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대선일 당선이 확정된 후 당사에 나온 당시 노 후보 부부가 당원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비슷한 시각 거리에선 ‘노사모’ 회원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 ||
민주당 노무현,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간의 단일화 협상 대표는 외견상 노 후보측은 신계륜 비서실장, 정 후보측은 민창기 유세위원장인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민주당 국장 출신인 여론조사 전문가 H씨와 김 전 의원이 세부 협상을 전적으로 핸들링했다.
김 전 의원은 H씨에게 서너 시간 전에 종지부를 찍은 합의 사항 중 단일후보 선택에 관한 여론조사 문항의 수정을 요구했다. 김 전 의원이 꺼낸 카드를 보고 노 후보측 실무팀은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후보측은 못이기는 체 김 전 의원의 요구를 수용했다. 만족한 김 전 의원이 돌아가자 노 후보측은 재수정 요구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김 전 의원은 22일 오전 노 후보측 실무팀에게 ‘원상 회복’을 희망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두 번씩이나 입장을 번복하게 된 김 전 의원으로서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리기 어려웠다. 이미 자신이 밀어붙인 ‘역선택 방지 조항’까지 노 후보측이 수용했기 때문에 명분도 떨어졌다.
‘역선택 방지 조항’이란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지지자들이 손쉬운 상대를 고르려고 노 후보를 선택하는 경우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 후보가 평균 지지율인 35%보다 3%포인트 이상 덜 나올 경우 단일화 여론조사 자체를 무효화하자는 내용이다.
김 전 의원이 강력하게 요구해 진통 끝에 노 후보측은 이를 받아들였다. 때문에 노 후보측 일각에서는 ‘다 내준 협상’이라며 울분을 터뜨리기도 했다. 소장파 임종석 의원은 “설문 문항도 저쪽 요구대로 다 뜯어고치고 무효화 조항도 받아들였다”며 눈물을 글썽일 정도였다.
그러나 노 후보측 핵심들은 김 전 의원의 수정안을 ‘예상치 못했던 수확’으로 여기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노 후보는 정 후보와의 지지율 경쟁에서 줄곧 열세였지만 수정안 덕분에 ‘해볼 만한 게임’이 됐다는 얘기다. 당시 언론은 노 후보가 역선택 방지 조항을 수용한 점을 ‘결단’이라고 평가하면서 주목했으나 설문 문항은 노 후보에게 유리한 쪽으로 변화했던 것이다.
김 전 의원은 왜 그랬을까. 노 후보측은 일종의 ‘판단 미스’라고 봤다. 이처럼 노 후보가 완전히 대권을 거머쥐기까지는 고비고비마다 ‘천운’이 따라준 경우가 적지 않다.
한·일 공동 월드컵 이후 지지율이 욱일승천했던 정 후보가 어찌된 영문인지 노 후보에게 ‘치명타’를 가하지 않았다는 점도 천운에 해당된다. 특히 9월17일 정 후보가 대선 출마와 국민통합21 창당을 공식 선언한 이후 민주당은 붕괴 직전까지 흔들렸다. 정 후보가 적극적으로 구애의 손짓을 하면 달려갈 태세인 민주당 의원은 수십명에 달했다.
노 후보로서는 탈당 도미노 사태라는 벼랑끝 위기에 서있었다. 노 후보측은 “보수 수구 언론이 위기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실제 상황은 심각했다. 민주당 내 동교동계나 영입파 의원들만 흔들린 게 아니다.
민주당의 모 재야출신 의원조차 “명분은 노 후보에게 있다. 정 후보는 재벌 2세 출신이다. 우리가 노 후보를 버리고 정 후보를 선택할 수는 없다. 그러나 노 후보로는 안 되는 것 아니냐. 고민중이다”라고 토로했다.
상당수 민주당 의원들이 정 후보를 유일한 대안으로 보면서도 선뜻 합류하지 못한 속사정은 ‘돈문제’였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현찰을 풀지 않는 정 후보를 보면서 과연 대권도전 의지가 있는지 여부를 의심했다는 얘기다.
▲ 지난해 11월 후보단일화에 합의한 직후 포장마차에서 ‘러브 샷’을 나눴던 MJ(위)는 대선전야 노 후보를 버리고 번복을 설득하러온 정대철 선대위장 등 노 캠프 사람들을 만나주지 도 않았다. | ||
당시 중립적 성향의 한 중진 의원은 “MJ(정몽준의 영문 이니셜)가 왜 저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민주당에서 절반쯤 발을 뺀 의원들이 대부분이다. 골수 노 후보 진영이라고 볼 수 있는 의원은 열 손가락으로 꼽는다. 정 후보가 몇 백억만 풀면 순식간에 몰려갈 것이다. 요즘 MJ 행보를 보면 답답하다”라고 말했다. MJ가 제대로 당을 만들어서 대선에 출마할 요량이라면 돈을 풀 시점이라는 설명이었다.
MJ는 ‘돈정치’를 안 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색’하다는 평판까지 받았다. 국민통합21을 창당하면서 최소한의 비용만을 지출했다. MJ는 돈을 풀기는커녕 후단협이 제안한 ‘공동신당 창당 준비위’ 대표 파견 제안도 10월8일 거절한다.
구 정치인과의 연대, 돈정치 등을 배척함으로써 참신한 이미지로 승부하겠다는 계산법이었다. 재벌가문 출신인 MJ가 이 같은 전략을 편 것은 지지율 상승에는 상당한 효과를 봤다. 그러나 현실정치 구도를 장악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바로 그 덕분에 노 후보는 동교동계와 후단협의 흔들기 공세 속에서도 버텨내, 재기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10월17일 이뤄진 김민석 전 의원의 국민통합21 입당도 일반적 예상과는 달리 노 후보에게 극적인 반전의 계기로 작용했다. 김 전 의원은 “정몽준 후보가 현시점에서 냉전회귀세력의 집권을 막을 현실적 대안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며 “새로운 큰 일을 위해 몸을 던지는 심청의 심정으로 오늘 기꺼이 욕을 먹겠다”고 밝혔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다가 이명박 후보에게 석패했던 김 전 의원은 당내 386세대의 대표성을 지닌 간판 스타였다. ‘개혁세력이 노 후보를 버렸다’는 상징성을 주는 최악의 상황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돌아갔다. 김 전 의원은 말 그대로 욕을 먹었다. 20·30대 젊은층이 김 전 의원의 탈당 및 정 후보측 합류를 ‘정치적 배신’으로 규정하며 분노했다. 노풍 재점화 운동과 노 후보 후원금 모금운동이 갑자기 불이 붙었다.
김 전 의원의 탈당이 이처럼 초장에 여론의 질타를 받은 것은 노 후보에게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김 전 의원의 행보는 당내 동교동계의 탈당을 겨냥한 신호탄이었다는 해석이 유력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정균환 원내총무가 김 전 의원의 탈당 배후라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김 전 의원은 2001년 민주당 개혁파 의원들이 ‘정풍운동’을 벌였을 때 그 대상인 동교동계를 엄호했던 경력이 있다. 그 이후 동교동계는 정동영 추미애 의원 등 개혁파보다 김 전 의원을 차세대 리더로 꼽아왔다. 김 전 의원은 서울시장 후보 공천도 동교동계가 집중 후원한 덕분에 쉽게 따냈다.
당시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김 전 의원이 정 후보 진영으로 이탈한 게 여론을 급속히 악화시키지 않았다면 결국 동교동계가 노 후보를 버리고 움직였을 것이다. 한화갑 대표, 정균환 총무, 한광옥 최고위원 등 동교동계 리더 3인이 지난 9월 회동에서 큰 방향을 정한 것으로 안다. 노 후보로는 안되기 때문에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후보단일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게 골자다. 후보단일화란 바로 정 후보로의 단일화를 뜻하는 것이다”고 전했다.
공식선거운동이 개시된 11월27일 이후 단일후보인 노 후보가 지지율 면에서 이회창 후보를 리드하기 시작했으나 한나라당측이 ‘묵살전법’으로 나갔다는 사실도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때부터 모든 대선 여론조사는 공표가 금지됐으나 대선일인 12월19일 직전까지 각 언론사 등에 의해 수십 개의 비공개 여론조사가 실시됐다. 그 조사들은 공통된 흐름을 갖고 있었다.
단순 지지율은 노 후보가 이 후보를 평균 7~8%를 줄곧 앞섰다. 노 후보의 지지층인 20·30대의 투표율이 낮고 이 후보의 지지층인 50·60대가 투표율이 높다는 점을 감안한 판별분석을 해봐도 노 후보는 2~3%포인트 차로 이 후보를 리드하는 일관된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한나라당 서청원 대표, 김영일 총장 등 지도부와 이 후보 특보진영은 상당수 언론사들의 여론조사가 ‘조작된 내용’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뚜껑을 열어보면 이 후보가 승리할 것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대선이 끝난 후 한나라당의 모 중진의원은 “노무현 같으면 판세를 뒤집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이미 취했을 것이다. 수십 개의 여론조사가 한결같이 이 후보의 패배를 예고하고 있으면 잃을 게 없다는 자세로 가야 했다. 하지만 이 후보 측근 중에서 감히 그런 충언을 할 사람이 없었다. 설령 있었다해도 이 후보의 성격상 진노를 샀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토로했다. 밀리던 한나라당이 막판까지 국면전환을 위한 승부수를 던지는 대신에 현상유지 노선을 선택함으로써 노 후보가 손쉽게 최후의 미소를 짓는 데 일조했던 셈이다.
노 후보에게 마지막 시련은 12월18일 명동유세 직후 찾아왔으나 이 역시 ‘전화위복’이 됐다. 이날 함께 합동유세를 했던 정 후보가 심야에 전격적으로 ‘노 후보 지지 철회’를 선언한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과정은 단순하다.
노 후보가 유세장에서 ‘다음 대통령은 정몽준’이라는 피켓을 보고 “속도위반하지 마라. 여성 대권을 꿈꾸는 추미애 의원, 내가 힘들 때 뒷받침해준 정동영 의원도 있다” 등의 발언을 한 게 화근이 됐다.
정 후보측이 유세 후 시내 냉면집에서 뒤풀이를 하는 자리에서 가수 김흥국씨가 “(노 후보가) 우리한테 이럴 수 있느냐”고 흥분했고, 부인 김 여사는 눈물까지 흘렸다. 이에 순간적으로 흥분한 정 의원이 김행 대변인을 불러 지지 철회를 발표하게 했다는 것이다.
전혀 다른 해석도 있다. 정 후보측 캠프에 있었던 모 인사는 대선 이후 “정 후보가 지지 철회를 한 진짜 이유는 다르다. 이회창 후보가 당선됐을 경우 현대그룹과 자신이 정치보복을 당할 가능성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때문에 시기만 보아오다가 명동유세에서의 노 후보 발언을 지지 철회의 핑계로 삼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왜곡된 정보보고’ 원인설도 흥미롭다. 민주당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당시 정 후보측에 모 유력 기업의 대선 여론조사 결과를 흘렸다고 한다. 물론 이회창 후보가 승리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조사로 인해 심하게 흔들린 정 후보가 최악의 선택을 했다고 보여진다”고 분석했다.
정 후보의 돌출행동 원인과는 무관하게 노 후보측은 그날 밤 충격에 휩싸였었다. 측근들은 즉각 노 후보에게 어떤 수를 써서라도 지지 철회를 번복하게 하라고 건의했다. 한밤중에 정 후보 자택을 찾아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고 돌아오는 노 후보의 표정은 침통하기 그지없었다.
지지 철회가 단일후보 지지표 급감으로 직결될 것이라는 게 선거전문가나 언론기관의 일반적 관측이었다. 노 후보의 한 핵심 측근조차 “이제 졌다고 생각해 포기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정권교체를 눈앞에 둔 것처럼 희색이 만면해졌다.
민주당 내에서도 김희선 의원 정도가 19일 아침 회의에서 “오히려 단일후보 지지표가 결집될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귀담아 듣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현실은 김 의원의 주장처럼 흘러갔다.
이진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