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스 프레슬리는 무대에서 활기찬 모습을 보이기 위해 각성제의 일종인 암페타민과 벤제드린을 상습적으로 복용했다.
그는 스타 중의 스타였고 가장 미국적인 엔터테이너였다. ‘로큰롤의 황제’라는 표현이 오히려 부족해 보일 정도였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위상은 미국 역사상 그 어떤 스타도 넘볼 수 없는 드높은 성벽이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엘비스. 어머니는 생일 선물로 자전거를 사줄 돈이 없어 기타를 선물했고, 그는 그렇게 음악을 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엔 공장 노동자를 거쳐 주급 35달러의 트럭 운전수로 일했고, 어머니 생일에 직접 녹음한 음반을 선물하려고 조그마한 음반 회사를 찾은 것이 가수 생활의 우연한 시작이었다.
4달러만 내면 즉석에서 음반을 만들어주던 그곳은 트럭을 운전하며 오가던 길가에 있던 ‘멤피스 레코딩 서비스’. 그의 목소리를 들은 직원은 사장인 샘 필립스에게 이야기했고, 필립스의 권유로 음반을 내게 된다. 흑인의 블루스와 백인의 힐리빌리 창법이 기묘하게 뒤섞인 그의 목소리는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했고, 이때 스스로를 ‘대령’(Colonel)불렀던 톰 파커가 접근해 매니저가 되면서 엘비스는 승승장구한다. 1956년에 발표한 ‘Heartbreak Hotel’은 본격적인 도약대. 이후 엘비스는 TV와 라스베이거스 클럽을 오가게 되었다.
비극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약물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 무대에서 활기찬 모습을 보이기 위해 각성제의 일종인 암페타민과 벤제드린을 상습적으로 복용했고, 그는 무대에서 요란하게 하체를 흔들어대며 ‘엘비스 더 펠비스(Pelvis, 골반)’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가수뿐만 아니라 배우로도 스타덤에 올랐던 엘비스는 첫 영화 <러브 미 텐더>(1956)에 이어 <킹 크레올>(1958)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멤피스에 자신만의 성인 대저택 ‘그레이스랜드’를 짓고 자신이 수집한 수많은 캐딜락과 함께 살아갔다. 1958년에 입대해 서독에서 군 생활을 하던 그는 1960년에 제대해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고, 1967년에 열 살 연하의 프리실라와 결혼했지만 여성 팬들의 사랑은 여전했다.
하지만 1960년대 말부터 그는 조금씩 하향세에 접어들고 있었고, 1970년대에 급격하게 불어난 체중은 110킬로그램을 넘겼다. 아내 프리실라와는 1973년에 이혼했고, 그의 생활은 점점 제멋대로로 변해갔으며 불같은 성격은 유명했다. 이른바 ‘멤피스 마피아’로 불리던 측근들의 증언에 의하면, 1970년대 중반의 엘비스는 죽음에 매혹되어 있었고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산처럼 쌓아놓고 도너츠를 흡입하던 그는 과체중과 약물 중독으로 인해 여러 질병에 시달렸는데, 그가 복용하는 약은 보통 체격의 사람이라면 치사량에 이르는 엄청난 양이었다. 약에 의존하는 습관을 고치겠다고 종종 다짐했지만, 항상 실패했다.
1977년 6월 중서부 지역 투어를 마치고 그레이스랜드로 돌아온 엘비스의 곁엔 예전의 애인 린다 톰슨(미스 테네시)이 떠나고 스물세 살의 진저 올든이라는 여성이 있었다. 2개월여의 휴식을 마친 엘비스는 포틀랜드 공연을 앞둔 상태. 당시 그는 밤과 낮을 바뀐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8월 15일도 마찬가지였다. 오후 4시에 잠에서 깬 그는 아홉 살 된 딸 리사 마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원래는 동네 극장을 빌려 <맥아더>를 볼 예정이었으나 취소하고 밤 10시 30분에 치과 주치의에게 가서 치료를 받았다. 다음 날인 8월 16일 새벽 2시에 집에 돌아온 엘비스는 지인들과 함께 그레이스랜드에 있는 실내 경기장에서 라켓볼을 즐겼다. 새벽 6시에 침실로 간 그는 잠이 들기 위해 평소처럼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했고 오전 9시에 심령 에너지(점성술 서적이라는 설도 있음)에 관한 책을 들고 욕실로 갔다. 그리고 오후 2시 잠에서 깬 올든은 욕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엘비스를 발견했다.
올든이 깨웠을 때 엘비스는 경련을 일으켰고 애써 일어나 휘청거리며 몇 걸음을 걷다가 쓰러졌다. 엘비스의 아버지인 버논 프레슬리와 진저 올든과 보디가드는 엘비스를 둘러싸고 온갖 응급조치를 했지만 허사였다. 앰뷸런스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옮겨진 지 한 시간 만인 오후 3시 30분에 황제는 사망했다.
사망 원인에 대한 첫 발표는 심장마비였고, 검시관은 그 원인이 비만과 약물 과용이라고 말했다. 그의 혈액에선 적어도 10종류의 약물이 발견되었는데 거기엔 진정제인 퀘일루드와 진통제인 코데인과 모르핀 등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인한 부정맥으로 고생하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확한 이유를 조사하기 위해 검시관들이 엘비스의 방과 욕실을 찾았을 땐, 이미 그곳은 깨끗하게 청소되고 정돈돼 있었다. 그가 죽었던 ‘현장’은 몇몇 사람들의 증언에 의해 전해졌을 뿐, 객관적인 기록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