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 ||
이 전 회장 아들 이재용 전무의 부당이익 취득 논란을 불러온 에버랜드 전환사채와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 발행 의혹에 대해서도 처벌을 면했다. 삼성이 선방했다는 평가 속에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면죄부’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 지난 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이후 12년간 지속된 삼성 논란이 이제 막바지를 향하고 있는 셈이다.
7월 16일 1심 선고공판을 앞두고 법조계와 재계 일각에선 이건희 전 회장의 실형 선고 가능성이 조심스레 거론됐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 민병훈 부장판사가 법조계에서 깐깐하기로 유명했기 때문.
민 부장판사는 알선수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에 대해 지난해 12월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과 추징금 2억 1070만 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던 인물. 지난 4월엔 알선수재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전직 부장판사에게 1년 6개월 실형 및 추징금 800만 원을 선고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민 부장판사는 일단 유죄가 성립되면 집행유예보다는 단기라도 실형을 선고하는 스타일로 각인돼 왔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형평성 논란도 이 전 회장 실형 선고 가능성을 부추겼다. 현대차 비자금 사건으로 정 회장이 두 달간 구치소 생활을 하고 1심에서 실형 선고까지 받은 반면 이 전 회장은 같은 시기 에버랜드 사건 재판과 관련, 소환조사 한번 받지 않았다. 정 회장이 1심에서 징역 6년을 구형받은 뒤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을 받게 된 점이나 삼성특검팀이 이 전 회장에게 정 회장보다 무거운 징역 7년을 구형한 점으로 미뤄 형평성 논란을 의식한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집행유예. 재판부가 삼성 사건 심리과정에서 특검팀이 기소하지도 않은 주식 차명거래과정에서의 내부자 거래 여부에 대한 직접조사까지 벌였던 것에 비해 다소 김빠진 판결이라는 평도 나온다.
일각에선 재판부가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국내 유일한 IOC 위원인 이 전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데 부담을 가졌다고도 본다. 사마란치 전 IOC 위원장과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같은 해외 저명인사들이 이 전 회장 선처 탄원서를 재판부에 보내온 것도 한몫했을 것이란 평이다.
집행유예 판결과 더불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 혐의에 대한 무죄 판결은 이 전 회장 측이 거둔 최대 수확으로 꼽힌다. 이 전 회장 아들 이재용 전무의 경영권 승계 정통성의 발목을 잡던 족쇄를 재판부가 풀어준 셈이다. 이에 앞서 특검 수사 기간 중 특검팀은 이 전무의 경영 부실을 다른 계열사들에 떠넘겼다는 이른바 ‘e삼성 사건’에 대해서도 무혐의 결론을 낸 바 있다. 이미 삼성그룹 지배에 필요한 에버랜드 지분을 확보해놓은 이 전무로선 해외근무를 통한 백의종군 과정에서 경영성과를 축적해 삼성그룹 중앙무대로 복귀할 명분 확보에만 주력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러나 1심이 집행유예로 끝났다고 해서 이 전 회장이 무작정 안심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조준웅 특검이 항소 의사를 밝힌 가운데 2·3심에서 에버랜드 전환사채와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의혹에 대한 논란이 예상되는 까닭에서다.
지난 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과정에서 주주들이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하고 그 실권주를 이재용 전무 등이 인수한 것이 업무상 배임에 해당하느냐는 것이 논란의 관건이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주주들이 자발적으로 인수를 포기한 것’이라며 무죄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같은 혐의로 지난 2003년 12월 기소된 두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들은 이미 1·2심에서 배임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동일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엇갈려 2·3심에서의 논란이 예고된다.
지난 1999년에 있었던 삼성 SDS BW 헐값 발행 의혹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주식 적정가가 얼마인지를 입증할 수 없고 이 전무 등이 취한 이익이 50억 원 이상이라 볼 수 없어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무죄로 판결했다. 이는 지난 2004년 서울행정법원이 삼성 SDS 주식가치를 5만 5000원 선으로 판단한 것과 전면 배치된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에 따르면 횡령(배임) 액수가 50억 원을 넘으면 공소시효가 10년인 반면, 5억 원 이상~50억 원 미만인 경우는 공소시효가 7년이다. 행정법원 판단대로 보면 이 전무 등의 이득액이 50억 원을 넘게 돼 공소시효가 남게 되는 점이 2·3심을 달굴 수도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 전 회장 1심이 집행유예로 귀결되면서 ‘이번 재판은 사실상 끝났다’는 평도 대두된다. 삼성 특검법이 정해놓은 재판 기간은 1심 3개월과 2·3심 각각 2개월씩이라 1심 결과가 뒤집힐 만한 시간적 여유가 부족할 것이란 시각이다. 이 때문에 법원이 삼성의 변호 논리를 철저하게 따라줬다는 비판론도 제기된다.
그렇다면 이건희 전 회장은 추후 재판상황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이 전 회장은 지난 1일 공판장에서 ‘삼성전자 같은 기업 만들려면 얼마나 힘든지…’라며 눈물을 보였다. 지난 7월 10일 공판에서 징역 7년을 구형받은 이 전 회장 속이 매우 착잡할 것으로 비치기도 했다.
그런데 외국 대사관저들이 즐비한 인근 한남동 일대에 ‘구형 공판 다음날 이 전 회장 자택에서 각국 대사와 대사관 직원, 외국인 CEO 등 여러 외국인들을 초청해 가든파티를 가졌다’는 소문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일부에서는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소문 자체가 삼성 측의 여유를 말해주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지만 삼성 관계자는 “가든파티라니 천만의 말씀이다. 대사들을 초청할 이유가 뭐가 있나. 지금 별별 소문이 다 떠돌아다니지만 근처도 못 가본 사람들 얘기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항소심이 남아있는 이건희 전 회장이 회사 내외의 모든 우환을 털어내고 언제쯤 ‘진정한 파티’를 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