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층 자제들의 이야기를 다룬 일본 영화 <꽃보다 남자>의 한 장면.
이런 ‘특권 교육’을 받고 아버지처럼 성공가도를 달리는 2세들이 있는가 하면,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재산까지 탕진한 이들도 많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부잣집 도련님은 바보가 많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 일본 부유층들은 과연 어떤 자녀교육을 하고 있을까. 또 ‘최고의 환경’을 제공해도 결과적으로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간현대>를 중심으로 일본 부유층의 교육 실태를 살펴봤다.
일본에서도 초부유층의 자제들이 조기 유학을 가는 ‘르 로제(Institut Le Rosey)’는 스위스 최고의 명문 사립학교다. 흔히 ‘세계에서 학비가 제일 비싼 학교’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학비만 연간 300만~1000만 엔(약 4600만~1억 2000만 원) 정도가 든다. 학생은 8~18세까지로 약 300명. 대부분 왕족이나 세계 대부호의 자제들이고, 일본에서는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아들인 션 레논(37)이 ‘르 로제’를 졸업해 화제가 됐었다.
세계적인 건축가 단게 겐조(1913~2005)의 아들, 단게 노리타카(53) 역시 이 학교의 졸업생이다. 그는 어린 시절 유학생활에 대해 “이 세상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부자가 많이 있고, 위를 보면 끝이 없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 환경이 좋은 자극이 됐다”고 회고했다. 부전자전이라 했던가.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건축가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해외 톱클래스의 인재와 사귀면 식견이 깊어진다.’ 부유층이 돈을 아끼지 않고 아이들에게 해외 호화 유학을 고집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 경영 컨설턴트는 “아이의 유학을 가교로 삼아, 타국의 로열패밀리를 자신의 비즈니스 네트워크에 활용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지적한다.
자신만의 교육철학으로 자식들을 해외가 아닌 일본 대학에 진학시키고, 후계자 교육을 시킨 자산가도 있다. 총자산 100억 엔(약 1200억 원). 중천전화산업의 가와나카 히로시 회장(78)은 수험을 위한 공부는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 자녀들의 수험대책에는 돈을 쓰지 않았다. 대신 경제관념을 확실히 심어주는 것에 주력했다.
하토야마 구니오 의원의 걱정거리 장남 하토야마 다로.
실제 가와나카 회장은 아들이 대학생이 됐을 때 100만 엔을 계좌에 넣어주고 ‘마음껏 쓰라’며 현금카드를 건네준 적이 있다. 다 써버리고 말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아들은 돈을 거의 쓰지 않았다. 대신 큰 금액을 사용할 때는 사전에 상의를 해왔다. 중요한 것은 현금카드의 명세를 통해 자녀의 지출 습관을 보는 것이다. 만약 이상한 습관이 있다면, 한 달 동안 카드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페널티를 적용해 ‘제대로 돈을 쓰는 법’을 가르쳤다. 이런 부친의 교육을 받은 아들은 ‘재벌가 도련님 같지 않다’는 소리를 듣게 됐다.
그러나 부유층의 교육법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패사례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전 일본 총리,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65)의 동생이자 자민당 중의원인 하토야마 구니오(63)는 <주간현대>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자녀교육에 실패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100년이 넘는 정치 명문가로 일본의 케네디가(家)로 불리는 하토야마 가문도 뜻대로 안되는 게 바로 ‘자식’이었던 것이다.
하토야마 구니오 의원의 걱정거리는 바로 장남인 하토야마 다로(37)다. 장남은 2005년, 2007년, 2010년 선거에서 모두 낙선했고, 현재는 본인이 원해 버라이어티 방송에 가끔씩 출연하고 있다. 하토야마 구니오 의원은 아들을 자유방임주의로 키웠던 것이 큰 실수였다고 말한다. 그는 “나와 형은 자유방임 안에서도 해야 할 것은 확실히 하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아들은 자유방임을 만끽만 하고 진짜로 공부를 하지 않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장남은 자유인, 자신에 대해 엄격함이 없다. 정치인은 무엇보다 자신에 대해 엄격해야 한다. 하토야마 구니오 의원은 ‘아들이 어릴 때 좀 더 정신 단련을 시켰어야 했다’고 지금에 와서야 후회한다.
비단 하토야마 가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일본 경영자 2세들 열에 아홉은 경영자로서 실패한다. 사카키 파이낸셜 어드바이저는 “창업자는 실패와 성공을 반복해 힘들게 재산을 모으기 때문에 경계심이 많다. 그러나 2세는 그 점에서 부족하다. 온화하고, 사람을 쉽게 믿으며 성격이 좋다. 금전부탁을 거절 못해 주변 사람들에게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지적한다. 온화한 성품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사업을 하는 데에 있어서는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또 1세대들이 자식이 자신들처럼 고생하는 것이 싫어 필요 이상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리게 하는 것도 문제다. 결국 2세들은 정신 단련 부족으로 자립할 수 없게 되고 만다. 반대의 사례도 있다. 연약하게 성장하는 것을 원치 않아 자식에게 엄격하게 대했지만 결국 반항심에 아들은 삐뚤어져만 갔다.
자식들에게 선거구까지 넘기며 정치를 대물림하는 폐쇄적인 나라. 일본의 부유층들은 부(富)를 세습시키기 위해 자녀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엄격해도 안 되고 자유방임해서도 안 된다. 자식들이 ‘바보 도련님’이 되지 않기 위한 그들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