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다저스 류현진이 지난 2일 메이저리그 첫 선발 등판 경기에서 역투를 펼치고 있다. AP/연합뉴스
일단 직구의 위력이 아직까지 올라오지 못한 모습이었다. 이날 류현진의 직구 최고구속은 148km로 한국 무대에서 기록한 153km에는 많이 미치지 못했다. 구속뿐만 아니라 로케이션에서도 문제가 드러났다. 시범경기 마지막 등판이었던 LA 에인절스전에 비하면 직구 제구가 높게 형성됐으며 큰 것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좀처럼 몸쪽 승부를 들어가지 못했다.
이날 류현진은 6.1이닝 동안 10개의 피안타를 허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80개의 투구수를 기록했다. 병살타를 세 개나 유도하며 투구수 관리에 성공한 점도 있지만, 류현진의 공이 생각만큼 위력적이지 않다보니 샌프란시스코 타자들이 적극적으로 승부에 임한 것도 주요인이었다. 이날 류현진은 26명의 타자와 마주했는데, 3구 이내 승부가 무려 17타자에 달했으며 초구 공략도 6타자나 됐다. 그리고 10개의 안타 가운데 8개를 3구 이내 승부에서 허용한 것이었다.
류현진은 이날 80개의 투구수 가운데 50개를 직구로 구사했다. 결국 아직까지 위력이 덜 올라온 직구 위주의 승부를 펼친 점과 그마저도 제구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은 점이 많은 피안타 허용의 주원인이었으며, 샌프란시스코 타자들의 적극적인 노림수도 결과적으로는 적중한 셈이었다. 하지만 시즌 초반 직구 구속은 류현진만이 아닌 많은 선수들이 겪는 문제로, 시즌이 지나면서 나아질 가능성이 크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이날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이 다소 엄격했다는 사실이다. 1회초 1사 1,2루 상황에서 버스터 포지와 마주한 류현진은, 바깥쪽 낮은 쪽으로 직구 2개를 꽂아 넣었다. 공이 들어간 위치는 스트라이크가 선언돼도 무방할 정도의 좋은 공이었지만, 주심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고, 류현진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결국 포지를 3루수 앞 병살타로 유도했지만,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르는 류현진에게 심판의 타이트한 스트라이크존은 극도의 긴장감 속에 경기를 펼치는 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을 것이다.
메이저리그 심판들이 신인 선수들에게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투수들이 심판 고유의 스트라이크 기준에 맞춰야 하듯이, 심판들도 투수의 특성에 따라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하기 마련이다. 이에 아직까지 전혀 경험이 없는 신인선수들에게 보다 엄격한 존 설정이 이뤄질 수밖에 없으며, 이 같은 상황은 일종의 신고식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류현진이 시범경기 도중 포수 A.J. 엘리스와 의견을 나누고 있다. 홍순국 사진전문기자
이날 류현진의 피칭에서 가장 도드라졌던 점은 그의 투구패턴이 단조롭게 느껴졌다는 부분이다. 스프링캠프에서 꽁꽁 싸맸던 슬라이더는 이날 단 한 개도 던지지 않았으며, 직구 50구, 체인지업 25구, 커브 5구를 구사했다.
류현진이 이날 슬라이더를 던지지 않은 것은 샌프란시스코 타순에 우 타자가 무려 8명이나 포진됐기 때문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브루스 보치 감독은 주전 1루수 브랜든 벨트와 좌익수 그레고르 블랑코 대신, 우타자 호아퀸 아리아스와 스위치히터 안드레스 토레스를 기용했다. 류현진은 보통 우타자 상대 체인지업, 좌타자 상대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삼는 투수다. 하지만 우타자 중심의 라인업을 상대하게 되면서 슬라이더의 구사 빈도가 줄어들었고, 매팅리 감독도 언급했듯이 커브의 위력과 제구가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직구-체인지업의 일관된 투구 패턴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샌프란시스코 타자들은 경기가 거듭될수록 체인지업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고, 류현진은 심지어 상대 투수 범가너에게도 볼 카운트 0-2에서 던진 체인지업이 안타로 연결되기도 했다. 이날 류현진의 피안타 10개는 직구 4개, 커브 2개, 체인지업 4개였는데, 구사 비율에 비하면 체인지업의 피안타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상대적으로 가장 떨어지는 구질로 평가받는 슬라이더나, 미국 입성 후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커브의 위력 역시 아직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압도할 수준이 못 된다는 것이 냉정한 평가일지도 모른다. 지난해 다르빗슈는 첫 21경기에서 평균자책점 4.57을 기록한 이후 마지막 8경기에서 2.3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반전을 선보였다. 이는 그렉 매덕스에게 미세한 투구폼 교정을 받으며 급격히 제구가 안정을 되찾은 것 이외에도, 이전에는 던지지 않던 스플리터를 추가함과 동시에 커터의 구사율을 급격히 높이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삼는 다르빗슈는 슬라이더의 구사율을 너무 높게 가져가자 상대 타자들의 노림수에 걸려드는 일이 잦아졌고, 이에 투구패턴의 변화를 통해 완전히 다른 투수로 거듭날 수 있었다. 아직까지 구종 추가에 관한 생각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류현진이지만, 시즌이 진행될수록 보다 유연한 사고를 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타석에서의 태도 또한 문제로 지적됐다. 6회 말 세 번째 타석에서 류현진은 3루 땅볼을 때린 뒤 조깅하듯 천천히 1루로 뛰어나갔다. 관중석에서는 순간 야유가 흘러나왔고, 신인선수에게 특히나 보수적인 현지 언론은 곧장 류현진의 이 같은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본인 특유의 여유로움이었을지 모르지만, 류현진은 현재 본인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다행히도 류현진은 자신의 플레이에 문제가 있었다며 반성했고, 이후 이 같은 플레이를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많은 문제들도 노출했고 투구 내용 자체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데뷔전이었다. 첫 술에 배부를 리 없는 법이다. 매 경기 한 걸음씩 더 나아가는 류현진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김중겸 순스포츠 기자
방망이가 뜨거운 투수들 잠브라노 확 타자로 전향? 류현진은 지난 3월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시범경기에서 제이크 피비를 상대로 안타를 쳐내며 많은 팬들의 놀라움을 산 바 있으며, 그의 동료 클레이튼 커쇼는 개막전에서 결승 솔로홈런을 때려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메이저리그 투수들 가운데 빼어난 방망이 실력을 자랑하는 선수들은 누가 있을까. 투수의 방망이 실력을 논함에 빼놓을 수 없는 선수는 단연 카를로스 잠브라노다. 지난 2001년 시카고 컵스에 입단해 지난해 마이애미까지 줄곧 내셔널리그에서 뛰어온 잠브라노는, 통산 타율 .238과 함께 24홈런 71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24홈런은 현역 투수가운데 단연 1위 기록이다. 지난 2006년에는 73타수에서 6개의 홈런을 때려내기도 했으며,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연속 적어도 한 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통산 실버 슬러거 3회 수상을 기록중인 잠브라노는, 그러나 지난해 그의 소속팀 마이애미가 재계약을 포기하며 현재까지도 소속팀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릭 앤킬과 최근의 마이카 오윙스에 이어 어쩌면 타자로 전향하는 또 한 명의 선수가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밀워키의 에이스 요바니 가야르도도 타격에 강점을 보이는 선수다. 밀워키의 1선발이자 통산 69승(43패)를 기록하고 있는 가야르도는, 통산 .205의 타율과 10홈런 37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2010년 투수 부문 실버슬러거를 수상하기도 했던 가야르도는, 그해 .254의 타율과 4홈런 10타점을 기록하며 기존의 타자들 못지않은 성적을 올리기도 했다. 새로이 떠오르는 선수로는 워싱턴의 스테판 스트라스버그가 있다. 마운드 위에서 이미 괴물임을 입증한 스트라스버그는, 타석에서도 지난해 .277의 타율과 1홈런 7타점을 기록하며 리그 실버슬러거 상을 수상했다. 볼넷을 3개나 골라내고 2루타도 4개 기록한 그의 지난해 OPS는 .759였다. 이외에도 지난해 .333(18타수 6안타)의 타율을 기록한 뉴욕 메츠의 맷 하비와 통산 5홈런 54타점을 기록하고 있는 샌디에이고의 재이슨 마퀴 등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방망이 실력을 자랑하는 선수들이다. 김중겸 순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