 상실감도 크다. 사진은 12월 19일 밤 개표를 하는 모습.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18대 대선을 치른 지 2주차에 접어들었다. 박근혜 당선인은 12월 27일 1차 인수위 인선안을 발표했고 문재인 후보는 민생현장을 돌며 지지자를 위로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결과에 따른 유권자들의 후유증과 상실감은 여전히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특히 촛불세대라 불리던 젊은층, 노동자와 사회활동가, 진보진영 인사들의 상실감이 그 어느 때 선거보다 크다는 분석이다. 마지막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던 박빙의 선거 이후 봉합되지 않은 유권자들의 선거후유증과 상실감을 들여다봤다.
대선 직후인 12월 20일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는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폐지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게시됐다. “우리나라 노인분들께서 가지고 계신 복지에 대한 개념이란 빨갱이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가뜩이나 재정이 악화되어 가는 지하철공사에서 노인 무임승차를 전면 폐지해 주시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이 글은 게시되자마자 순식간에 1만 명 이상의 서명댓글이 달렸다. 노인공경과 대선결과를 무시한 화풀이라는 반대 의견도 팽팽히 맞섰다.
이와 관련해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지하철 무임승차와 관련한 재정문제는 예전부터 논의됐던 일”이라며 “선거이후 지하철 무임승차에 관한 이야기가 정치적 논리로만 다뤄지고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선거 이후 진보진영 인사들은 트위터를 통해 선거결과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특히 소설가 공지영은 “나찌(나치) 치하의 독일 지식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유신치하의 지식인들은?”라고 표현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서울대 조국 교수도 트위터를 통해 “대선 때문에 연기한 ‘묵언안거’에 들어갑니다. SNS 활동 및 언론노출 일체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트위터 중단을 선언했다.
이에 한국경제신문 정규재 논설위원실장은 “공지영과 이외수는 정치 거짓말 그만하고 소설이나 쓰세요. 단문 140자 트위터나 하는 것이 문학가로서 쪽팔리지도 않느냐”라며 “조국 교수도 당분간 강의하지 말고 연구실 들어가 공부 좀 하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대선 과정에서 쌓였던 진보-보수 간 감정대립 후유증이 여전히 깊게 남아있다.
문재인 후보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던 호남지역의 민심도 그 후유증이 크다. 호남지역 출신 유 아무개 씨는 “새누리당의 재집권이 슬픈 것이 아니다. 독재의 잔상이 떠오른다는 점에서 더 많이 허무하다. 주변 사람들의 허탈함도 많이 다르지 않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호남 지역 출신 이 아무개 씨는 “난 지난 대선에서는 이명박을 지지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현 정부의 성과와는 상관없이 박 후보만큼은 독재정권이 연상돼 마음이 아파 지지할 수 없었다. 박근혜에 대한 아쉬움인 것 같다”고 성토했다.
노동현장에서는 선거 이후 비보가 잇따라 전해졌다. 대선 이틀 뒤였던 21일에는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최강서 조직차장이 자살했다. 한진중공업으로 복직했지만 사측은 노조를 상대로 158억의 손해배상청구를 한 상태였다. 그는 휴대폰에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158억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박근혜가 대통령 되고 5년을 또… 못하겠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22일에는 이운남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 초대 조직부장이 투신자살했다. 같은 날 서울민권연대 최경남 청년활동가 역시 번개탄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탄절엔 이호일 전국대학노동조합 한국외대지부 지부장이 자살했다. 노동자나 사회활동가 또한 이번 선거결과에 상실감이 클 것이라는 진단이다.
주은우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동자나 사회활동가에게는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와 더 나아가 독재정부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이번 선거결과에 따른 그들의 상실감이 컸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선거결과가 이들의 극단적인 선택을 좌우했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박 당선인도 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이들의 절박함을 헤아리는 대전제를 안고 가야 ‘통합’도 가능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배해경 인턴기자
매뉴얼 안 지킨 게 ‘옥에 티’
선거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는 의혹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수개표를 청원한다는 글에도 18만 명이 서명을 했다. 이후로도 비슷한 내용의 수개표 청원글이 계속해서 확산되고 있다.
부정투표 논란과 수개표를 다시 하라는 논란이 계속되자 선관위 측은 “수개표 했다”며 해명에 나섰다. 선관위는 “전자개표를 했다는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전자개표기는 사용한 적 없다. 투표지 분류기를 사용했을 뿐이다”며 “분류된 표는 일일이 다 수작업과 육안을 통해 심사했다. 이렇게 심사된 표는 또 다시 계표기로 넘어가 확인이 된다”며 부정투표 논란을 전면 부인했다.
이에 중앙선관위 한영수 전 노조위원장은 “선관위의 해명도 모두 거짓말”이라 반박하며 ‘제18대 대통령선거 선거무효소송인단’ 모집을 시작했다.
한 씨는 “선관위는 ‘전자개표기’가 아닌 ‘투표분류기’를 사용했다고 했다. 하지만 ‘투표분류기’가 우리가 알고 있는 ‘전자개표기’와 똑같은 것이다. 2003년 당시에는 그것을 ‘본체’라고 호도했다”고 말했다. 한 씨의 말에 따르면 전자개표기로 분류된 유효표를 수작업으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혼표나 무효표가 발견될 경우 분류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명, 모든 전자개표기 사용이 중단된다고 한다. 이후 개표는 완전 수개표로 전환해야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그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
이에 선관위 측은 “모든 개표과정은 정당이나 후보자가 추천한 참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한다. 분류기에서 투표 분류가 끝난 투표지는 다시 심사집계부에서 전량 개표사무원이 일일이 육안으로 심사하고 다시 또 계수기를 이용해서 그 수를 정확하게 확인한다”며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의혹제기는 자제해달라”고 말했다.
배해경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