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서는 <노리개> 속 성접대 장면이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묘사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장영남 주연의 <공정사회>와 마동석 주연의 <노리개>는 모두 사회 곳곳에서 자행되는 성범죄와 그로 인해 상처입고 사는 가족, 주변 사람 그리고 복수를 위해 나선 이들의 이야기다. 두 영화는 성 범죄로부터 피해를 입은 여성의 입장에서 가해자들을 향한 외침을 담아내 ‘제2의 도가니’라는 타이틀까지 붙었다. <도가니>는 2010년 개봉한 공유 주연의 영화다. 장애 아동들을 대상으로 실제로 일어난 상습 성폭행 문제를 스크린에 옮겨 관련 법안을 이끌어낸 등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공정사회>와 <노리개>가 제2의 도가니로 불리는 이유는 여성의 성을 향한 범죄와 가해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사회의 무능함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공정사회>와 <노리개>가 나란히 개봉한 이후 관객의 평가는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사회 문제에 주목한 시도는 긍정적이지만 그 내용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이야기를 통해 관객의 공감을 일으키는 과정을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노리개>에 대한 관객의 평가는 엇갈린다. <노리개>는 2009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자살의 원인이 알려지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기자 장자연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은 영화다. 제작진은 “장자연 사건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영화의 구성은 ‘장자연 사건’을 마치 스크린에서 재구성한 것처럼 실제 사건 과정과 흡사하게 짜여졌다.
소속사 대표의 강압에 의해 영화감독 등 연예 관계자들에게 억지로 성접대를 하던 여주인공은 온갖 학대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게 <노리개>의 주요 이야기다. 피의자로 지목된 이들은 법정에 서지만 사회적인 지위를 이용해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간다. 아쉽게도 영화는 촘촘히 구성되지 못한 탓에 피해자와 피의자 사이의 갈등이나 결국 죽음에 이르는 여주인공의 심정에 쉽게 공감하기가 어렵다.
<노리개>는 또 여주인공이 당하는 성적 학대의 모습을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이 과정에서 자극적인 노출 연기도 곁들여졌다. 표현 수위도 상당하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성접대를 강요받다가 죽은 여자 연예인의 사건을 통해 사회를 고발하려는 의도였다면 사건을 좀 더 내밀하게 지적해야 했다”며 “<노리개>는 사건을 자극적으로 나열한 것 같은 인상이다. 성적인 학대로 목숨을 끊은 여주인공의 아픔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시선도 여러 인물로 옮겨지면서 전체적인 집중도가 떨어지는 아쉬움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영화 <공정사회>(왼쪽)와 <노리개>의 한 장면.
<공정사회>는 <노리개>보다는 좀 더 잘 정돈된 영화다. 2003년 자신의 딸을 유린한 범죄자를 찾기 위해 서울과 경기도 일대를 40일 간 뒤진 끝에 결국 범인을 잡은 엄마이자 평범한 주부의 실제 사건을 극화한 작품이다. 수사에 의욕을 보이지 않는 무능한 공권력을 상대로 주부가 홀로 벌이는 처절한 복수를 그려 주목받고 있다. 사회 뉴스에서 거의 매일 보다시피 하는 아동 성폭력 사건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신랄하게 고발했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노리개>가 여주인공이 강압에 의해 성접대를 하는 장면을 지나칠 정도로 구체적으로 묘사했다면 <공정사회>는 피해 가족의 시선을 일관되게 따르면서 아동 성폭행 폐해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집요한 추적 끝에 범인을 잡는 엄마를 연기한 장영남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상황이었고 이야기의 과정도, 그 결말도 처절해서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영화는 결국 엄마의 복수극으로 끝을 맺는다. 그렇다고 해피엔딩은 아니다.
<공정사회>가 <노리개>와 가장 차별화된 점은 피해의 과정을 어떻게 그려내는지다. <노리개>가 주인공이 피해를 자극적인 장면으로 여러 차례 담아낸 반면 <공정사회>는 분위기를 통해 긴장감을 보여준다. 효과는 <공정사회>가 더 강렬하다.
<공정사회>를 만든 이지승 감독은 영화에서나 실제 촬영 현장에서도 피해를 입은 설정의 아이의 인권을 최대한 보호하려고 했다. 영화에서 아이가 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거나 범죄자와 아이가 한 장면에 나란히 나오는 모습이 거의 없는 것도 철저한 감독의 계산으로 이뤄진 일이다.
이지승 감독은 “두 사람이 얼핏 함께 나오는 장면에서는 아이의 눈을 가리고 있는 설정을 택했다”며 “실제로 열 살인 어린 연기자에게 심각한 장면의 연기를 시키거나 보여주기 싫었다. 연기하는 그 아이가 내 딸이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고 밝혔다.
이런 제작진의 세심한 상황 연출을 가장 빠르게 눈치 채는 건 관객의 눈이다. <공정사회>는 제작비 5500만 원으로 완성된 초저예산 영화이지만 개봉 이후 꾸준히 관객을 모으며 호평받고 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