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문재인 후보는 기초지방자치단체장과 기초의회의원 정당공천을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는 국회의원·지역위원장과 기초선거 후보 간 ‘갑을관계’를 개선하고, 국회의원들의 ‘특권 내려놓기’ 같은 정치개혁을 의미했다. 그동안 풀뿌리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예속화되고 있다는 지적과 공천과 관련한 비리 논란이 거세지고 있을 때라 정당공천 폐지 공약은 국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지난 2일 민주당 의총에 참석한 김한길 대표.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대선 이후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지역공천 폐지를 발 빠르게 추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새누리당은 정치쇄신특별위원회를 구성했고, 민주당은 ‘정당공천찬반검토위원회’를 만들었다. 새누리당은 정당공천제 폐지를 향후 세 차례 지방선거에서 실시하고 추후 폐지 여부를 결정하자는 ‘일몰제’ 안을 중앙당에 건의했다. 민주당도 지난 4일 지방선거에서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해 공천을 폐지하기로 잠정결정했다.
그러나 지난 5일 진보신당이 “문제의 원천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알면서도 그 책임을 제도로 돌리는 것은 비웃음을 받아 마땅하다”며 “민주당이 정당공천제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하고 새누리당과 공조하게 된다면, 즉시 헌법소원 등 필요한 대응을 할 것”이라는 논평을 발표하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홍원표 진보신당 정책실장은 “공천비리는 후보 선발 과정에 지역위원장과 국회의원에게 권한이 집중되어 있어 생기는 문제다. 공천심사가 아닌 투표로 후보를 뽑는 정당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결국 문제는 불투명한 공천심사 과정”이라며 “그 책임을 제도로 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객관적인 공천심사제를 도입하고 비례대표 확대 등 제도적 보완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민주당도 한발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 11일 당내 반대 여론이 상당한 탓에 전 당원 투표를 실시해 정당공천 폐지 여부를 최종 결정키로 한 것. 전북 도의원 출신 국회의원인 김성주 민주당 의원은 “공천은 좋은 후보에 대해 예비 검사를 하는 과정인데 지역을 위해 일할 사람을 유권자가 알아서 검증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문제가 있다고 공천제를 폐지해 버리면 후보검증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나. 폐지할 거면 그에 따른 보완점이나 발전안이 충분히 마련된 다음에 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누리당도 뒤로 물러서는 모습이다.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는 지난 11일 국민소환제 도입 등의 내용이 담긴 정치쇄신안을 발표했으나 정작 기초선거 공천폐지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현재 분위기로는 정당공천 폐지는 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당공천이 폐지돼도 선거에 나올 토호세력은 정해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돈 있는 토호세력만 선거에 나오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데 정당공천폐지를 무리하게 추진하겠느냐”라고 귀띔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