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대표적인 흔적은 각종 대형 비리사건 때마다 등장하는 여자 연예인들이다. 대형 비리의 주범으로 혐의를 받고 있는 이들의 지출 내역서에 여자 연예인에게 현금이나 자동차, 집, 명품백 등을 사준 흔적이 수사 기관에 포착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저축은행 비리사건에 이어 최근엔 2억여 원의 뇌물을 받은 공무원 사건에서도 여자 연예인이 등장했다.
최근 전직 공무원 김 아무개 씨(49) 사건을 수사하는 광주지검 특수부에 20대 주연급 여배우 A 씨가 소환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씨는 나주 산업단지 조성사업 추진 과정에서 관련 업자로부터 뇌물 2억 3000여만 원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구속 기소됐다. 전남 나주의 49세 공무원과 20대 주연급 여배우의 연결고리는 600만 원짜리 명품백이었다. 물론 이들이 개인적인 관계가 있어서 이런 선물을 해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해당 명품백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김 씨가 사용한 결제수단이 뇌물을 제공한 업체 이 아무개 대표 명의의 체크카드였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이로 인해 A 씨는 광주지검에 직접 출두해야 했다.
해당 사실이 보도된 뒤 각종 추측과 루머가 난무했다. 우선 뇌물 제공 업체에서 여배우 A 씨와 전직 공무원 김 씨의 만남을 주선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당연히 성상납 내지는 술자리 접대 등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루머도 난무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A 씨에게 김 씨가 명품백을 선물했을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우선 A 씨의 소속사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A 씨의 소속사 관계자는 “기사에 거론된 여배우와 나이만 같을 뿐인데 왜 우리라고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다”라며 “A 씨에게도 직접 물어봤는데 자기가 명품백 하나 받자고 나주까지 갔겠냐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대답하더라”고 설명했다. 현재 A 씨의 인기를 감안하면 ‘명품백 하나 받자고 나주까지 갔겠냐’는 A 씨 측의 해명도 일리가 있다.
그런데 당시 명품백이 오간 상황과 정황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우선 김 씨가 A 씨에게 명품백을 사준 것은 지난해 7월의 일. 전남 나주가 아닌 서울 강남 소재의 한 백화점 명품관에서 589만 원짜리 샤넬 명품백을 사줬다. 따라서 A 씨가 나주까지 내려가서 김 씨로부터 명품백을 받은 것은 아닌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또한 지난해 7월 당시는 A 씨가 지금과 같은 인기와 유명세를 얻기 전이었다.
검찰 조사에서 A 씨는 가방을 받은 사실은 인정했다. 그렇지만 검찰은 김 씨가 A 씨에게 개인적으로 선물을 한 것으로 판단해 A 씨를 별도로 처벌하지 않았다. 특히 검찰조사 과정에서 김 씨와 A 씨의 진술이 일치하는 만큼 더 이상의 수사는 진행하지 않았다.
광주지검 관계자에 따르면 두 사람을 소개해준 사람은 뇌물을 제공한 이 대표였다고 한다. 평소 김 씨가 여자 연예인을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얘길 자주 해서 이 대표가 인맥을 총동원해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성 접대나 술자리 접대 등이 이뤄진 것은 아니고 식사 자리만 두세 차례 있었다는 게 이들의 일관된 진술이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서울에서 이뤄졌고 샤넬 백을 사준 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양 측의 진술이 일관됨에 따라 검찰 역시 성 접대나 술자리 접대 등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김 씨와 A 씨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오고 있다. <광주일보>는 김 씨가 500억 사업에 2억 원의 뇌물을 받았지만 2000억대 사업에선 3100만 원 상당의 뇌물만을 받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 신문은 사업 성사 과정에서 여배우 동원 ‘접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여배우를 동원한 접대가 두세 차례의 식사자리뿐이었을지에 대한 강한 의문도 제기했다.
이처럼 대형 비리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여자 연예인들이 연루된 정황이 포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 이후에 불거진 대형 비리사건에서 여자 연예인들이 연루된 정황이 수사기관에 포착된 것만 10여 차례나 된다. DJ 정권 당시 불거진 ‘진승현 게이트’ 사건에서는 한 여성 톱스타의 연루설이 제기된 바 있다. 가장 큰 사건은 지난 2003년 불거진 굿모닝시티 분양 비리 사건이었다. 당시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윤창열 전 대표의 과도한 씀씀이를 포착했다. 특히 윤 전 대표가 여자 연예인 B 씨에게 현금 1억 원을 전달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 2011년에는 공연기획사 대표 옥 아무개 씨가 전직 국무총리 아들인 서울대 교수 C 씨를 사기 및 협박 혐의로 고소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옥 씨는 C 씨가 강남 룸살롱 등에서 수억 원 상당의 접대를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여배우 P 씨까지 동원된 것으로 밝혀져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2011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저축은행 비리 사건에서도 여자 연예인이 등장했다. 당시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은 에이스저축은행에서 7200억 원을 불법 대출받은 고양 종합터미널의 시행사 대표 이 아무개 씨가 한 여자 연예인에게 수억 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했음을 밝혀냈다. 합동수사단 조사 결과 이 씨는 해당 여자 연예인에게 5000만 원 상당의 BMW 차량 1대와 2억 5000만 원 상당의 아파트 전세금 등을 건넨 것으로 드러나 눈길을 끌었다.
이 사건에서 관심을 모은 인물은 여자 연예인 B 씨다. 굿모닝시티 분양 비리 사건 당시 윤 전 대표에게 1억 원을 받은 것으로 눈길을 끌었던 B 씨는 그 이후에도 몇 차례 대형 비리사건이나 사기사건 당사자에게 현금을 비롯한 금품을 받은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연예계 주변에선 “연예인 B 씨가 구린 돈 냄새를 맡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