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 많았던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는 결국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전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의 승리로 끝났다. 지난 28일 축구협회 정기 대의원총회에서 진행된 차기 회장 선거는 결선 투표까지 이어지며 내내 살얼음판 승부로 펼쳐졌다. 24명의 대의원들이 실시한 1차 투표에서 유력 후보 2명(정몽규 회장,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이 예상 밖으로 부진했고, 속개된 2차 투표에서는 한 쪽이 1차 투표 때 타 후보들을 찍었던 대의원들의 표를 싹쓸이하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 선거 노하우의 승리?
최초 예상부터 어긋났다. 정 회장과 허 회장은 1차 투표에서 각각 9표 이상을 획득하리라 판단했지만 둘은 각각 7표와 8표를 얻는 데 그쳤다. 오히려 조중연 전 축구협회장의 든든한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김석한 전 중등축구연맹 회장이 당초 예측(3~4표)을 뒤엎고 총 6표를 얻어 유력 주자들을 크게 위협했다. 만약 김 회장이 표 한 장을 더 얻어 타 후보와 1차 투표 동률(2위)을 이뤘더라면 3명이 결선 투표에 오르는 진풍경을 연출할 뻔했다.
결과적으로 최선책이 못 됐던 정 회장이 축구 대권을 잡았으나 현대가(家) 차원의 선거 전략은 빛을 발했다. 결국 단일화가 이뤄지지 못한 채 후보들 전원이 선거전에 뛰어들기로 하자 정 회장 캠프는 전략을 바꿨다. 이른바 ‘2차 투표 표심(心)잡기’였다. 이미 프로연맹과 축구협회 산하 실업축구연맹, 여자축구연맹, 풋살연맹 등 4표는 고정 지지표였고, 현대의 텃밭인 울산시를 확실히 잡은 상황에서 나머지 대의원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허 회장에게도 우군이 있었지만 뿌리까지 탄탄한 고정 지지표는 아니었다. 언제라도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는 의미다. 이 점을 현대가 노렸다.
이미 현대는 1993년 축구계 대권을 잡은 뒤 2009년 선거까지 정몽준 명예회장, 조중연 전 회장 등을 연이어 당선시키며 ‘이기는 선거’에 대한 남다른 노하우가 있었다. 여기에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선거 등까지 치르면서 경험을 쌓아왔다. 정 회장을 도운 한 캠프 인사는 “마지막까지 진정성에 초점을 두고 대의원들과 접촉했다”고 했다. 항간에서는 현대 차원의 ‘통 큰’ 베팅이 대의원들을 대상으로 단행됐다는 불편한 소문도 있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1차 투표에서 일찌감치 승부가 끝나는 게 좀 더 어울리는 시나리오였다. 어쨌든 완벽한 승자가 아니더라도 정 회장과 현대는 최소한 차선의 승자가 되는 길을 택한 셈이다. 반면 허 회장은 정 회장에 비해 확실한 카드를 손에 쥐지는 못했다. 오히려 1차 투표에서조차 최소 한 장 이상의 이탈 표가 생기면서 이기고도 찜찜한 마음으로 2차 투표를 맞이해야 했다.
# 불편한 오해의 진실은?
24명의 대의원들은 또 어떨까. 1000억 원대의 엄청난 한 해 예산을 집행하는 축구 대통령을 뽑는 역할을 해 언론과 축구 팬들로부터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들이다. 언론이 선거 관련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접촉하는 주요 취재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마냥 화려하지는 않았다. 관례상 총회가 열린 서울 시내 한 특급호텔에 여장을 풀고 1~2박을 하면서 마음을 정리한 대의원들은 핵심 조연이기도 했지만 선거전 내내 가슴 졸여야 했다. 무엇보다 ‘누가 누굴 만났다더라’ ‘누가 누굴 찍기로 하고, 얼마를 받기로 했다더라’ ‘후보 추천은 얼마, 투표는 얼마’ ‘모 후보로부터 당신이 날 정말 찍었는지 믿을 수 없으니 미니카메라로 (투표 용지를) 찍든, 어떻게 해서든 증거를 가져오라는 얘기를 들었다’ 등등의 일명, ‘카더라’ 통신은 더욱 불안감을 안겼다. 심지어 한 탈락 후보가 선거 직후, “(선거 과정을 겪어보니) 대의원들은 축구 발전에는 관심 없고 돈만 관심 있었다”는 발언을 하며 더욱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그러다보니 어디서 누굴 만나고,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오해 받기 십상이었다. 일부는 아예 휴대폰 전원 스위치를 꺼놓기도 했다고 한다. 일각에선 특정 후보가 대의원들을 설득할 때 소요됐던 구체적인 돈 액수까지 거론되기도 했다.
물론 특정 대의원들의 표가 어디로 향할 것이란 분석은 이미 오래전에 나왔다. 아울러 선거 결과에 이들의 희비가 교체된 것도 사실이다. 다만 예상 득표와 최종 득표 상황이 달라지며 몇몇 인사들은 특정 캠프로부터 ‘배신자’가 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으니 대의원들이 결코 쉬운 자리는 아니었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