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들어 도쿄 주식시장 닛케이지수가 1만 2000포인트를 넘어 최고치를 경신했다. 4년 5개월 만의 일이다. 최근 일본은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매스컴에서는 연일 무제한 돈 풀기에 나선 ‘아베노믹스’에 대한 보도가 잇따르고 있고, 여기저기서 장기 불황의 늪에 허덕이던 일본 경제가 아베 정권을 계기로 도약할 것이라며 낙관론을 펼친다.
총무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1월 가계지출은 지난해에 비해 2.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시계나 보석과 같은 사치품 소비는 6.8%나 증가했다. 이에 대해 일본 백화점협회는 소비심리가 개선돼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고 있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올해 들어 명품 가방을 사기 위해 백화점을 찾는 남성 고객이 늘어났다. 특별한 기념일도 아닌데 여자 친구나 아내의 선물용으로 30만~50만 엔(약 340만~570만 원)의 샤넬 가방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매장 매니저는 “고객들 대부분이 활황세인 주식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라고 귀띔한다.
현재 일본에서 경기 회복의 기대 특수를 누리고 있는 상품을 찾아보면, 공통되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어른들의 취미 용품’이다. 그 대표 격인 카메라 시장은 예전 명성을 되찾기 위한 잰걸음이 시작됐다. 긴자에서 카메라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최근 몇 년간 할인을 해도 팔리지 않았던 10만 엔대의 라이카 카메라가 가격 인하 없이도 팔리게 됐다”고 웃음을 짓는다. 또 필름 라이카 M6는 고가에 마니아 성향이 강한 제품이지만 내점하자마자 지명해서 사가는 고객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고상한 수집취미 물품, 만년필의 인기도 부활했다. 40~50대 남성을 중심으로 5만~7만 엔(약 57~79만 원)대의 몽블랑이나 펠리칸 등 고급 만년필이 다시 팔리기 시작한 것이다. 개인뿐만이 아니라 몇 백 개씩 주문하는 기업도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문구 매장 담당자는 “이런 일은 오랫동안 없던 것으로 경기 회복 조짐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자동차 판매에서도 변화가 눈에 띈다. 경기가 나쁠 때는 가족이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도요타의 ‘프리우스’ 같은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인기를 끌었지만, 작년 12월 이후 신기술 스카이액티브를 탑재한 마쓰다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CX-5’가 인기다. 개성이 강한 차량을 찾는 사람도 증가해 빨간색 자동차의 판매도 늘었다. 전문가들은 경기 회복시기에는 남들과 다른 차에 타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처럼 고급품들은 차례차례 소비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서민 생활과 직결되는 슈퍼마켓 업계는 “아직도 어렵다”는 목소리가 한결같이 흘러나온다. 아이를 키우는 육아세대의 급여가 오르지 않아 여전히 가계가 어렵고, 이에 지갑을 선뜻 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해 유독 히트 상품이 많았던 식품·음료 업계의 소비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자체 브랜드(PB) 제품에서 그 변화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었다. PB 제품은 저가 상품의 대명사이지만, 올해 들어 각 유통회사들은 가격을 올리더라도 품질 만족도를 높이는 ‘프리미엄’ PB 제품 만들기에 열심이다. 절약에 지친 소비자들의 심리를 반영한 것이다. 일본의 서민들은 오랜 경기 침체를 절전과 절약으로 버텨왔으나 거기에도 한계가 있는 듯하다. 물론 과잉 소비를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작은 ‘사치’를 누리고 싶어 하는 것이다. ‘돈을 조금 더 지불해도 상품에서 만족도를 얻고 싶다.’ 이것이 지금 일본 서민들의 심리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최저가 전쟁’을 벌였던 패스트푸드 업계에서도 새로운 히트 상품이 나왔다. 지난 2월 7일부터 일본 KFC는 기존 메뉴보다 비싼 ‘켄터키 치킨라이스’를 한정기간 판매해, 예상을 뛰어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가격은 450엔(약 5200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지만, 좋은 재료의 프리미엄급 메뉴가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아베 정권의 경기부양책이 일단 시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일본을 바라보는 세계 각국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환율 조작 위험이 있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아베 총리의 엔저 정책을 비판했다. 특히 영국의 경제신문 <파이낸셜타임스>는 공격적인 일본의 통화 팽창정책은 ‘반짝 효과’만 있을 뿐, 장기적으로 보면 문제를 악화시킬 위험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일본 내 언론들조차 아베노믹스를 바라보는 시선이 엇갈린다는 것이다. 먼저 <산케이신문>은 아베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70%에 달한 배경에 대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최대 이유는 경제다. 아베노믹스 효과로 주가가 단번에 상승하고, 일본 경제를 괴롭혔던 엔고 문제도 시정됐으니 고평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아베 총리를 치켜세웠다.
반면 <아사히신문>은 ‘대담한 정책의 무모함’이란 제목의 논설을 실어 아베노믹스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논설에 의하면 엔저 현상은 필연적으로 금리 상승을 유발하고, 부채 비율이 높은 일본 정부는 역풍을 맞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부채는 GDP(국내총생산)의 두 배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아베노믹스를 평가하기엔 아직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적어도 올해까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본 경제에 ‘봄날’은 찾아오는 것인가. 아베노믹스의 향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