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상 최고가를 넘어선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전경. 거품 이미지와 합성.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디벨로퍼 본연의 업무는 개발될 만한 땅을 선점해 금융권, 시공사와 연계해 개발한 뒤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디벨로퍼들은 경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경기에 따라 사업을 지속하거나 중단하는 게 다반사다. 업계에선 디벨로퍼들이 시장 침체를 이유로 지난해 4월부터 매입 등 땅 작업에 신중한 자세를 취해왔다고 보고 있다. 특히 지난해 9월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국내 금융시장이 위축되면서 대형 디벨로퍼조차 사업에 나서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이 같은 상황은 올 들어 조금씩 달라졌고 2분기 들어선 디벨로퍼들이 땅 매입에 적극 나서면서 부동산 경기가 본궤도에 올랐음을 알리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부동산 디벨로퍼 ㈜MDM은 최근 판교 주상복합 용지 C1-2블록을 925억 원에 낙찰 받았다. ㈜MDM은 1988년 설립된 회사로 분당 트리폴리스, 서초동 현대슈퍼빌, 목동 현대아이페리온, 분당 파크뷰 등의 굵직한 개발사업을 해온 회사다.
㈜MDM은 서울·부산 일대에서 사업을 위해 부지 매입을 검토했지만 지난해 8월 글로벌 경기 침체와 신용경색을 겪으면서 사실상 사업을 중단했었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면서 사업 재개를 위해 판교 주상복합용지를 매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MDM은 C1-2블록(1만 1743㎡, 약 3558평)에 최고 25층 규모로 주상복합 142가구를 지을 계획으로 내년 상반기 분양 예정이다.
한국토지공사(토공)가 25년째 보유 중인 서울 여의도 61-2 일대 땅도 최근 부동산개발업체인 ㈜골든페넌트승인이 매입했다. 이 부지는 토공이 1984년 라이프주택으로부터 49억 원에 사들인 학교시설용지로 전체 면적은 1만 6529㎡(약 5009평)이며 토공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각각 8264㎡씩 보유하고 있다. 이 부지는 토공이 수십 차례 매각을 추진했으나 용도변경 문제로 매각이 이뤄지지 않았던 곳이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서울시가 신 도시계획 운용체계를 발표하면서 용도변경이 가능해짐에 따라 토공이 매각을 추진했고, 3개 부동산개발업체가 치열한 경합을 한 끝에 골든페넌트승인이 땅을 매입했다. 골든페넌트승인은 용도변경 후 오피스·주상복합 개발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대표적 디벨로퍼인 피데스개발도 대전 분양에 이어 평택 일대에서 사업을 위한 부지 매입에 나서고 있다. 토공이 분양하는 주택용지에도 건설사와 시행사들이 몰리고 있다. 최근 토공이 분양한 고양 삼송지구 공동주택용지 2개 블록 매각에 건설사와 시행사 99곳이 몰려 치열한 용지 확보 경쟁을 벌였다.
이처럼 시행사들이 다시 땅 매입에 나선 이유는 수도권 분양시장이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인천 청라지구 한화 꿈에그린, 호반 베르디움, 서울 신당 래미안, 의왕 내손 래미안 등 서울·수도권 아파트의 청약이 1순위에 모두 마감됐고 이 같은 흐름은 계속되고 있다. 동광종합토건이 광교신도시에 분양한 오드카운티는 최고 19.44 대 1의 경쟁률과 평균 7.9 대 1의 경쟁률을 보이며 순위 내 마감했고, 지난 2일 접수를 받은 광교신도시 한양수자인 아파트도 총 199가구 모집에 3237명이 몰려 평균 16 대 1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하면서 1순위에서 마감됐다.
일부 부동산 시장은 버블(거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실제 최근 실시된 판교신도시 내 중심상업용지와 근린상업용지, 근린생활시설용지 10개 필지에 대해 공개 입찰한 결과 모든 필지가 팔렸다.
중심상업용지 4필지는 모두 내정가 대비 200~273%의 높은 낙찰가율을 나타냈다. 평균 낙찰가율이 224%다. 505의 1(569㎡·약 172평)은 내정가 67억 원보다 273%나 비싼 182억 원에 낙찰됐다. 과거 입찰에서는 149억 원에 팔렸으나 이번에는 26명이 입찰에 나서 낙찰가율이 오히려 51%포인트나 높아졌다. 이 땅은 다른 용지에 비해 면적이 적어 투자금액이 크지 않고 입지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504의 1(1400㎡·약 424평)은 내정가 147억 원의 두 배가 넘는 314억 원에 매각됐다.
강남권 아파트 가격도 역대 최고가격을 기록한 2006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급등했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상반기 아파트 가격은 강동구의 경우 지난 연말 대비 8.21%로 가장 많이 올랐고, 송파(6.27%), 강남(3.85%), 서초(3.65%), 양천(3.25%), 영등포구(1.36%)도 강세를 보였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12.87% 하락했던 재건축 아파트는 올 상반기 11.36% 뛰며 2007년 이후 2년 연속 계속되던 하락세에도 마침표를 찍었다.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와 여의도 일부 재건축 단지는 사상 최고가를 넘어섰고, 최고가에서 50~70%까지 하락했던 잠실 주공5단지 등 주요 재건축 단지도 고점 시세의 80~90%를 회복했다.
지난해 한때 큰 폭으로 하락했던 버블세븐 지역들도 가격이 대부분 예전 시세를 회복했다. 버블세븐 중 한 곳인 목동의 경우 신시가지 2단지 115㎡(35평)형 매매가는 10억 5000만~11억 원을 호가하고 있다. 이 아파트는 지난 2006년 10월에 12억 5000만~13억 원을 호가했지만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가격이 급락하면서 한때 9억 원까지 떨어졌다.
또 다른 버블세븐으로 꼽히는 분당과 평촌은 상반기에 각각 1.84%, 0.23% 올랐고 특히 분당의 경우 강남권 가격 회복과 판교신도시 입주, 저금리 영향으로 3월 이후 가격이 고공비행을 나타내고 있다.
이 같은 부동산 시장 과열 조짐은 주택담보대출 증가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지난 6월 한 달간 3조 원 가까이 늘어나 올 상반기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이 18조 1000억 원에 이르렀다. 이는 주택경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2006년 하반기 수준(16조 8000억 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다 보니 급기야 정부가 나서서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규제 가능성을 언급하고 나설 정도다. 실제 일부 시중은행은 신용등급이 낮은 고객에 대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낮춰 적용하는 방안을 시행하거나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 규제를 다시 강화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시장을 내버려뒀다가 과열됐을 경우에도 문제지만, 섣불리 규제를 강화했다가 어렵게 살린 시장이 완전히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그 또한 낭패”라고 말했다.
윤진섭 이데일리 기자 yjs@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