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는 지난해부터 ‘신기의 퍼팅’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박인비가 지난 4월 29일 미국여자프로골프투어 노스텍사스 LPGA 슛아웃에서 시즌 3승(통산 6승)을 달성하며 세계랭킹 1위 독주 채비를 갖췄다. 미LPGA 올시즌 28개 대회 중 8개가 치러진 시점에서 메이저 1승을 포함해 3승이니 박인비가 얼마나 경이적인 성적을 올릴지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2008년 20세가 채 되기도 전에 최고 권위인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여왕벌이 됐고, 3년간의 슬럼프 후 ‘침묵의 암살자’로 화려하게 돌아온 박인비에 대해 <일요신문>이 심화학습에 나섰다.
# 알랑가몰라 하나 -웬 암살자?
당뇨병 얘기도 아니고, 왜 별명이 ‘침묵의 암살자(Silent Assassin)’일까? 박인비는 질박하고 편안한 인상을 풍기는데 말이다. 보도에 따르면 ‘박인비는 표정이 없고, 기복 없는 플레이를 펼쳐 미국 언론으로부터 침묵의 암살자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정확치는 않다. 침묵의 암살자는 바로 마지막 날 역전승 때문에 생긴 표현이다. 지난해 10월 박인비는 미LPGA 사임 다비 말레이시아 대회에서 홈코스의 18세 신예 아리야 주타누가른에게 극적인 1타차 역전승을 거뒀다. 2타차로 우승을 눈앞에 둔 주타누가른이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언플레이어블 선언 등으로 8타 만에 홀아웃하며 우승컵의 주인공이 바뀐 것이다. 이번 노스텍사스 대회에서 카를로타 시간다(스페인)가 줄곧 앞서가다 14, 15번홀 결정적인 실수를 범해 박인비에게 우승을 내준 것과 흡사한 장면이다. 주타누가른은 말레이시아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신예이고, 시간다는 2012년 유럽투어에서 상금왕과 신인상을 동시에 수상한 강호였다. 돌풍을 일으키던 선수들이 흔들림 없는 박인비의 플레이에 한순간에 무너지곤 한 것이다.
말레이시아 대회 우승 후 진행된 LPGA 공식인터뷰에서 ‘침묵의 암살자’가 탄생했다. 질문자가 “3승 중 2승을 역전승으로 장식했다. 침묵의 암살자라고 부르고 싶은데 마음에 드나?”라고 물었고, 박인비는 웃음과 함께 “그렇다(YEAH)”고 답했다.
박인비는 통산 6승 중 4승을 역전승으로 장식했다. 2012년 에비앙과 지난 4월 나비스코만 먼저 선두로 치고 나간 것이고, 나머지 4번은 대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참고로 초등학교 6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이미 아마추어 때 폴라 크리머와 함께 미국을 평정한 박인비는 이름의 영어표기(IN‘BEE’) 때문에 ‘여왕벌(Queen Bee)’로 불렸다.
# 알랑가몰라 둘 -퍼팅 교과서
KB금융과 메인스폰서 계약을 체결했다.
웨일리는 “누군가에게 골프를 가르치려고 한다면 박인비의 스윙은 모범이 될 수 없다. 박인비의 스윙 자세는 좀 업라이트하고, 클럽페이스도 닫혀 있기 때문에 정석이 아니다. 엄청난 연습을 통해 박인비에게만 최적화된 스윙이다. 하지만 퍼팅은 얘기가 다르다. 박인비가 퍼팅할 때 팔과 어깨가 그렇게 편하게 보일 수 없다. 그립을 딱 필요한 만큼만 부드럽게 쥐는 까닭에 다른 사람이 퍼터를 쓱 빼 갈 수 있을 정도”라고 분석했다.
박인비의 퍼팅은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우승 2회를 포함해 10개 대회 연속 톱10을 기록할 때 외신에서 먼저 화제가 됐다. 실제로 박인비는 최근 2년간 라운드 평균 28개의 퍼팅을 기록했다. 그린적중률이 높지 않은 경우 어프로치에 이은 원퍼팅 등으로 타수는 높지만 퍼팅수는 낮출 수 있다. 하지만 박인비는 높은 그린적중률을 유지하면서도 30개 이상은 좀처럼 기록하지 않는 것이다. 현재 박인비는 파온(GIR) 당 퍼트수에서 1.707개로 이 부분에서 독보적인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세계랭킹 2위인 스테이시 루이스가 1.724개로 2위, 서희경(1.736개)과 신지애(1.738개)가 그 뒤를 잇고 있다. 2위와의 격차인 0.017은 이 순위에서 최대치다.
박인비의 퍼팅 동영상은 미국에서도 화제다. 그러니 아마추어들도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퍼팅에 문제가 있다면 무조건 박인비를 따라하면 된다.
# 알랑가몰라 셋 -성격 ‘짱’ 가족
박인비는 지난 5월 2일 매니지먼트사인 IB스포츠를 통해 KB금융그룹과 후원 계약을 체결했다. 28개월 만에 얻은 타이틀스폰서였다. 2008년 US여자오픈 우승 후 SK텔레콤이 박인비를 후원했지만 이후 성적이 신통치 않자 계약 종료 후 슬그머니 물러났다. 하지만 박인비는 물론, 부친인 박건규(52), 김성자(51) 씨는 개의치 않았다. 계속 매니지먼트사를 믿고 맡겼다. 지난해 미LPGA에서 상금왕과 최저타상(베어트로피)를 받았을 때도 스폰서 문제를 운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건규 씨는 “(박)인비의 미국 이름 약자가 IB다. 처음 연을 맺은 IB스포츠와 계속 함께 가는 것이 운명 같다”고 농을 섞어 말했다.
대신 어머니 김성자 씨는 박인비의 투자(30억 원)를 바탕으로 2010년 페트병 생산 업체 ‘KIB’를 차렸다. 다른 회사의 후원이 없으면 박인비 회사를 만들면 된다는 취지였다. 원래 박건규 씨가 가업인 페트병 포장재를 제작하는 사업을 해왔는데 딸과 자신이 새 분야를 개척하고 나선 것이다. 김 씨는 “원래 스스로 잘하는 스타일이고, 지금은 약혼자까지 있으니 내버려두고 있다. 바빠서 한 달에 한 번 일본이나 미국으로 가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인비의 부모는 기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취재요청에 최대한 협조하고, 뭐든 시원시원하게 답하기 때문이다. 부부는 건국대 산악반에서 맺어진 캠퍼스 커플이다. 산과 대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듯 아주 호탕하다.
박인비가 실수한 플레이는 쉽게 잊고, 흔들림 없는 포커페이스로 필드를 지배하는 것도 이런 유전자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