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지원에서 진행하는 ‘여류 최고위전’의 제2회 대회 우승자 강다정(왼쪽)과 제1회 대회 우승자 김수영.
‘압구정리그’의 본거지 압구정지원(원장 장시영)이 이번에는 여자 주니어 선수만을 위한 새로운 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대한민국 원조 로데오 압구정에는 한국기원 압구정지원이 있고, 압구정지원에는 ‘압구정 리그’가 있다. 2010년에 출범했으니 어느덧 4년째다. 압구정리그는 제도권 리그가 아니다. 출전 선수들이 참가비를 내고, 독지가가 후원해 이루어진, 말하자면 ‘재야 리그’여서 대회 예산은 공식대회에 미치지 못하지만, 아마7단급 전국구 강자 거의 전부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국내 최고 수준의 대회로 성가를 굳히고 있다.
규모가 작은 것도 아니다. 다른 대회들처럼 ‘1년에 한 번’ 열리는 것이 아니라, 진행이 빠르면 두 달에 한 번, 좀 더뎌지면 분기에 한 번이어서 햇수로는 4년이지만 6월 5일 현재 제19회가 시작되었다.
60여 명의 정예가 벌이는 연중 상설 페넌트레이스를 만들어낸 압구정지원이 최근에 또 새로운 상품을 선보인 것. 여자 주니어 선수를 위한 대회, ‘여류 최고위전’이다. 압구정지원의 발상과 기동성이 신선하다. 덩치가 크지 않고 제도권이 아니기에 착상이 자유롭고 실행이 빠를 수 있다는 장점을 제대로 살리고 있다. 바둑 동네에도 이 여성 파워가 빠른 속도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있는 모습이다.
대회 출범에 결정적 동력을 제공한 사람이 있었다. 한국골프경영자협회 박종오 회장(68)이다. 대회 후원을 자처하고 나선 것.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밝히지 말아달라고 했다”는 것이 장시영 원장의 전언인데, 아무튼 고마운 일이다.
예전에는 어린 아들이 바둑에 재주가 있다 싶으면 프로기사를 꿈꾸었다. 그게 조금씩 변해오더니 요즘은 딸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아빠가 많다. 프로기사는 참 괜찮은 직업이지만, 되기가 너무 힘들고 되고나서도 성적을 내지 못하면 팍팍하고 어려운 길. 그런데 가만 보니 여자 프로기사는 성적과는 상관없이 희소가치를 인정받으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
‘여류 최고위전’은 지난 5월 중순에 제2회를 치렀다. 본선은 4개조, 1조 4~5명. 제1기 우승 김수영을 비롯해 전유진 장윤정 박지영 강경랑 이지은 김태현 권주리 조은진 이시연 채현지 강다정 이선아 김이슬 이유민 김다영 김희수 김현지 정혜령 등의 면면이다. 여자 주니어 총출동이다. 김수영 강다정 장윤정 강경랑, 모두 1990~91년생 비슷한 또래의 넷이 4강에 올랐고, 김수영과 강다정이 결승에서 만나 강다정이 우승했다. 김희중 9단이 심판위원장, 김정우 7단이 대회 진행을 맡았다. 오늘은 일단 4강을 소개해 본다.
강다정은 부산 출신의 맹렬한 인파이터. 평소에는 말도 별로 없고 수줍음을 타는 성격인 것 같은데, “바둑을 보면 여자 복서 같은 느낌”이라고들 한다. 2011년 시즌에 여류국수전 우승, 건국우유배 우승 등 성적이 좋았다. 전유진 이유진과 함께 장수영 도장에서 공부하면서 2012년부터 내셔널리그 서울 건화 팀 소속으로 활약하고 있다. 현재 여자 주니어 랭킹 2위.
강경랑(왼쪽)과 장윤정.
내셔널리그 충남 서해바둑단 소속. 지난해 충남 팀이 정규리그 4위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에서 승승장구하며 최종 챔피언시리즈까지 제패할 때 견인차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이후 충남 팀이 어려워져 잠시 존폐 기로에 처했을 때 다른 팀들이 스카우트하려고 했으나 팀 잔류를 고수해 ‘실력에 의리를 겸비한 똑순이 소녀가장’이라고 칭찬을 받았다.
장윤정은 선린인터넷고를 졸업하고 한세대학교(구 대불대학교) 재학중. 어릴 때 백대현 7단에 사사했고, 지금은 이세돌 도장. 2011년 전국체전 페어부 금메달리스트이며 2012년에는 일본에서 열린 국제아마페어대회에서 이호승 선수와 팀을 이루어 우승했다.
2012년에는 랭킹 1위였다가 “공부를 좀 안 했더니 지금은 한참 밑으로 내려가” 있단다. 요즘은 일주일에 네 번꼴로, 이영신 윤영민 하호정 한해원 박지은 박소현 최동은 등 여자 프로기사들이 모여 만든 ‘동작바둑교실’에 아마추어 사범 일을 하고 있다. 내셔널리그 인천 에몬스가구 팀 소속.
강경랑은 독특하고 독창적이다. 세명고를 거쳐 명지대 바둑학과 3학년에 재학중. 어릴 때 농심배 학생바둑대회에서 우승하는 기재를 보였다. 고등학생 시절에 한상대 교수 팀과 유럽여행을 하면서 유럽 각국의 친구들을 만들었고,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사실에 눈을 떴다. 바둑의 세계보급은 그 가운데 하나였다.
곧 실천에 옮겼다. 스스로 묻고 찾고 연락해 2010년에는 네덜란드로 건너가 헤이그를 중심으로 바둑을 가르치면서 1년을 지냈고, 2012년에는 영국으로 날아가 런던을 중심으로 바둑 강의도 하고 대회에 참가해 우승도 하고 하면서 1년을 지냈다.
연구생 1조 출신의 짱짱한 실력이면서도 대회에는 잘 나가지 않았는데, 공부도 더 할 겸 재충전을 위해 잠시 돌아와 있는 지금은 기회가 되는대로 대회에도 출전할 생각이다. 그리고 졸업하면 다시 나갈 것이다. 말로, 영어로 소통이 된다는 것은 큰 자산이요 무기다. 강경랑은 차수권 7단 도장에서 공부했다.
현재 대전에 있는 영국계 대학에서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이하진 3단도 차수권 도장 출신이다. 이하진 3단과 강경랑 선수 같은 재원들이 넓은 세계에서 날개를 펴기 바란다. 바둑 동네에도 여성 파워의 물결이 넘실대고 있다. 압구정의 ‘여자 주니어를 위한 리그’의 장도를 축원한다.
이광구 객원기자
지난호(1099호) 바둑면(61면)의 기사와 제목 중 ‘멍하이허배’는 ‘멍바이허(夢百合)배’의 오기이므로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