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가운데)과 허승표 전 후보(왼쪽), 김석한 전 후보가 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파크하얏트 호텔에서 만나 축구계 화합과 발전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연합뉴스
# 신선한 몽규 씨?
시작하는 마당이라 그럴까. 정 회장은 비교적 신선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대가(家)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나 ‘수식’ 탓에 ‘가문의 축구권력 세습’이라는 불편한 얘기도 나왔지만 일단 그의 행보는 의욕이 넘치고 적극적이다.
여느 재벌가 후계자들과는 달리, 채식과 운동을 즐기는 50대 초반 회장에게서 크게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대다수 축구협회 직원들의 설명이다. 앞서 한국프로축구연맹을 이끌 때부터 내부 직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첫 행보부터 굉장히 흥미로웠다. 부임하자마자 그 주 토요일(2월 2일)에 국장과 부장 등을 포함한 축구협회 차장급 이상 주요 간부들과 일대일 면담을 했다. 설 연휴를 즈음해선 대리급 이상 직원들과도 격의 없이 5~10 분 가량 대화를 나눴다.
실제 정 회장과의 면담에 참석했던 한 직원은 “매우 소탈해 보였다. 으레 생각하는 것처럼 윗분과의 자리가 딱히 거북스럽거나 불편하지도 않았다. 조 전 회장 시절에는 회장과 일대일 면담과 같은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만큼 소통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뿐만 아니라 회장 취임 후 처음 열린 최강희호의 공식 A매치(2월 6일 크로아티아 평가전) 참관을 위해 영국 런던으로 향하는 수고 역시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해당 국가 축구협회장이 자국 대표팀의 경기를 관전하는 건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빡빡한 스케줄이 대단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런던 히스로, 런던 히스로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항공기에서 2박을 하고 런던 현지에서는 딱 하루 머무는 일정. 그것도 임원 예우 차원에서 축구협회가 제공하는 비행기 비즈니스석이 아닌 이코노미 클래스 좌석을 이용했다. 수행원도 없이 홀로 이동했다. 석사 과정을 밟은 옥스퍼드에 들른 뒤에는 직접 운전대를 잡고 런던 근교에 위치한 대표팀 숙소를 찾아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그게 끝은 아니었다. 대표팀 경기가 끝난 뒤 선수단과 귀국길에 오르자마자 1월 28일 축구협회 대의원총회에서의 약속대로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 김석한 전 중등축구연맹 회장 등과 회동을 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지금까지 축구협회는 ‘젊은 회장’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정몽규 회장이 6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한국 대 크로아티아 평가전을 참관했다. 연합뉴스
축구협회 내부 소통 외에도 정 회장이 처리해야 할 업무들은 많다. 특히 축구계가 여야로 나뉘어 사사건건 마찰을 빚은 것이 한두 해가 아니라는 점에서 화합을 확실히 이뤄내야 한다. 이는 모든 축구인들의 염원이었다.
조 전 회장도 부임 직후 “찢어진 축구계를 하나로 엮겠다”라고 선언했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행적으로 고스란히 보여줬다. 조광래 전 국가대표팀 감독에게 잔여 연봉을 지급하지 않은 사례가 대표적. 그런 면에서 허 회장 등과의 만남 자체는 상징하는 바가 매우 컸다. 선거 기간 내내 자신과 견해를 달리했던 야당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면에서 대통합 의지를 얼마간 보여줬다고 평하는 축구인들이 많다.
이제 남은 것은 조 전 감독에게 지급되지 않은 잔여 연봉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일단 정 회장은 “왜 (잔여 임금을) 줘야 하는지, 혹은 왜 주지 않았는지 양측 의견을 충분히 검토하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이유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줄 수 없다”고 버티기만 했던 전 집행부의 태도와 큰 차이가 있다.
밸런타인데이(2월 14일)에는 박종환, 이회택, 김정남, 김호, 차범근, 허정무, 조광래, 최강희 감독 등 전현직 국가대표팀 사령탑들과 직접 만나 오찬을 가졌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축구 야권 성향이 짙은 인물들이다.
신임 이사진 선임과 조직 개편도 정 회장의 몫.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1월 28일로 조 전 회장과 함께해왔던 부회장단의 임기가 종료됐다. 동시에 여러 이야기들이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유력 전·현직 국가대표팀 감독들이 두루 포함된 후보군이 장차 맡게 될(것으로 예상되는) 직책과 함께 거론되고 있고, 이 중 일부는 벌써 ‘한 자리 꿰찼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부회장단뿐 아니라 사무총장, 전무 등 핵심 자리를 어떻게 메울지도 방향을 명확히 세워야 한다. 승진 등 축구협회 내부 인사는 작년 말과 올해 초에 걸쳐 진행됐지만 부서 이동은 현재 집행부의 몫으로 남아있다. 여느 조직처럼 축구협회 직원들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부분도 바로 이 점이다. 한 축구협회 직원은 “아마 정 회장과 전 직원들의 면담이 끝난 뒤 인사가 집행될 것 같다. 예전처럼 심각한 수준의 코드 인사는 이뤄지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인사가 만사’란 표현처럼 부임 초 정 회장은 적절한 인사에 정력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연장선에서 ‘임기가 6월까지로 정해진’ 국가대표팀 사령탑 문제도 조만간 함께 제기될 전망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