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시즌 K리그 클래식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포항 스틸러스 황선홍 감독의 폭풍 질주가 화제다. 외국인 선수 한 명 없이 토종 선수들로만 구성된 스쿼드로 시즌 개막 후 3승 1무, 9득점 3실점, 1위에 올랐다. 그로 인해 황 감독의 별명이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빗댄 ‘황선대원군’이다. 인터넷에선 흥선대원군을 패러디한 황 감독의 사진이 인기 폭발일 정도다. 그러나 정작 황 감독은 이런 관심이 부담스럽다고 한다.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지 ‘못한’ 것이지, ‘안한’ 것이 아니라는 것. 구단의 재정난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30일 전남과의 포스코 더비전을 앞둔 황 감독을 포항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황 감독과의 인터뷰는 2회로 나눠 게재한다. [편집자주]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황선홍 감독을 만난 날이 공교롭게도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한국과 카타르의 경기가 열린 다음 날인 탓에 인터뷰의 시작이 대표팀과 관련된 질문으로 시작됐다.
황 감독은 카타르전을 TV로 시청하면서 선수가 아닌 감독의 입장에서 그 경기를 지켜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강희 감독의 선수 구성과 전술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카타르전을 보면서 왜 최 감독님이 상대가 뻔히 그렇게 나올 줄(밀집수비) 알면서도 답답한 경기를 펼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감독은 인내심을 갖고 경기를 풀어가야 한다. 경기의 흐름상 골 하나에 결과가 뒤바뀔 수 있는 상황에서 나라도 최 감독님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황 감독은 손흥민의 교체 시기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이근호의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 손흥민의 교체 타이밍을 잡기가 꽤 어려웠을 것 같다. 근호가 잘 하고 있는데 쉽게 뺄 수 있었겠나. 그리고 손흥민을 주전으로 내보내지 않은 데 대해 말들이 많은데 난 최 감독님의 생각을 이렇게 이해했다. 최 감독님은 상대가 촘촘한 밀집 수비로 나올 때 그 블록 안에서 얼마나 섬세하게 플레이를 할 수 있느냐의 여부로 선수 선발을 결정하신 듯 했다. 최 감독님은 손흥민이 그런 능력보다는 조커로 투입돼 경기의 흐름을 뒤바꿔 놓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선수의 능력과 역할을 가장 잘 판단하는 사람은 전문가도, 기자도 아닌 감독이다. 그런 점에서 난 감독 입장에서 그 경기를 지켜봤고, 최 감독님의 경기 운영에 대해 공감했다.”
황 감독은 이동국, 김신욱의 ‘트윈타워’에 대해서도 이런 설명을 곁들였다.
“상대가 마음 먹고 잠그려 하면 높이가 필요하다. 1년 내내 조직력을 갖추며 플레이하는 팀이라면 그걸 깨부수기 위해 잔패스, 숏패스 등으로 밀집 수비를 깨부수려 하겠지만 대표팀은 A매치 앞두고 길게는 일주일, 짧게는 하루 이틀 전에 모여서 손발을 맞춰본다. 그런 상황에서 조직력을 극대화하기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내가 보기엔 분명 높이는 필요했다. 단, 그 의존도가 조금 심했을 뿐이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황 감독은 대표팀에 대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조금 더 여유를 갖고 플레이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선수들 마음이 급해졌고, 결국엔 그게 ‘롱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김신욱의 세밀함과 결정력 부족에 대해선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것 같은데 스피드가 좀 더 있었더라면 찬스를 많이 만들었을 것”이라고 기대를 놓지 않았다.
“대표팀은 각 리그에서 뛰다가 모인 팀이라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경기에 몰입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번 대표팀한테선 응집력, 투쟁력, 몰입도를 볼 수 있었다. 95분 만에 한 골을 더 넣어서 승리했다. 결승골이 터지기 까지 아쉬운 장면들도 있었지만, 준비를 소홀히 했더라면 이길 수 없는 골이다. 그만큼 선수들이 몰입했고,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한다. 선수들이 이 부분을 잊지 않고 준비를 철저히 GORKS다면 6월에 있을 3연전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황 감독은 경기 종료 직전 터진 손흥민의 골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이동국의 역할이 그 골에 묻힌 부분에 대해선 아쉬움을 나타냈다.
“축구의 짜릿함은 골이다. 그러나 그 골이 터지기 위해 다른 선수들이 어떤 움직임을 해보였는지를 간과해선 안 된다. 카타르전에서 이동국의 움직임을 놓고 외신에서는 극찬을 한 반면, 국내 언론에서는 대부분 손흥민한테 집중했다. 이동국은 골을 넣지 못했지만, 왜 그 선수가 대표팀에 꼭 필요한 선수인지를 보여줬다. 더 이상 이동국의 대표팀 기용론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건 소모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황 감독은 선배 최강희 감독 흔들기에 대해서도 우려 섞인 시선을 견지했다.
“클럽팀 감독도 쉬운 자리가 아니지만 대표팀 감독은 더 힘든 자리인 것 같다. 한 경기의 승패와 내용에 따라 천양지차의 반응들이 나오니 제대로 호흡하고 살기 어려워 보이더라. 건전한 비판과 충고는 바람직하겠지만, 무의미한 감독 흔들기는 대표팀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여론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주관과 소신이 뚜렸한 지도자라고 해도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황선홍 감독이 ‘황선대원군’으로 등극(?)한 소감과 포항 감독으로서 겪은 희로애락들은 2편에서 계속됩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