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를린>의 스틸컷. 소설 <차일드44>와 스토리 전개 등이 상당부분 비슷하다.
<베를린>의 표절 논란은 소설 <차일드44>를 번역한 박산호 씨가 인터넷에 <베를린> 표절 의혹을 제기한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차일드44>를 국내에서 출판한 노블마인(웅진씽크빅) 측도 “상당 부분이 비슷한데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소설 독자가 적다는 이유로 소설을 읽은 독자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다”는 입장을 보였다. 류승완 감독이 2010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분명 <차일드44>를 읽었다고 했는데 제작사 측에서는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어 당혹스럽다는 것이다.
실제로 <베를린> 측은 “첩보물에 나오는 일반적인 내용일 뿐”이라며 ‘표절’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특히 류승완 감독이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성한 취재파일까지 공개할 수 있다는 강경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한 북한 관련 장면의 상당 부분은 여성 군인 출신 탈북자 백 아무개 씨의 아이디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베를린> 측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낸 백 씨는 표절 논란으로 자신의 삶이 부정당하는 것 같다며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 <베를린>과 <차일드44>는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과 소련의 공포정치가 배경이라는 점은 유사하지만 큰 줄기는 전혀 다르다. 실제로 <베를린>은 북한 당원들 간의 알력을 그리고 있는 반면 <차일드44>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추리물이다. 다만,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 소설 <차일드44>의 전반부만 놓고 보면 줄거리와 인물 구도가 <베를린>과 상당히 유사하다.
소설 <차일드44>의 전반부는 첩보원인 주인공 레오가 수의사 아나톨리를 붙잡는 것으로 시작된다. 레오의 라이벌인 동료 바실리가 아나톨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레오의 아내 라이사가 스파이라는 정보를 얻어내면서 레오는 이틀 동안 아내 라이사를 조사하게 된다. 결국 레오가 사랑하는 라이사의 편을 들어 체포되면서 이들 부부는 지방으로 좌천된다. 후반부는 지방으로 좌천된 레오가 연쇄살인범을 쫓는 내용이다.
이런 전반부 내용은 <베를린>과 인물구도와 줄거리에서 유사점이 많다. 소설 속 레오와 영화 하정우, 부인 라이사와 전지현, 라이벌 동료 바실리와 류승범의 관계 및 이들이 갈등하는 줄거리 구조에서 유사점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차일드44.
세부적인 설정과 묘사에서도 유사점이 드러난다. <베를린>에서 하정우가 지하철역에서 아내를 미행하고 하정우를 믿지 못하는 당이 제3자를 보내 그 뒤를 미행하는 장면은 <차일드44>에도 거의 유사하게 등장한다. 하정우가 아내 전지현을 추궁하자 임신 사실을 고백하는 것과 아내를 의심하게 만든 것이 당의 충성도 테스트였다는 설정, 심문 과정에서 노란색 주사를 놓는 장면과 하정우가 집안을 샅샅이 뒤지며 매트리스를 칼로 찢는 장면, 동전을 반으로 쪼개면 그 안에 내용물이 들어있는 점 등도 소설과 비슷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믿는 사람을 조사하라”라는 스탈린의 명언과 “죄 없는 사람을 죄가 있을 때까지 캐낸다” 등의 대사도 소설에 그대로 담겨 있다.
이런 유사점에 대해서도 <베를린> 측은 구체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우선 노란색 주사와 아내를 의심하고 임신으로 의심이 풀리는 설정은 백 씨의 아이디어라고 해명하고 있다. 노란색 주사는 실제 북한에서 1960년대에 사용했던 것이며 당에 충성하기 위해 아내를 의심하는 일이 북한에선 비일비재하고 임신으로 부부관계에 믿음이 생기는 일도 흔하다는 것이다.
또한 지하철역과 시계탑 등은 첩보 영화의 추격 장면에서 활용되는 대표적인 공간이고, 동전은 영화와 소설의 쓰임새가 전혀 다르다는 입장이다. 집을 뒤지며 칼로 매트리스를 찢는 장면에 대해선 “북한에선 전기톱으로 집 안을 다 뒤집어 놓는데 이를 순화해 칼을 사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베를린> 표절 논란이 법적 공방전으로까지는 확전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웅진씽크빅 측은 “법적인 문제로 끌고 갈 생각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베를린> 제작사 역시 법적으로 문제를 삼는 등 일을 확대할 생각은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한 <베를린> 표절 논란은 차츰 잠잠해질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하지만 의외의 복병은 있다. 우선 소설 <차일드44>의 원작자인 톰 롭 스미스 측에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웅진씽크빅 측도 “한국 출판사로서 원 저작자인 톰 롭 스미스에게 고지할 의무는 있다”고 밝히고 있어 원작자가 표절 논란을 아는 것은 시간문제다. 더 큰 복병은 소설 <차일드44>가 할리우드 영화로 제작된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거장 리들리 스콧이 제작하고 <인셉션> <다크 나이트 라이즈> 등에 출연한 톰 하디가 주연을 맡아 오는 5월 크랭크인에 돌입하고, 내년에 개봉할 예정이다. 결국 <차일드44> 개봉에 즈음해 또 한 번 표절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영화 <베를린>과 소설 <차일드44>의 유사점은 소설의 전반부에 국한돼 있다. 할리우드 영화 <차일드44>가 연쇄살인범을 쫓는 소설 후반부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영화 <베를린>과는 크게 다른 영화가 될 수도 있다.
<차일드44>의 할리우드 영화화에 대해 <베를린> 측 관계자는 “만약 영화 <차일드44>가 개봉된 뒤 장면이 비슷하다면 어느 쪽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것 아닌가”라면서 “오히려 우리 쪽에서 ‘비슷한 상황인데’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