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시즌 K리그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최용수 감독을 만나 새해 ACL 우승을 향한 각오를 들어봤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굉장히 강렬하고 짜릿했던 2012년을 보낸 만큼 새해를 맞는 최 감독의 각오는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다. 새해 AFC 챔스리그에 도전장을 내민 그는 우승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연말에도 구리 챔피언스클럽에서 선수들과 함께 마무리 훈련 중이었다.
# 천적 윤성효 감독
K리그 최고의 ‘슈퍼매치’는 FC서울과 수원삼성전이다. 그런데 이 라이벌 매치에서 FC서울은 2010년 8월28일 이후부터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FA컵 1경기를 포함해 7연패를 거둔 후 무승부로 연패를 마감한 게 전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용수 감독은 선배 윤성효 감독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하다.
“참 많이도 졌다. 수원전은 생각조차 하기 싫을 정도였다. 그렇게 후배를 무참히 짓밟아 놓고 사퇴하시는 윤성효 감독님을 원망한 적도 많았다. 감독님이 물러나시는 걸 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다’는 생각도 들었다(웃음). 그런데 그냥 물러나신 게 아니라 이번엔 수원에서 더 먼 부산으로 가시더라. 진짜 질긴 분이다. 수원 게임에서 패할 때마다 윤 감독님에게 전화를 드려 ‘형님, 도대체 절 왜 이렇게 괴롭히십니까? 절 매번 이기고 승점 가져가시면 기분 좋습니까?’라고 항의(?)한 적도 있었다.”
최 감독의 전화를 받은 윤 감독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용수야! 나도 괴롭다”라고. 윤 감독은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선배다. 최 감독과는 평소 친분이 두터운 사이. 그는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챙기는 선배가 K리그에서 만나니까 인정사정 봐주질 않았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 새로운 라이벌 서정원 감독
윤성효 감독이 떠난 자리에 수석 코치 서정원이 감독으로 승진했다. 언론에서는 FC서울과 수원삼성의 천적 관계를 떠올리며 최 감독의 2년 선배인 서 감독과의 ‘악연’을 집중 조명했다. 이에 대해 최 감독은 이런 말로 자신감을 드러낸다.
“서 감독이 취임 인터뷰에서 FC서울전의 연승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계속 이기라고 해라. 우린 우승하면 되니까(웃음).”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인다.
“서 감독은 인품이 훌륭하고 모범적인 스타일이시다. 아마 축구도 모범적으로 풀어내지 않을까 싶다. 난 선수 때부터 성격도 모났고,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두 팀이 붙으면 아주 재미난 장면들이 연출될 것 같다. 난 서 감독의 스타일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걸 역으로 치고 나갈 생각이다.”
▲ 최 감독이 감독상 트로피에 입맞추는 모습. 왼쪽은 MVP를 수상한 데얀. 박은숙 기자 espsrk@ilyo.co.kr |
# 지도자들 세대 교체 바람
서른아홉 살의 초보 감독이 첫 해부터 K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니 최 감독의 등장은 다른 팀에도 큰 영향을 줬다. 시즌 종료까지 모두 10팀에서 감독 교체가 있었다. 후임 감독들 대부분이 ‘젊은 피’들로 채워졌다.
“이 판 자체가 ‘동물의 왕국’이 됐다. 그러나 과연 지도자들의 세대 교체 바람이 바람직할까? 하는 의문도 든다. 물론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차범근, 허정무, 조광래 감독님 등 커리어가 화려한 감독님들도 K리그에 계셔야 한다. (황)선홍이 형처럼 중간 연령대의 지도자도 필요하고 나처럼 나이 어린 지도자도 존재해야 스토리가 풍부해질 수 있다. 난 선배님들이 많이 계셨으면 좋겠다. 그래야 멋진 매치업을 펼칠 수 있을 것 같다.”
‘감독한테 내일은 없다.’ 최 감독의 얘기다. 성적을 내지 못하면 가차없이 잘리는 게 K리그의 현실이 됐다. 최 감독은 축구판에서 점점 인간미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한다.
# ‘세리머니’ 종결자
최 감독을 얘기하면서 ‘세리머니’를 빼놓을 수가 없다. 선수 때도 광고판 세리머니로 유명세를 탔지만 가장 큰 화제를 모았던 건 지난 7월에 열린 올스타전 때였다. 2002한일 월드컵 멤버들과 K리그 선수들이 벌인 경기에서 월드컵 멤버로 출전했던 최 감독은 전반에 교체 선수로 투입된 지 1분 만에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골을 터트렸다. 골 세리머니는 발로텔리(이탈리아)가 유로2012 4강전 독일과의 경기에서 선보인 헐크 세리머니를 재연해냈다. 웃통을 벗고 출렁대는 뱃살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뱃살텔리’라는 별명도 붙여졌다.
이번 K리그 우승 때는 공약으로 내건 ‘말춤’ 대신 직접 말을 타고 등장하는 쇼맨십을 선보여 팬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올스타전의 감동은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박지성의 패스를 받아서 골문을 향해 질주할 거란 장면을 상상이나 했겠나. 지성이의 패스를 받기 위해 움직이는 내가 엄청 자랑스러웠다(웃음). 말 세리머니는 구단에 내가 요청한 사안인데, 약을 먹였는지 말이 이상해져서 자칫 잘못했으면 낙마할 뻔했었다(웃음). 세리머니에도 품격이 있다. 누구처럼 레슬링복 입고(성남의 신태용 전 감독) 감독의 품격을 떨어트리는 세리머니는 결코 안 한다(웃음).”
최용수 감독은 새해 목표에 대해 “ACL 우승으로 아시아 정상에 오르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승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 난 초심, 무심으로 돌아갈 것이다. 백지 상태에서 하나씩 벽돌을 쌓는 심정으로 새 시즌을 준비할 계획이다. 그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만한 부분은 가차없이 제거할 것이다. 선수들, 코칭스태프들 모두 긴장감 잃지 말고 스프링캠프를 준비해야 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 감독은 주류에서 벗어난 비주류들을 대상으로 한 ‘공포의 외인구단’을 구성하고 싶다는 희망도 밝혔다. 축구밖에 모르는 열악한 환경의 출신들을 대상으로 팀을 만들어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싶다는 것. 그것이 바로 자신이 축구를 통해 받은 사랑과 특혜를 축구로 돌려주는 것이라고 믿는 그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