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 국내 4대 금융지주회사들이 3월 말 주주총회를 앞두고 지주사 회장의 이사회 의장 겸임 관행에서 벗어나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는 형태로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런 까닭에 주총 시즌을 앞두고 신규 사외이사 선임이 예정된 인사들과 기존 사외이사들 간의 이사회 의장직을 둘러싼 라이벌 기류가 감지되기도 한다. 해당 금융사 터줏대감 노릇을 해온 지주사 회장들과 새롭게 꾸려질 사외이사진 간의 역학관계 또한 주목을 받는다. 회장-이사회 의장 분리를 앞두고 새 단장 중인 금융지주 사외이사진을 들여다봤다.
은행권 최장수 최고경영자(CEO)인 라응찬 회장의 신한금융지주는 3월 24일 주총과 이사회를 거쳐 라 회장이 겸직해온 이사회 의장직을 분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라 회장은 지난 1991년부터 1999년까지 신한은행장을 내리 3회 연임했고 2001년 초대 신한금융 회장에 올랐으며 이번에도 재선임(4연임)돼 임기 3년을 더 보장받았다. 라 회장이 20년간 신한금융을 장악해온 만큼 새 이사회 의장이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갖고 라 회장과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신한금융은 이번 주총에서 김병일 전 기획예산처 장관, 김휘묵 삼경교통 상무이사, 히라카와 요지 선이스트코퍼레이션 대표이사, 필립 아기니에 BNP파리바 아시아리테일부문 본부장 등 4명을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이들 중 이사회 의장 후보로 주목받는 인사는 김병일 전 장관이다. 경제관료 출신으로 조달청장과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냈으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도 역임한 바 있다.
김 전 장관과 더불어 이번에 사외이사 재선임을 앞두고 있는 윤계섭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와 전성빈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도 이사회 의장 물망에 오르고 있다. 윤 교수는 현 정부가 증권업협회 자산운용협회 선물협회 3개 단체를 통합시켜 지난해 2월 탄생시킨 한국금융투자협회설립위원장을 지낸 바 있다. 전성빈 교수는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부터 2년간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을 지낸 경력이 눈에 띈다.
정해왕-조정남 신구 이사 대결
하나금융 지난 2005년부터 김승유 회장이 지주사 회장과 이사회 의장을 겸임해온 하나금융 역시 3월 26일 주총 이후 이사회 의장직을 분리할 것으로 보인다. 새 이사회 의장 후보로는 이번 주총에서 사외이사로 재선임될 예정인 정해왕 전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장이 거론되고 있다.
정 전 원장은 1969년부터 1981년까지 22년간 외환은행에서 재직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동안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인수 의지를 보여 오다 최근 우리금융 인수에 더 큰 관심을 보이면서 외환은행이 2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외환은행 사정에 밝은 정 전 원장의 이사회 의장 선임 여부가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전 참여 가능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기존 사외이사인 조정남 SK텔레콤 고문도 이사회 의장 후보로 주목을 받는다. 최근 하나금융이 SK그룹과 손잡고 하나SK카드를 출범시킨 관계로 SK텔레콤 대표이사 부회장까지 지낸 조 고문에게 이사회 의장직이 돌아갈 가능성도 고려된다.
이경재 의장 취임 여부 촉각
KB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과 달리 지주사 출범 때부터 회장과 이사회 의장을 분리해온 KB금융은 회장직이 공석인 상태에서 주총 시즌을 맞이하게 됐다. 황영기 전 회장이 우리은행장 재임 시절 투자 손실을 냈다는 이유로 금융당국 중징계를 받고 지난 9월 자진사퇴한 데 이어 회장 내정자로 선출된 강정원 국민은행장도 금융당국 압박 논란 속에 지난 연말 회장 내정자를 사퇴했다. 조담 이사회 의장도 얼마 전 사퇴 의사를 밝힌 상태인 데다 강 행장의 향후 입지가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새 이사회 의장이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전망이다.
KB금융은 총 9명의 사외이사 중 3명을 교체할 예정이다. KB금융은 최근 공시를 통해 이경재 전 기업은행장과 고승의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그리고 이영남 이지디지털 대표이사의 신규 사외이사 선임 계획을 밝혔다. 이들 중 눈길을 끄는 인물은 이경재 전 기업은행장이다. 이 전 행장은 한국은행에 36년(1961~1997년)간 재직하면서 요직을 두루 거쳤고 금융결제원장을 거쳐 1998년부터 3년간 중소기업은행장을 역임했다. 금융권 명망가로 통해온 이 전 행장은 1939년생으로 새롭게 구성될 KB금융 사외이사진 중에 최고령이기도 해 예우 차원에서 이사회 의장직을 맡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 전 행장은 지난 2001년 우리금융지주 탄생 당시 초대 회장 후보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민영화를 앞둔 우리금융이 금융권 최고 매물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첫 우리금융 회장 경쟁에서 윤병철 초대 회장에게 패한 아쉬운 인연을 갖고 있는 이 전 행장의 이사회 의장 취임 여부가 주목을 받는다.
회장·의장 분리 가능성 불투명
우리금융 다른 금융지주사들과 달리 우리금융은 회장과 이사회 의장 분리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팔성 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겸임해온 우리금융은 최근 사외이사 7명 전원 재선임 결정을 내렸다. 이들 사외이사 중 일부는 현 정부와 돈독한 관계인 까닭에 지난해 선임 당시 ‘낙하산’이란 평을 듣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 측근으로 불려온 이 회장이 ‘MB계’ 인사 라인업 유지를 통해 이사회에 대한 장악력을 놓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조심스레 제기되기도 한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