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의 신곡 ‘젠틀맨’ 뮤직비디오에서 호흡을 맞춘 가인과 싸이. 오른쪽은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여주인공으로 활동한 현아.
싸이 인기의 영향을 가장 먼저 ‘화끈하게’ 받는 두 명의 스타는 가수 현아와 가인이다. ‘강남스타일’과 ‘젠틀맨’ 뮤직비디오의 여주인공을 맡아 싸이와 호흡을 맞춘 두 명은 해외 언론으로부터 ‘싸이걸’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주목받고 있다.
먼저 화제를 모은 그룹 포미닛의 현아는 ‘강남스타일’ 인기를 타고 한때 ‘미국 강제진출’이란 말을 들으며 자신의 존재를 여러 나라에 알렸다. ‘2대 싸이걸’로 통하는 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멤버 가인에 대한 관심은 더 적극적이고 반응은 즉각적이다. 지난 달 중순 미국 <빌보드>는 칼럼을 통해 가인과 그가 속한 그룹의 개성까지 집중적으로 조명해 눈길을 끌었다. <빌보드>는 가인에 대해 “‘강남스타일’의 현아에 이어 싸이의 새로운 파트너 가인이 국제적인 관심을 받을 것 같다”며 “브라운아이드걸스는 멤버 각자 고유한 영역을 가진 케이팝 그룹이다. 가인은 오디션을 통해 마지막으로 그룹에 합류한 멤버”라고 상세하게 소개했다. 이어 브라운아이드걸스의 히트곡인 ‘아브라카다브라’ 등의 개성을 분석하기도 했다.
현아와 가인은 당장 싸이처럼 세계 시장을 겨냥한 음반을 출시할 계획은 없다. 다만 케이팝 열풍을 주도하는 아이돌 그룹들의 음반 발표 방식이 최근에는 한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에 머물지 않고 미국과 유럽에서도 동시에 출시되는 흐름으로 변화하면서 현아와 가인은 자연스럽게 싸이의 후광효과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새 음반을 준비 중인 가인은 ‘젠틀맨’이 불러온 엄청난 인기를 체감하고 있지만 그보다 먼저 기획하고 계획했던 음반의 콘셉트를 바꾸지 않을 생각이다. 한 가요 제작자는 가인의 상황을 짚으면서 “반드시 미국 등 세계 시장을 목표로 해서 음반을 내지 않더라도 경쟁력이 있는 음악은 어디에서든 통한다는 공감대가 대부분의 케이팝 스타들 사이에서 형성됐다”며 “이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건 싸이의 성공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말 현아가 속한 걸그룹 포미닛이 내놓은 신곡 ‘이름이 뭐예요?’에 대한 반응이 이런 가능성을 한층 높이고 있다. 이 곡이 발표된 직후 미국 대중문화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유명 블로거 페레즈 힐튼은 자신의 사이트를 통해 “싸이 비켜”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해 화제를 모았다. 페레즈 힐튼은 포미닛을 ‘케이팝의 여왕들’이라고 칭하며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돌아왔다. 걸 파워의 언어는 전 세계적으로 통한다. 포미닛의 귀여운 의상과 얼굴을 과소평가하지 말아라. 포미닛은 미국 정복을 준비 중이다. 우리도 환영할 준비가 돼 있다”고 썼다. 포미닛은 현아가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 전부터 유럽과 남미 지역을 공략하며 세계 시장 진출을 꾸준히 모색해왔다. 하지만 미국에서 포미닛에 눈길을 더 쏟는 이유는 현아가 ‘강남스타일’의 여주인공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싸이는 ‘젠틀맨’을 들고 미국으로 출국하기 직전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올라갔다는 생각이 든다”며 “나는 예전부터 고급이 아니었다. 이번 노래(젠틀맨)와 뮤직비디오에도 같은 길을 택한 것뿐이다”고 말했다. ‘강남스타일’ 이전부터 갖고 있던 그만의 ‘B급 정서’를 세계 시장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바꾸고 싶지도, 바꿀 생각도 없다는 뜻이었다.
가요 전문가들의 의견도 싸이의 발언에 대체로 동의하는 쪽이다. 좋은 콘텐츠는 국경을 넘어 소통할 수 있다는 ‘성공 교과서’를 제시했다는 의견과 함께 싸이의 사례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이후 케이팝 가수들은 해외 진출에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물론 싸이가 ‘강남스타일’을 내놓기 이전에도 미국과 유럽, 남미에서 인기를 얻은 아이돌 가수들은 여러 팀 있었다. 소녀시대는 한국 아이돌 그룹으로는 처음으로 유럽의 중심인 프랑스 파리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고 유럽에 케이팝 이라는 단어와 그 장르를 알렸다. JYJ 역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연 단독 콘서트로 열풍을 이끌었다. 포미닛은 같은 소속사에서 활동하는 또 다른 그룹 비스트 등과 함께 남미에서 합동 공연을 펼치며 케이팝 열풍을 잇기도 했다.
하지만 싸이의 등장으로 모든 게 한 번에 바뀌었다. 싸이는 ‘흔한’ 프로모션 한 번 없이 오직 유튜브에 공개한 뮤직비디오 한 편으로 세계 음악 팬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실제로 ‘강남스타일’의 폭발적인 성공 이후 유튜브에 주목하는 케이팝 그룹들은 더욱 늘고 있다. 결정적인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싸이 덕분에 증명된 셈이다.
한 가요 제작자는 “모든 케이팝 가수들이 싸이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건 아니다”면서도 “문화의 벽을 넘으려면 일단 콘텐츠가 좋아야 한다는 불변의 명제는 있다.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갖고 어느 길로 가야하는지 싸이의 사례에서 참고해야 한다. 싸이의 성공은 케이팝 스타들에게도 신선하고 충격적인 자극제가 됐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볼 때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