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6일 LG 트윈스가 SK 와이번스를 짜릿한 끝내기로 물리쳤다.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몰려나와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사진제공=LG 트윈스
“LG가 4위라고? 이야, 믿기지가 않네.”
6월 7일 목동구장을 찾았을 때 넥센의 한 코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LG의 4위 진입이 진짜냐?”고 물었다. 그는 순위표를 보여주자 그제야 “진짜네”하며 혀끝을 찼다. 그 코치만의 반응은 아니다. 야구계 인사 대부분이 LG의 반전을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이유는 뭘까.
5월 중순까지 LG 팀 성적이 비참하리만큼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4월 27일부터 5월 18일까지 LG는 15경기를 치르는 동안 3승 12패로 승률 2할을 기록했다.
시즌 5위였던 성적도 7위로 뚝 떨어졌다. 당시 시즌 전적 14승 20패의 LG를 보며 많은 야구전문가가 “올 시즌도 LG의 포스트시즌 진출이 힘들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을 내놓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5월 19일부터 6월 6일까지 최근 15경기에서 LG는 11승 4패의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시즌 전적 26승 24패로 승률 5할을 넘어섰다. 거기다 시즌 성적도 4위로 올랐다. 일부에선 이를 두고 “성적 사이클이 이렇게 심하면 조만간 다시 성적이 바닥을 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일선 야구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류제국
“5월 17일까지 LG 팀 평균자책은 리그 중위권이었다. 구원진은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지만, 선발진 평균자책이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류제국이 1군에 합류한 18일 이후 마운드가 급격하게 좋아졌다. 특히나 선발진의 안정세가 두드러진다. 기존 레다메스 리즈와 벤자민 주키치, 우규민, 신정락이 호투했으나 늘 5선발이 문제였는데 이를 류제국이 해결해준 덕분이다. 원체 류제국이 건강하게 공을 던지기 때문에 LG 선발진이 갑자기 힘을 잃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
사실이다. 이 위원이 기준으로 삼은 5월 17일 이전만 해도 LG 마운드는 그저그랬다. 구원진 평균자책은 3.49로 리그 1위였지만, 선발진 평균자책은 4.27로 높았다. 특히나 선발진 퀄리티스타트(6이닝 3실점 이하)가 리그에서 두 번째로 적은 13번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류제국이 복귀한 이후 LG 선발진의 평균자책은 4.02로 좋아졌다. 17경기 가운데 선발진의 퀄리티스타트도 8번으로 같은 기간 NC의 11번에 이어 2위였다.
불펜진은 더 대단하다. 최근 15경기 동안 LG 불펜진은 단 11점만을 내줬다. 평균자책은 1.75. 올 시즌 LG 불펜진이 기록 중인 평균자책 2.90은 팀 역사상 2002년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이다.
이 위원이 언급한 두 번째 배경은 완벽한 신구조화다.
“지난해만 해도 LG 야수진은 노장 일색이었다. 노장들은 개인 성적은 뛰어났지만, 팀이 꼭 필요할 때 한 방을 치거나 자신을 희생하는 플레이에선 약점을 드러냈다. 그러나 김용의, 문선재 등이 주전 야수진에 가세하며 타선의 짜임새가 훨씬 좋아졌다. 여기다 이병규, 박용택 등 고참 선수들이 맹활약하며 LG 타선은 9개 구단 가운데 가장 신구조화가 뛰어난 팀이 됐다.”
세 번째 배경은 LG 김기태 감독의 용병술이다. 현역시절 뛰어난 보스 기질로 많은 후배 선수의 존경을 받았던 김 감독은 지난해 선수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노장 선수들을 중용하며 “감독이 아니라 주장 같다”는 혹평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올 시즌엔 과감하게 젊은 선수를 기용하고, 각종 작전을 적극적으로 펼치며 “지난해의 김기태가 아니다”라는 평을 듣고 있다. 무엇보다 김 감독은 특유의 인화력과 리더십으로 ‘모래알’이라 폄훼되던 LG 팀 분위기를 하나로 묶는 데 성공했다.
LG 선수들이 공공연하게 “감독님을 위해서라도 꼭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겠다”고 다짐하는 건 눈여겨볼 대목이다.
네 번째 배경은 구단의 노력이다. 지난해까지 LG는 트레이드와 프런트 개혁에 미온적인 팀이었다. 한 구단 직원은 “원체 트레이드 실패 사례가 많아 트레이드 시장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라며 “프런트에 야구인 출신이 많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를 바로잡을 용기도 부족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지난 시즌이 끝나고 LG는 개혁의 깃발을 들었다. 먼저 트레이드 시장 문을 두드려 삼성으로부터 내야수 손주인, 포수 현재윤을 받았고, 현재윤이 불의의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가자 다시 시즌 중 넥센과 협상해 포수 최경철을 영입했다.
손주인은 LG 주전 유격수로 “그간 LG에선 좀체 보기 힘든 허슬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현재윤과 최경철 역시 변화무쌍한 투수리드와 안정감 넘치는 수비로 “LG 투수진을 바꿔놨다”는 호평을 듣고 있다.
프런트 역시 손을 봤다. 줄곧 비야구인 출신이 맡던 운영팀장을 지난해까지 주루코치를 맡던 송구홍이 맡도록 하면서 프런트와 현장의 소통이 한층 원활해졌다는 후문이다.
이 위원은 “올 시즌 LG의 시스템이 백팔십도 달라졌다”며 “몇몇 선수에게 의존했던 과거와 달리 삼성, 넥센처럼 LG도 시스템 야구를 펼치고 있기에 갑작스럽게 부상자가 속출하지 않는 한 지금의 좋은 흐름을 전반기까지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송승준의 부활과 4번타자 강민호의 복귀를 롯데 상승세의 원동력으로 꼽는다.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그즈음 토종 에이스 송승준은 1승밖에 거두지 못했고, 4선발 고원준의 평균자책은 5.47이나 됐다. 게다가 5선발은 투수가 없어 김수완, 김승회가 돌아가며 맡았다. 삼성과 견줄 만큼 탄탄해 보였던 불펜진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정대현의 평균자책은 5.79였고, 최대성은 4.91로 매우 높았다.
타선은 더 참혹했다. 5월 17일까지 롯데 팀 타율은 2할4푼5리에 불과했다. 신생구단 NC의 팀 타율보다 4리나 낮았다. 팀 내 3할 타율은 손아섭이 유일했고, 팀 내 홈런도 2개의 김대우가 1위였다. 지난해까지 최고의 파워 야구를 선보였던 롯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터였다. 오죽했으면 김시진 롯데 감독이 “우리 팀 홈런을 본 지 꽤 된다”고 한숨을 내쉴 정도였다.
그러나 롯데 역시 18일을 기준으로 전혀 다른 팀이 됐다. 롯데는 18일부터 6월 6일까지 14경기를 치러 10승 4패를 기록하며 승률 5할에 복귀했다. 6월 6일 기준 롯데는 25승22패로 리그 3위다.
이 기간 투수진의 각성이 눈에 띈다. 송승준은 14경기에서 3승을 따냈고, 새롭게 선발진에 가세한 이재곤은 매경기 호투를 펼치고 있다. 불펜진도 안정을 찾아 정대현, 김사율, 김성배, 김승회는 평균자책 2점대 이하로 분투했다.
타선의 변화는 더 극적이었다. 같은 기간 롯데의 팀 타율은 무려 3할2푼6리나 됐다. 리그 1위였다. 황재균, 박종윤, 박준서 등 하위 타자들이 제몫을 해준 게 큰 힘이 됐다.
그렇다면 롯데의 변화엔 어떤 이유가 숨어 있을까.
강민호.
롯데의 한 코치는 “오프 시즌 프런트의 판단이 지금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일까.
이 코치는 “구단이 김주찬, 홍성흔을 놓치며 이를 반전의 기회로 삼았다”고 평했다. “두 선수가 떠나며 젊은 선수들의 기용폭이 넓어졌다. 박종윤과 김문호는 만약 홍성흔, 김주찬이 버티고 있었다면 주전으로 기용되기 어려웠을 거다. 하지만, 두 선수의 공백이 생기며 구단과 코칭스태프가 적극적으로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기 시작했고, 그게 주효하고 있다.”
롯데는 포크볼러 조정훈이 돌아오는 후반기가 되면 마운드가 더 단단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야구계는 롯데의 마운드가 갑자기 무너지지 않는다면 올 시즌도 무난히 포스트 시즌에 진출할 것으로 전망하는 분위기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이적생이 효자…20년 만이야
지금이야 그렇지만, LG 트레이드 잔혹사는 공포영화보다 더 참혹했다. 시작은 2000년부터였다. 그해 LG는 FA(자유계약선수) 최대어로 꼽히던 홍현우를 총액 22억 원에 영입했다. 하지만, 홍현우는 부상에 시달리다 1, 2군을 전전했고 급기야 LG는 2004년 홍현우와 이용규를 KIA에 내주고 투수 이원식, 소소경을 영입했다. 하지만, 이용규가 KIA 유니폼을 입고 펄펄 날기 시작한 데 반해 이원식, 소소경을 쓸쓸하게 사라지며 LG의 트레이드는 실패로 끝났다.
2009년엔 KIA로부터 투수 강철민을 받는 조건으로 내야수 김상현과 박기남을 내주는 1 대 2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당시 KIA는 강철민의 부상 사실을 알렸지만, LG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며 박기남을 덤으로 주는 후한 인심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해 ‘만년 2군 거포’였던 김상현이 타율 3할1푼5리, 36홈런, 127타점으로 KIA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반면 강철민은 2010시즌 3경기에 등판해 1패라는 초라한 성적만을 남긴 채 방출되며 LG는 “역사상 최악의 트레이드를 단행했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LG는 2010년에도 트레이드 시장 문을 두들겼다. 그해 7월 SK에 ‘최동수-권용관-이재영-안치용’을 내주고 투수 박현준, 김선규와 타자 윤상균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역시 박현준이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며 결국엔 실패한 트레이드로 끝났다.
2011년엔 ‘제2의 김상현 사태’가 벌어졌다. LG는 현금이 포함됐을 것이라는 의혹을 받으며 타자 박병호와 투수 심수창을 넥센에 보내고 특급 불펜 투수 송신영과 젊은 선발 김성현을 영입했다. 하지만, 박병호가 김상현에 이어 지난해 정규시즌 MVP에 오르고, 김성현이 박현준의 뒤를 따라 승부조작으로 영구제명되며 이 트레이드 역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LG 관계자는 “우리 팀이 트레이드에 성공한 건 1993년 해태(KIA의 전신) 한대화를 받은 이후 처음인 것 같다”며 “다음해 LG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만큼 20년 만의 트레이드 성공이 포스트 시즌 진출 쾌거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숨겨둔 바람을 털어놨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