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용 감독을 비롯한 해태의 전설급 코치들이 만년 하위팀 한화를 조련하고 있다. 올 시즌 한화는 과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일요신문>이 김 감독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는 김 수석과 이 코치를 만났다.
# ‘카리스마’에서 ‘크림’으로…
“대전구장 보라고. 나 현역 때도 여기서 뛰었거든. 스프링캠프 때 보니까 10년 전이랑 훈련법도 크게 달라진 게 없었어. 어차피 야구는 언제 어디서 하든 다 비슷한 거 아니겠어?”
지난해 10월 김응용 한화 신임 감독은 수석코치로 김성한 전 KIA 감독을 선임했다. 야구계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김 수석 선임 소식에 고개를 갸웃했다.
먼저 김 감독과 김 수석의 관계였다. 둘은 사제지간이긴 하나, 과거 대권을 두고 작은 오해가 있었다. 2000시즌을 끝으로 김 감독이 해태를 떠나 삼성으로 갈 때였다. 김 수석은 내심 김 감독이 자신을 차기 감독 후보로 추천할 줄 알았다. 하지만, 김 감독은 말이 없었다. 마침 김 수석은 구단으로부터 차기 감독 내정 사실을 귀띔 받았기에 김 감독에게 아쉬움은 없었다.
김 감독의 삼성행이 확정되고, 김 수석이 구단으로부터 감독 승격 언질을 받았을 무렵 김 수석은 코치실에서 자신과 운명을 함께할 코치들을 모아놓고 팀 개편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갑자기 김 감독이 코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당황한 코치들은 쿠데타를 모의하다 걸린 반군처럼 안절부절못했다. 김 감독은 김 수석을 힐끗 보고서 “(김)종모랑 (이)상윤이는 나 줘라”하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김 수석은 “당시 감독님께선 내가 뭘 하고 있는지 훤히 꿰뚫고 계셨다”며 “김종모, 이상윤 두 코치가 삼성으로 간다기에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이유는 김 수석의 오랜 공백 기간이었다. 김 수석은 2004년 KIA 감독에서 물러난 뒤 8년 동안 야인으로 살았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는 대전과 아무런 연고가 없다는 점이다. 김 수석은 1982년 해태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이래 2004년까지 22년 동안 오직 타이거즈에서만 뛰었다. 거기다 한 번도 광주를 벗어나 살지 않았다. 이렇듯 타이거즈 색깔이 강한 그였기에 대전 연고의 한화 입성은 어색하기만 했다.
하지만, 세 가지 이유에도 김 수석은 빠르게 한화에 적응했다. 이제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한화 선수단을 꽉 잡았다는 후문이다.
김 수석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안에서 직접 보니 한화 전력이 더 약했다”고 털어놨다. “(류)현진이 떠나고 나니 투수가 없었다. 지금도 외국인 투수 2명 제외하곤 확실한 3, 4, 5선발이 없다. 불펜은 말할 것도 없고. 여기다 포수와 내야수도 다른 팀보다 약하다.”
그러나 김 수석의 표정에서 구단에 대한 원망은 찾을 수 없었다. “팀이 약하면 강하게 만드는 게 우리 코칭스태프의 임무다. 그러라고 한화에서 우릴 부른 게 아니겠나.”
김 수석은 대화 말미에 “야구는 언제 어디서든 똑같지만, 선수들은 9년 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졌다”고 운을 떼고서 “예전처럼 ‘나를 따르라’는 식의 강압적 리더십은 통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코치는 빙그레 웃으며 “자신을 크림처럼 부드러운 지도자”라고 소개했다.
# ‘초보’ 티가 안 난다!
한화 관계자는 “만약 이 코치가 친정 KIA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면 ‘타이거즈색’을 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박정태 전 롯데 코치를 봐라. 능력이 출중해도 워낙 ‘자이언츠색’이 강하니 다른 팀에서 영입하길 주저하지 않나. 어차피 이 코치에게 KIA는 언젠가 돌아갈 팀이라면 지도자 생활을 한화에서 부터 시작한 건 좋은 결정이라고 본다.”
이 코치의 실력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한화는 팀 도루 107개로 리그에서 SK 다음으로 기동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이 코치 부임 이후 한화의 기동력이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전언이다. 김응용 감독은 “이 코치의 지도 때문인지 선수들이 도루에 자신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며 “도루도 도루지만, 한 베이스 더 가는 적극적인 주루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칭찬했다.
이 코치는 김 감독의 칭찬에 과찬이라고 양손을 흔들면서도 “내 기대치가 아닌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춰 끊임없이 설득하고, 지도할 생각”이라며 “그러다 보면 한화 주루도 한결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코치가 하는 일은 하나 더 있다. 비밀업무다. “요즘 선수들은 감독님 스타일을 모른다. 감독님의 작은 손짓에도 의미가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그저 무섭게만 생각한다. 그래서 틈틈이 선수들에게 감독님의 제스처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려주고, 감독님이 무엇을 바라는지 일깨워준다.”
한화 외야수 정현석은 “이 코치님의 지도를 받으며 어째서 ‘바람의 아들’이란 소릴 들었는지 깨달았다”며 “주루 노하우도 풍부하지만, 한 번 지도하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독사 같은 열정이 있다”고 말했다.
한화 프런트는 “최근 정현석이 이 코치로부터 고가의 미국산 외야 글러브를 선물받았다”며 “이 코치의 ‘쥐었다 놨다’하는 리더십만 보자면 전혀 초보 지도자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