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일부 지자체 공무원들이 매년 고가의 건강검진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정밀검진 모습으로 기사 내용과 상관 없음. |
경기도 일부 지자체 공무원들이 국민 혈세로 ‘귀족형’ 건강검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공무원들에게 해마다 50만 원 상당의 고급 종합검진이 시 예산에서 지원되고 있는 것이다. 관련 건강검진센터 내부자에 따르면 일부 지자체 당 약 1억 2000만~약 6억 7000만 원에 달하는 비용이 공무원들의 ‘귀족형’ 건강검진을 위해 들어간다고 한다. 참고로 검진비용 1억 원이면 시설아동 100명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할 수 있는 금액. 연초마다 약속이나 한 듯이 “시 예산이 부족하다”며 입을 모으던 경기도 지자체. 그런데 이번에 공무원 ‘귀족형’ 건강검진 실태가 외부에 알려질 경우 ‘시민 혈세로 건강 챙기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일요신문>이 경기도 지자체 공무원 ‘귀족형’ 건강검진 실태를 파헤쳐봤다.
“드라마에서나 나오던 복잡한 CT 촬영을 하고 MRI도 찍었다. 대장 내시경, 위 내시경도 받고 정신이 없었다.”
최근 과천시에 재직 중인 한 20대 공무원 A 씨는 매년 건강검진을 받는 날이 오면 괴롭다고 한다. 위험증상이 있는 환자들만 받는 것으로 알려진 MRI 검사 등 복잡한 건강검진 절차를 거치고 나면 저절로 힘이 빠진다는 것이다.
A 씨처럼 별다른 특이 증상이 없는 20대 남성을 비롯한 사무직 공무원 660여 명을 위해 올해 과천시는 2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쏟아 부었다.
의왕시, 군포시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지난해 이 지자체들은 공무원 한 명당 28만~30만 원을 건강검진 명목으로 시 예산에서 지원했다. 오산시도 시 예산 2억 2000여 만 원을 공무원 700여 명의 건강검진을 위해 대대적으로 투입했다.
이 같은 경기도 일부 지자체 공무원들의 ‘귀족형’ 건강검진 실태에 대해 서울시 내부 관계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시 예산으로 20만~30만 원 상당의 건강검진을 해마다 제공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라면서 “괴담이 아니냐”는 반응까지 보였다.
서울시에 따르면 사무직은 기본 검진만을 받도록 돼 있고, 이마저도 시 예산이 아니라 복지 포인트에서 차감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추가검진은 개인이 직접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복지 포인트는 복지 차원에서 공무원 1명에게 매년 지급되는 한도 100만~200만 원인 ‘기프트 카드’의 일종이다. 그러나 과천시, 군포시, 의왕시, 오산시 등 다수의 경기도 지자체에선 개인별 복지 포인트 차감이 아닌 별도의 예산을 할애해 고가의 건강검진 혜택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복지 포인트와 관련해 눈여겨볼 만한 지자체도 있었다. 안양시가 그러하다. 안양시는 자체 예산이 아닌 개인별 복지 포인트에서 건강검진 비용을 지원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귀족형’ 건강검진을 고수하고 있어 소속 공무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고 한다.
안양시 소속 공무원 B 씨는 “한도가 119만 원 정도인 복지 포인트를 좀 더 알뜰하게 쓰고 싶은데 매년 강제로 35만원 상당의 건강검진을 받게 하니 (돈이) 아깝다. 아직 20대인데 매년 CT, MRI, 대장, 위 내시경을 왜 받아야 하는지를 모르겠다”며 “건강검진센터, 일부 병원과 시 자체 사이에 모종의 커넥션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이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기도 지자체에서는 ‘공무원 건강 챙기기’에 혈안이 된 상태다. 때문에 지자체와 결연을 맺은 일부 건강검진 전문 병원 측에서도 최근 들어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치고 있는 실정이다.
한 검진센터 관계자는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50~60대 환자들이나 받는 고액의 ‘귀족형’ 건강검진을 20~30대 공무원들이 매년 받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반면 건강검진이 반드시 필요한 경찰, 소방공무원들은 시력검사 등이 포함된 가장 기본적인 일반검진을 받고 있다. 굉장히 불공평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건강보험관리공단에서 실시하고 있는 건강검진의 경우 현장직에 한해서만 매년 검진이 이뤄지고 있다. 공무원과 같은 사무직은 격년마다 일반검진을 받을 것을 권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90% 이상 사무직인 지자체 공무원들의 경우 무리해서 매년 고가의 건강검진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게 현직 의료관계자 다수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한 내과 전문의는 “위 내시경은 2년에 한 번, 대장 내시경은 문제없을 경우 5년에 한 번씩 받길 권유하고 있다”며 “특히나 경기도 공무원들처럼 CT촬영을 매년 하는 것은 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귀띔했다.
이어 이 전문의는 “40세 이상부터 2년에 한번 암 검진을 받아보는 게 좋다. 20~30대의 경우 매년 과도한 검진을 할 경우 오히려 몸을 상하게 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경찰, 소방공무원처럼 현장직들은 매년 검진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가의 검진이 필요한 건 바로 경찰 공무원들인데 왜 이들에겐 혜택을 안 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경기도 지자체를 구성하는 공무원 90% 이상이 사무직으로 구성돼 있는데 ‘귀족형’ 건강검진을 무리해서 추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과천시의 한 관계자는 1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공무원 종합검진을 2008년도부터 진행해오고 있다. 암이나 중병으로 사망한 공무원이 증가함에 따라 건강의 중요성을 깨달은 시 측이 소속 공무원의 복지를 위해 기존의 일반검진이 아닌 고가의 종합검진을 택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과도한 복지 처우에 대해선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천시 소속 공무원 C 씨는 “CT, MRI에서 나오는 방사능량이 상당해 의료진들도 자주 검사받지 말 것을 권유하는 판국에 왜 무리해서 ‘귀족형’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과천시의회 황순식 의장은 “올 초 시의회 내부에서도 시 측에 건강검진 예산이 과도하다며 시정할 것을 몇 차례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앞으로 좀 더 조사해보고 예산집행 때 브레이크를 걸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